제4화
나는 차를 주차장 안으로 들이지 않고 길 건너 편의점 앞에 세웠고, 차창 너머로 응급실 출입구 자동문이 쉴 새 없이 열렸다 닫히는 게 보였다.
방금 구급차가 노인을 실어 왔는지 가족들이 옆에 모여 울고 있었고,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게 멀쩡했다.
휴대폰을 꺼내 엘레나 번호를 찾았다.
그 번호로 마지막 통화를 한 건 네 달 전이었고, 그녀가 36시간짜리 야간 근무를 마치고 나왔을 때 내가 문자로 커피라도 들고 갈까 물었더니 엘레나가 "고마운데 나 자야 해"라고 답했던 게 끝이었다.
그 뒤로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은 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겁이 나서였다.
피 묻은 손으로 살아온 전직 특수부대원과 사람을 살리는 의사 사이에는 직업 차이 같은 게 아니라 인생 자체의 무게가 가로놓여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번은 달랐다.
전화는 다섯 번 울리고 나서야 연결됐다.
"네, 엘레나 로스입니다." 피곤이 묻은 목소리 뒤로 의료장비 삑삑거리는 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저 잭 마스터스입니다."
수화기 너머가 이 초쯤 조용해졌다.
"잭?" 엘레나가 뜻밖이라는 듯 숨을 들이켰고, "어디 아프세요?"라고 물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릴 거 알아요. 그래도 지금부터 20분 뒤에 주차장에서 저 좀 만나줘요."
"저 근무 중인데…"
"그만둬요."
"네?"
"지금 당장 사직하든지, 아니면 최소 한 달 휴가라도 내요. 병가든 연차든 이유는 아무거나."
엘레나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잭, 술 드셨어요?"
"정신 멀쩡해요."
나는 병원 건물을 올려다보며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내일 오후 네 시면 여긴 지옥이 돼요. 첫 감염자들이 세 시쯤 실려 들어오는데 증상은 광견병이랑 비슷해도 공격성은 훨씬 더 심하고, 네 시 반이면 응급실은 완전히 통제 불능이 되고, 다섯 시엔 병원 전체가 봉쇄될 거예요. 그런데 엘레나는 지하 창고에 갇혀요. 동료가 마지막 보호복 하나 챙기려고 엘레나를 밖에 두고 문을 잠가버릴 거라서요."
숨을 한 번에 쏟아내고 나서야 내가 멈췄다.
엘레나는 꼬박 10초를 침묵했다.
"창고 얘긴 어떻게 알아요?" 놀란 기색이 더 짙어졌고, "저 그거 지난주에 오래된 차트 옮기려고 신청한 거예요. 과장님도 위치까지는 몰라요"라는 말이 따라왔다.
나는 그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20분 뒤, 주차장 동쪽, 녹색 픽업트럭이에요. 안 오면 내일 오후 세 시에 내가 병원에 들어가서라도 데리고 나와요. 그땐 당신도 나도 더 위험해져요."
"잭…"
"난 엘레나가 죽는 걸 봤어요."
나는 그녀가 말을 잇기 전에 끊었고, "팔이 반 토막 난 채로 뜯겨 나가는 것도 봤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까지 뱉어내고 전화를 끊었다.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했다.
그 뒤 20분이 20년처럼 길었다.
병원 앞을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걸 멍하니 보다가, 마침내 엘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레나 로스는 흰 가운 대신 연회색 니트 가디건에 진한 남색 청바지, 캔버스화를 신고 있었고, 금발은 뒤로 간단히 묶어 올려서 화장기 없는 얼굴과 눈 밑의 옅은 그늘이 더 도드라졌다.
그녀는 의료용 아이스박스를 들고 병원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더니, 내가 라이트를 한 번 깜빡이자 그제야 나를 발견하고 잠깐 망설였다가 빠르게 차도로 내려섰다.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탄 엘레나에게서 소독약 냄새와 옅은 커피 향이 동시에 스쳤다.
"과장님한테 집에 급한 일이 있다고 했어요." 엘레나가 아이스박스를 발밑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근데 휴가는 사흘밖에 못 받았어요. 잭, 진짜 말이 되는 이유가 있어야 해요."
"믿어줄래요?"
나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고, 그렇게 진지하게 엘레나를 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엘레나는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
"크리스마스에 전 세계적으로 좀비가 터지고, 인류 문명은 끝장나요."
엘레나는 처음엔 내 시선을 받아내지 못해 살짝 수줍게 눈을 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게요."
전생의 내가 얼마나 개새끼였는지, 그제야 뼈에 사무쳤다.
이렇게 한 사람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도 몰랐고, 내가 하는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근거가 하나도 없는데도 엘레나는 믿어줬다.
이번엔 절대 엘레나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못 박았다.
"나랑 가요."
"어디로요?" 엘레나가 물었다.
"안전가옥, 물자도 무기도 약도 충분해요. 적어도 둘이서 반 년은 버틸 만큼."
엘레나는 복잡한 케이스를 보듯 나를 가만히 살폈다.
"왜 하필 저예요?"
"그건…"
나는 목이 잠깐 막혔다가,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요"라고 내뱉었다.
엘레나의 눈이 조금 커졌다가,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걸 어떻게…"
"난 살아도 되는 사람이랑 같이 살고 싶어요."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엘레나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간호사이자 의사의 손, 손가락 마디가 도드라지고 손톱은 짧게 잘려 있었으며, 반복된 소독 때문에 피부가 건조하게 일어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제 환자들은요…" 엘레나가 아주 작게 말했다.
"당신이 다 구할 수는 없어요."
내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내일 이후에는 아무도 못 구해요. 하지만 당신은 당신을 구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게 다 지나가면 당신은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엘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눈빛 안에는 갈등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결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좋아요."
그 대답을 듣자 나는 웃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전생에서 내가 겪은 일을 전부 털어놨다. 다만 나는 그걸 '악몽'이라고만 둘러댔고, 엘레나는 내 손을 꼭 잡은 채 눈에 가득 연민을 담고 물었다.
"많이 아팠죠?"
그 순간 알았다.
이번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