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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사태 3일 전, 안전가옥을 지었다

23.0K · 완결
다온흔
16
챕터
327
조회수
9.0
평점

개요

"카를의 손에는 내가 지난주에 선물한 글록 19가 들려 있었다. 총구 끝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가늘게 피어올랐고, 그 총구는 그대로 내 가슴을 겨누고 있었다. 카를이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고맙다. 잭. 우리 물자 그렇게까지 챙겨오느라 고생 많았지.” 그리고는 한 박자 쉬고, 더 잔인하게 덧붙였다. ""걱정 마. 리사는 내가 잘 챙길게.” 내 '여자친구' 리사는 그의 뒤에 서서, 내가 쓰러지는 모습을 비웃듯 내려다봤다. 입을 열고 싶었다. 왜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피가 목구멍을 꽉 막아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문을 닫았다. 그 순간, 감염자들이 밀려들어와 내 몸을 덮쳤다. 첫 번째 이빨이 어깨를 파고들었는데, 아프지 않았다. 차갑기만 했다. 두 번째는 허벅지의 동맥을 찢어냈고, 따뜻한 피가 콘크리트 바닥 위로 분수처럼 튀었다. 나는 그대로 누워 있었다. 천장에서 벗겨지는 페인트 조각을 멍하니 바라보며, 내 뼈가 씹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 내 머릿속엔 단 하나만 남았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이번엔… 반드시 저들에게 산통을 치르게 해주겠다."

싸움먼치킨몬스터좀비사이다아포칼립스

제1화

벽난로 위 크리스마스 시계가 세 번째 종을 울리던 순간,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오후 세 시.

12월 22일.

크리스마스이브까지 사흘, 좀비 사태가 터지기까지도 사흘이었다.

나는 천장을 다섯 초쯤 멍하니 바라보다가 손을 배로 가져갔다.

매끈했다. 탄흔도 없었다.

어깨에도 찢긴 상처가 없었다.

침대 옆 테이블 위 휴대폰 화면이 켜져 있었다.

읽지 않은 문자 세 통.

리사: "오늘 저녁 먹으러 올래? 카를이 스테이크 샀어"

카를: "형제, 계약서 보냈다. 내일 사인할래?"

날씨 알림: "로스앤젤레스 맑음, 72°F(약 22℃), 메리 크리스마스."

…돌아왔다.

진짜로 돌아왔다.

나는 급히 창가로 달려갔다.

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가득했고, 이웃들은 전구를 걸고 있었고, 아이들은 새 자전거를 타고 소리를 지르며 횡단보도를 가로질렀다.

지난번 이때 나는 뭘 했더라.

리사 선물로 티파니 목걸이를 고른다고 반달 월급을 털었고, 마트에서 크리스마스 식재료를 사면서 카를에게 어떻게 깜짝 선물을 해줄지 고민하고 있었다.

진짜 존나 멍청했지.

하늘이 다시 한 번 기회를 줬다면.

카를, 리사, 둘 다 두고 봐라.

나는 옷장 맨 아래를 열어 사막색 군용 배낭을 꺼냈다. 아프가니스탄이랑 이라크까지 같이 갔던 놈이었다.

예비폰, 보조배터리, 현금 전부, 신용카드까지 몽땅 챙겼다.

노트북을 켜고 메일함을 열자 카를이 보낸 계약서가 떠 있었다.

'오크리지 안전가옥 보강 프로젝트', 20만 달러.

본문에는 '우리의 공동의 집을 위해' 같은 문구가 박혀 있었다.

지난번엔 내가 사인했고, 돈은 그의 사촌이 만든 페이퍼컴퍼니로 넘어갔다.

사흘 뒤 좀비 사태가 터지자 프로젝트는 '불가항력으로 중단' 처리됐다.

내가 10년을 굴려 모은 돈이 그대로 사라졌다.

이번 생에도 그 수작을 또 들이밀었다.

나는 답장을 쳤다.

"괜찮아 보이네, 내일 오전 10시에 보자."

전송.

그다음 책장 맨 위 칸에서 철제 상자를 꺼내 열었다.

안에는 네이비 실 기념 코인 두 개와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이라크에서 찍은 단체사진, 나와 카를, 그리고 전사한 전우 한 명.

사진 뒷면에는 카를의 글씨가 남아 있었다.

'영원한 트라이던트.'

나는 사진을 반으로 찢었다. 카를이 있는 쪽 반쪽은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 바로 문을 나섰다.

첫 목적지는 총포상.

"크리스마스 장 보러 왔냐?"

카운터 뒤에서 가게 주인 조가 고개를 들었다. 소매 끝으로 왼팔의 닻과 체인 문신이 삐죽 드러나 있었다.

"비슷해."

나는 준비해 온 목록을 밀어 넣었다.

조가 한 번 훑더니 눈썹을 치켜올렸다.

"9mm 열 박스, .223 다섯 박스, 샷건 네 자루, 저격소총 두 자루, 소음기, 방탄 플레이트… 너 무기고 차리냐?"

"크리스마스 선물."

조가 잠깐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근데 몇 개는 신원 조회 걸려서 내일 오후가 제일 빨라."

"급행비는?"

"20%."

"딜."

두 번째는 창고형 마트였다.

주차장은 크리스마스 장보는 차들로 꽉 막혔고, 카트를 끄는 사람들 얼굴에는 연말 특유의 조급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나는 매니저를 바로 찾아가 제대 군인증을 보여줬다.

30분 뒤, 카트는 산처럼 쌓였다.

통조림, 압축 비스킷, 생수, 배터리, 손전등, 구급키트, 정수 알약.

냉동 코너를 지나며 냉동 스테이크 열 봉지도 집었다.

리사가 제일 좋아하던 거.

지난번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우리가 안전가옥에 숨어 있었고, 리사는 내 마지막 스테이크 두 조각을 카를에게 줬다. 카를이 필요하다고.

그때의 나는 리사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특하다고 했었다.

기특은 개뿔.

세 번째는 건자재 마켓이었다.

철판, 방탄유리, 태양광 패널, 디젤 발전기를 샀다.

내일 오전 배송, 주소는 내가 새로 임대한 창고로 잡았다.

카를 집 맞은편 거리, 2층 창문이 그의 거실을 정면으로 내려다보는 자리였다.

여기에 내 안전가옥을 만들 거고, 카를과 리사가 좀비에게 갈기갈기 찢기는 걸 내 눈으로 확인할 거였다.

전부 카드로 긁었다.

마지막은 주유소였다.

군용 연료통 열 개를 사고 디젤을 가득 채웠다.

트렁크가 꽉 찼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리사가 사진을 보냈다.

빨간 크리스마스 스웨터를 입은 채 와인잔을 들고 웃는 얼굴.

배경은 카를 집 거실이었고, 벽난로 불빛이 그녀 볼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문구는 짧았다. "기다릴게!"

나는 몇 초 봤고, 답장은 하지 않았다.

시동을 걸자 라디오가 자동으로 캐럴을 틀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나는 손을 뻗어 꺼버렸다.

이번 크리스마스이브는 고요하지 않을 거다.

그래도 이번엔, 불안한 쪽이 내가 되진 않을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