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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가엾을 정도로 적은 선의

과거의 정?

그 네 글자는 비웃음이 섞인 빈말처럼 들렸다.

윤채원은 차 문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

그리고 박소연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자존심과 냉기가 서려 있었다.

“네가 나랑 정을 얘기한다고? 난 네가 3년 전에 이미 다 잊은 줄 알았어.”

윤채원은 냉소를 지으며 박소연을 바라보았다.

“네 마음대로 해. 어차피 윤씨 집안에서 배은망덕한 인간 하나 키운 거지.

이번 일이든 다음 일이든 역겨운 건 똑같으니까.”

그녀는 비웃음을 던지며 박소연을 바라봤다.

그리고 반박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차에 올라탔다.

‘부웅!’

차는 활처럼 튕겨 나가며 사라졌다.

박소연은 놀라 뒷걸음질쳤다.

창백한 얼굴로 윤채원의 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네모 반듯하고 강렬한 SUV의 모습은 윤채원의 당당한 이미지를 그대로 대변하는 듯했다.

역시, 이게 진짜 윤채원이었나?

과거의 부드럽고 상냥했던 모습은 모두 가식이었던 거야!

박소연은 두 손을 꽉 쥐었다.

온몸이 떨렸고, 눈에는 독기가 서렸다.

윤채원은 란타이 로열 인터내셔널 그룹을 나선 뒤,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고 곧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그 소식을 들은 배진욱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지윤호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지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배진욱은 차가운 눈빛으로 대답했다.

“저쪽에 연락해서 협조하라고 해. 그녀가 원하는 결과가 뭔지 보여주도록 하라고.”

배진욱의 말을 들은 지윤호는 순간 상황을 파악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었다.

윤채원.

그녀는 정말 하영숙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돌아온 것이었다.

한 달 전, 배진욱과 박소연의 약혼 발표에도 무심했던 그녀가

결국 하영숙의 죽음에 의심을 품고 돌아왔던 것이다.

‘딸깍.’

라이터 소리가 공간을 가르며 울렸다.

배진욱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두 모금 빨아들였다.

짙은 연기를 내뱉으며 그는 여전히 어두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지윤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박소연 씨 쪽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응.”

배진욱은 짧게 대답했을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항상 배진욱의 곁에서 그의 행동을 지켜봐 온 지윤호조차 이번 반응을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시회에서 그렇게 큰 사건이 터졌고,

지금 여성 전체가 박소연과 윤채원을 비교하며 떠들썩한 상황이었다.

누가 더 뛰어난지에 대한 결과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박소연은 배진욱의 공식 약혼녀였지만,

이 상황은 그녀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배진욱은 지금까지 윤채원과 박소연의 비교가 담긴 인기 검색어를 내리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

그저 여론이 여성에서 계속 퍼져나가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다.

윤채원은 경찰서에서 나오며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답을 받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한시름 놓고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누군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어?”

윤채원은 피할 틈도 없이 그 사람에게 와락 안겼다.

“언니! 정말 언니 맞아요!?”

작은 소녀가 그녀를 꼭 껴안았다.

“아연이?”

배아연. 배진욱의 여동생이었다.

윤채원은 익숙한 얼굴을 확인하자, 몸에 긴장했던 힘이 스르르 풀리며 부드러운 눈빛을 보였다.

“너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언니가 돌아왔다는 얘기를 듣고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요!

지금 은하산장에서 오는 길이에요!”

“너 은하산장에 갔어?”

“응! 근데 가니까 사람들이 언니는 이미 떠났다고 하더라구요.

이 얘긴 나중에 하고, 일단 나랑 같이 가요!

할아버지께서 언니 너무 보고 싶어 하셨어요!”

윤채원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할아버지.’

그 두 글자를 듣자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배씨 가문에서, 이 어린 소녀는 언제나 윤채원을 가장 좋아해 줬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배진욱의 할아버지는 언제나 윤채원을 아끼고 감싸줬던 사람이었다.

“아연아, 사실 난 지금…”

“언니, 혹시 우리 오빠 때문에 걱정하는 거예요? 걱정 마세요. 오빠는 요즘 할아버지께 엄청 혼나고 있어요. 거의 몇 년째 저택에 발도 못 들이고 있다니까요!”

윤채원이 하려던 말은 배아연의 재잘거림에 끊겨 버렸다.

결국 그녀는 배아연에게 이끌려 차에 올라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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