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과거의 정은 버린 채
윤채원은 순간 얼어붙었다.
금산.
그녀와 배진욱이 결혼 후 함께 살았던 곳.
한때 그녀는 그곳이 자신의 집이고, 안전한 안식처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배진욱의 단호하고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자, 윤채원은 가볍게 비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그의 말에 바로 답하지 않고,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아까 박소연 씨랑 무슨 얘기 했어요?”
박소연.
윤채원이 들어올 때, 막 나가던 그 여자.
배진욱이 대답하기도 전에, 윤채원은 말을 이어갔다.
“당신과 그 여자는 이제 약혼한 사이잖아요? 그런데 날 거기 보내서 불륜녀라도 만들겠다는 거예요?”
윤채원은 비웃음을 지었다.
도발적이고, 경멸이 가득 담긴 미소였다.
약혼녀라니!
약혼 발표가 있었던 건 불과 한 달 전.
아직도 여성 전체가 그 소식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배진욱의 차가운 기운은 더욱 깊어졌고,
그 모습은 마치 3년 전, 그 여자가 수술이 시급했던 날의 배진욱을 떠올리게 했다.
그의 변화를 느낀 윤채원은 웃음을 더 깊게 지으며 말했다.
“아니면, 배진욱 씨. 내가 거기로 돌아가서 또 아이를 가질까요?
그래서 당신의 박소연 씨를 위해 피라도 제공해 드리게요?”
“그만해!”
윤채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진욱은 마침내 소리쳤다.
그는 윤채원을 바라보았다.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그 감정이 분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윤채원은 그의 눈빛 변화를 보며 더 이상 웃음을 짓지 않았다.
대신 차갑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왜요? 남들이 말하면 당신조차 믿기 싫을 만큼 당신 자신이 끔찍했나요?”
그녀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 결혼 생활에서, 누가 더 무서운 존재였던가?
부부란 원래 하나라고 했지만, 그때의 배진욱은 그녀에게 가장 두려운 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아이를 죽이려 했고, 그녀의 피를 모두 빼앗아 목숨까지 빼앗으려 했다.
배진욱의 그때의 광기와 왜곡된 모습은 지금도 윤채원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든다.
“배 원장님이 협조하지 않으신다면, 경찰에 협조 요청을 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녀는 그를 궁지로 몰아넣고 싶었다.
그때의 일을, 그가 세상에 드러낼 용기가 있을까?
돌아서며 말했다.
“당시 이혼 서류에 서명하는 걸 잊으셨으니, 제가 다시 준비해 드리죠.
이번에는 서명만 해주시면 서로 깔끔하게 끝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기서 윤채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의 차가운 뒷모습이 배진욱에게 더 깊은 경고처럼 느껴졌다.
윤채원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3년 전의 일을 다시 들춰내야겠네요. 배진욱 씨, 사람들은 이강우가 어떤 사람인지보다, 3년 전 여성에서 한 달 동안 도로를 막았던 그 교통사고의 진실에 더 관심이 많을 겁니다.”
“쾅!”
윤채원은 문을 세게 닫고 당당하게 떠났다.
배진욱의 차가운 기운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그의 두 손은 꽉 쥐어졌다.
교통사고.
3년 전 그 사고 이후, 쏟아졌던 온갖 소문들.
사람들은 그 사고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고 추측했고, 특히 박소연이 그의 곁에 있다는 점이 의혹을 더 키웠다.
그 소문들은 배씨 가문에서는 막을 수 있었지만, 만약 윤채원이 그 진실을 폭로하기라도 한다면?
배진욱은 상관없을지 몰라도,
한 달 전에 그와 약혼한 박소연은 언론의 집중 포화를 피할 수 없었다.
그의 눈빛은 더욱 날카롭게 번뜩였다.
윤채원이 란타이 로열 인터내셔널 그룹을 나섰을 때, 박소연은 그녀의 벤츠 SUV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배진욱의 사무실에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 그녀의 눈에는 억울함 대신 윤채원에 대한 증오만이 가득했다.
윤채원은 박소연을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차로 향했다.
그러나 차 문을 열려는 순간, 박소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우리가 정말 이렇게까지 과거의 정을 저버려야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