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설명
사무실
배진욱은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윤채원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 시간에 여긴 왜 온 거야?”
윤채원은 손끝으로 잘 다듬어진 손톱을 살짝 매만지며 비꼬듯 말했다.
“방해라도 했나요? 좋은 시간 보내던 참에?”
“나와 그녀는 사실…”
“난 당신 사생활에 관심 없어요.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 온 거예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채원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사실 박소연이 어떤 존재인지는 윤채원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아는 건 단 하나.
배진욱에게 있어서 아내와 아이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바로 박소연이라는 사실이었다.
배진욱은 윤채원의 차가운 태도에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아침에 차 안에서 그가 던진 말에 반항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3년 전, 순종적이던 윤채원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지금의 그녀는 매혹적이고 도발적이면서도 날카롭고 차가웠다.
“물어봐.”
배진욱은 차가운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윤채원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당신, 지금 여성 종합병원의 원장 맞아요?”
“그래. 그런데 그게 왜?”
“외할머니의 비정상 사망 사건, 그거 일부러 흘린 거죠?”
배진욱은 담배를 꺼내던 손을 잠시 멈췄다.
그는 담배를 쥔 채 윤채원을 바라보았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한테 외할머니가 있었어?”
이 여자는 대체 자신이 모르는 비밀을 얼마나 더 감추고 있는 걸까?
이번에 지윤호가 조사해 온 내용도 그녀의 직업과 관련된 부분뿐이었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개인 생활은 마치 누군가 철저히 숨기기라도 한 듯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더 깊이 조사하려 했을 때마다 누군가가 정보를 차단하고 있었다.
처음에 배진욱은 그 차단한 사람이 이강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니, 혹시 그녀가 말하는 외할머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채원은 배진욱의 놀랍고 의심 가득한 표정을 보며, 순간 마음속으로 확신했다.
외할머니에 대한 소문은 배진욱이 흘린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괜히 시간을 낭비했네요.”
배진욱이 아니었다면, 더 이상 그와 얽혀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윤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배진욱이 그녀의 손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이렇게 그냥 가겠다고?”
“뭐 하는 거예요?”
배진욱의 손길에 윤채원의 얼굴에는 순간적으로 불쾌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 감정은 배진욱의 눈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언제부터 배씨 사무실이 이렇게 아무나 드나드는 곳이 됐지?”
그녀가 이렇게 쉽게 돌아서려 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더 큰 불쾌함을 주었다.
그는 가볍게 힘을 주어 윤채원의 작은 몸을 품에 끌어당겼다.
“놓으라고!”
윤채원은 소리치며 몸부림쳤지만, 배진욱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붙잡았다.
“하영숙 할머니 일 때문인가?”
윤채원: “……”
그 말에 원래 저항하던 그녀의 몸짓이 완전히 멈춰 섰다.
그녀는 배진욱을 매섭게 노려보며 놀람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당신과 관련된 일이에요?”
“네가 병원에 갔다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아?”
그렇다면 정말 관련이 있는 건가, 아니면 없는 건가?
배진욱 역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윤채원이 이 소식을 알아냈다는 것이 뜻밖이었다.
그는 윤채원의 작은 얼굴을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너희 할머니의 죽음은 확실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 나 역시 이 일을 조사하고 있었어.”
“그래요? 난 누군가가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거 아닐까 걱정되네요!”
“나를 믿지 않는구나.”
배진욱은 단정 짓듯 말했다.
윤채원은 냉소하며 대답했다.
“나랑 당신 사이에 신뢰가 있었던 적이나 있어요?”
그녀는 배진욱의 손을 거칠게 쳐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옷의 주름을 정리한 뒤, 차분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배 원장님께 부탁드릴게요. 왕 주임이 제 질문에 협조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배 원장님’이라는 호칭을 일부러 강조하며,
그녀와 배진욱 사이의 거리감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배진욱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
그는 담배를 피워 두 번 깊게 빨아들인 뒤,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네가 궁금한 걸 풀어줄 수 있어. 하지만 조건이 있어.”
윤채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조건을 내세울 자격이나 있어요?”
“내가 한 일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다면, 네가 답을 원할 때 내 조건은 정당해. 공평한 거래일 뿐이야.”
“그래서 조건이 뭐예요?”
윤채원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를 빨리 처리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강우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금산으로 돌아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