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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사실 박여진은 문현정에게 전화를 한 적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백서진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그는 급히 말을 끊어 끼어들었다.

"현정아, 어젯밤 어디 있었어? 내가 그렇게 전화를 많이 했는데 왜 안 받았어?"

문현정은 코웃음을 치듯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어젯밤에 술을 좀 마셔서 집에 가자마자 잠들었어. 휴대폰 충전도 못 했고."

그 말을 듣는 백서진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스쳐 갔다.

분노, 불쾌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깊은 좌절감.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계획이 왜 전부 엉망이 된 거야?

그가 당황과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문현정은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전생에서 그녀는 여덟 살 때 물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렸고, 눈을 뜨자 곁을 지키고 있던 사람은 백서진이었다. 그때 그녀는 그가 자신을 구해 준 은인이라고 착각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백서진만 바라보며 매달렸고, 심지어 문씨 가문 전체를 그의 발판으로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가문이 무너지고, 모든 가치가 소진된 뒤에야 우연히 알게 된 진실이 있었다.

자신을 구해 준 사람은 백서진이 아니라, 백진헌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좋아.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면, 이번 생에서는 이 은혜도 모르는 짐승을 천천히, 확실하게 끝장내 줄 생각이었다.

"아직도 방 안을 확인하고 싶습니까?"

백진헌이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기자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오해였군요. 백 대표님, 죄송합니다."

"별일 아니었던 것 같네요.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큰 건을 건지지 못한 데다, 백진헌의 위세가 두려웠던 기자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백진헌은 백서진을 차갑게 한 번 훑어본 뒤, 경호원들과 함께 그대로 현장을 떠났다.

"엄마, 우리도 여진이랑 차 마시러 가요."

"그래."

그 모습을 본 백서진은 다급히 앞을 막아섰다.

"현정아, 내가 같이 갈게. 어머님이랑 셋이서."

어젯밤 그는 박여진과 같은 방에서 밤을 보냈고, 지금쯤 박여진은 옷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상태일 게 분명했다. 방 안 역시 엉망일 터였다.

만약 그 사실이 들키는 순간, 문씨 가문과의 혼사는 끝장이었다.

문현정은 만만해 보일지 몰라도, 그녀의 부모는 결코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문현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왜? 서진 씨,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 있다면서?"

그 시선에 백서진은 이유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이모님, 근처에 새로 생긴 찻집이 있는데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가 끝까지 설득하려 들자, 문현정이 담담히 말했다.

"여진이도 같이 가요."

그 말과 함께 문현정은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팔을 끼고, 868호 객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박여진의 어머니, 임영선도 그 뒤를 따랐다.

임영선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십수 년 넘게 문씨 집안에서 일해 온 보모였다. 문현정의 어머니는 홀로 아이를 키우는 그녀가 안쓰러워 학비와 생활비를 전부 지원해 주었고, 심지어 박여진을 집에 들여 문현정과 같은 명문 학교에 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과는, 철저한 배신이었다.

박여진 모녀는 감사하기는커녕 늘 문현정과 비교하며 시기했고, 급기야 백서진과 손을 잡고 문씨 가문의 재산을 통째로 집어삼키려 들었다.

전생의 문현정은 사람을 잘못 봤고, 그 위선적인 가면에 속아 눈을 가리고 말았다.

이번 생에서는, 이들이 문씨 집안에서 훔쳐 간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토해내게 할 생각이었다.

문현정은 속으로 냉소를 삼키며, 겉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벼운 걸음으로 이동했다. 정말로 친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사람 같았다.

백서진은 뒤따르며 초조하게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이미 박여진에게 메시지를 보내 두었고, 그녀가 방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일이 이렇게 흘러간 거지.

잠시 후.

문현정 일행은 868호 객실 앞에 도착했다.

"딩동, 딩동!"

초인종 소리를 듣고 박여진은 백서진이 돌아온 줄 알고 들뜬 얼굴로 문을 열었다.

그녀는 아직도 어젯밤의 '전투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살결이 훤히 비치는 분홍색 실크 잠옷, 가슴에는 하얀 깃털 장식이 달려 있었고, 엉덩이에는 복슬복슬한 토끼 꼬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머리에는 토끼 귀 머리띠까지 얹은 모습이었다. 요염하고 노골적인 차림새였다.

방 안 역시 한눈에 봐도 상황이 분명했다.

헝클어진 침대,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들, 공기 속에 남아 있는 짙은 흔적.

찰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서진 오빠,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

말은 거기서 뚝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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