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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김소진의 이마가 터져 피가 흘러내릴 때까지, 박인강은 단 한 번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손을 들어 의료진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백미나는 그의 뒤에 숨어서, 턱을 들고 바닥에 쓰러진 김소진을 보고 우쭐하게 웃었다.

박인강은 냉정한 얼굴로 손수건을 꺼내 바닥에 툭 던졌다.

목소리는 마치 치료 종료를 선언하듯 딱딱하고 차가웠다.

"이번 건 경고 겸 1차 치료야. 계속 협조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는 더 강도 높게 진행하겠다."

그는 더 이상 그녀를 보지 않았고, 관심과 시선은 모두 백미나에게만 쏟았다.

김소진은 이가 으드득 갈릴 정도로 이를 물었고,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절반쯤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겨우 비틀거리며 일어섰지만, 병실 문을 나서자마자 다리가 풀려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눈앞이 새하얗게 밝았다.

김소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서 있는 흐릿한 그림자를 바라봤다.

그 형체가 조금씩 또렷해지더니 아버지가 보였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아버지 손을 잡으려 달려갔지만, 한 걸음 거리인데도 손끝이 닿지 않았다.

아버지는 점점 멀어졌고, 필사적으로 뛰어도 그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아빠! 아빠, 나 두고 가지 마!"

그녀의 울부짖음이 허공에 메아리치듯 번졌고—

"일어나세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소진이 겨우 눈을 뜨자 간호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임신한 사람이 감정 기복이 이렇게 심하면 어떡합니까. 산모가 약하면 애도 약해요."

순간, 김소진의 머릿속이 '쾅' 하고 울렸다.

그녀는 간호사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저… 임신이라고요?"

간호사는 초음파 결과지를 내밀었다.

"7주요.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입니다."

김소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손으로 배를 쓸어내렸다.

왜 하필 지금, 왜 이런 때에... 왜 박인강의 아이를 가진 건지.

그녀는 침대에 엎드려 주먹으로 매트를 내리치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울음을 삼켰다.

박인강이 백미나에게 붙어 있는 사이 김소진은 몰래 그 '집'으로 돌아갔다.

이젠 집이라 부르고 싶지도 않은 곳.

거실에는 그녀와 박인강의 결혼사진이 걸려 있었다.

빛이 바래 누렇게 변한 사진.

그건 지금의 두 사람과 닮아 있었다.

한때는 선명하게 빛나던 사랑, 지금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숨 막히는 관계.

김소진은 사다리를 꺼내 겨우 사진을 떼어냈고, 가위로 사진을 잘게잘게 찢어버렸다.

드레스룸 한쪽 구석에는 오래된 나무 상자가 있었다.

그 안에는 다섯 해 동안 쌓인 두 사람의 추억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두꺼운 연애일기, 커플 화보집, 그가 고백할 때 건넸던 하얀 장미, 결혼식 부케.

상자 하나 가득 그가 그녀를 사랑했던 증거였고, 동시에 이제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잔혹한 증거이기도 했다.

김소진은 양동이 하나를 가져와 추억 하나하나를 찢어 넣기 시작했다.

라이터가 닿자마자 쉬익, 하고 타들어갔다.

불길은 빠르게 번져 올라갔고, 타는 냄새가 옷장 안을 가득 메웠다.

매캐한 연기가 목을 찔러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다.

그때—

"누가 여기서 뭘 태우는 거지?"

박인강이 드레스룸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간을 찌푸린 채, 늘 그렇듯 차분한 목소리였다.

"김소진, 이런 행동은 위험해. 혹시 이런 식으로 내 관심을 끌려는 거라면 말해두지만... 의사로서, 나는 감정 처리를 위해 스스로를 해치는 방식을 권하지 않아."

김소진은 가슴께를 한번 쓰다듬었다.

이상했다.

예전 같으면, 그의 이런 말 한마디에 심장이 찢기는 듯 아팠을 텐데.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하… 하하."

그녀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드디어,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된 것이다.

박인강은 오히려 더 불편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또 무슨 방식으로 내 관심을 끌려고 하는 거지? 미나는 입원해 있어. 네가 이성적으로 행동해줘야 한다고."

김소진은 옷에 붙은 재를 털며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유통기한 지난 쓰레기 좀 처리한 거야."

그녀의 지나치게 고요한 태도는 박인강이 처음으로 불안함을 느끼게 했다.

그는 보기 드물게 어조를 누그러뜨렸다.

"김소진, 내가 이미 최고 의료기관과 접촉하고 있어. 금방 새로운 골수를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제발, 조금만 더 냉정해지자. 우리… 다시 잘 살아보자."

김소진은 천천히 시선을 떨구며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그래? 잘됐네. 아쉽게도… 난 원하지 않아."

그녀가 그를 스쳐 지나가려 하자, 그가 손목을 꽉 붙잡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미나는…!"

김소진은 그의 말을 자르듯 올려다보았다.

"박인강. 네 눈엔 내가 그렇게도 비이성적으로 보이니?"

그리고 덧붙였다.

"걱정 마. 네 환자 건드릴 생각 없어. 애초에… 그 애 잘못은 아니니까."

잘못은 단 한 사람. 그녀가 사랑했던, 그 오만한 남편에게 있었다.

박인강은 조금 안도하는 듯 숨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의사'의 목소리로 돌아왔다.

"오늘 밤 의학 세미나가 있어. 너도 같이 가. 내 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그는 의례적으로, 그녀가 '왜 미나를 안 데려가냐'고 질투하며 거절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김소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연스럽게 옷장을 열어 세미나에 입고 갈 드레스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드물게 스스로에게 메이크업을 해주었고, 피부 톤을 가장 잘 살리는 파란빛 슬립 드레스를 골라 입었다.

"가자."

그녀는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박인강의 팔을 살짝 끼고 걸음을 옮겼다.

차 안에서, 박인강은 잠시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거의 잊고 있었다.

김소진이 한때 H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불리던 사람이었다는 걸.

두 사람이 함께 회의장에 발을 들이서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소진에게 꽂혔다.

수군대는 소리, 낄낄거리는 웃음, 조롱에 가까운 눈빛까지.

구석에는 예전엔 꽤 가깝게 지냈던 부인들이 모여 속삭이고 있었다.

"쟤, 남편 스승 딸도 오늘 온 거 모르는 모양이지? 곧 재밌겠다."

"참 불쌍도 하지. 절세미남인 줄 알고 결혼했더니, 알고 보면 다 똑같은 부류잖아?"

"그렇게 설치는 불륜녀도,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저러는 거지. 환자 주제에 감히 이런 자리에?"

그제야 김소진은 백미나가 이미 먼저 도착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니! 여기요!"

백미나는 하얀 벨벳 드레스를 입고, 10cm 하이힐을 신고 요란하게 허리를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다 딱 1미터 남은 지점에서

"아얏!"

발목을 접질린 척 몸을 기울였다.

박인강은 반사적으로 김소진의 팔을 놓고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의 백미나를 부드럽게 받아 안았다.

그 광경에 주변에서 작은 비명이 터졌다.

원래 아내가 옆에 있는데도 이럴 정도면, 사람들 없는 곳에서는 얼마나 더 대놓고 굴까.

백미나는 그의 품에 안긴 채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아휴, 언니 있는 데서 이러니까… 사람 민망하게 만들어…"

박인강은 그녀를 똑바로 세우며 차분했다.

"조심해야 해. 하이힐은 네 회복에 좋지 않아."

김소진은 손바닥 안쪽에서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힘껏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백미나는 금세 얼굴을 바꾸고, 김소진의 팔을 친밀한 척 끼고 말했다.

"가요, 언니. 뭐 좀 먹게 해드릴게요."

그 태도는 마치 오늘 이 자리에 초대받은 주인이 백미나고 김소진은 따라온 사람인 것만 같았다.

김소진이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툭—!"

드레스 어깨끈이 끊어지며 그녀의 가슴 부분이 그대로 드러났다.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이 숨을 들이켰다.

공기가 멈춘 듯한 순간.

그 모든 시선이, 다른 누구도 아닌 김소진의 노출된 부분에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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