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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김소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피 하나 없이 질려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옆에서 천진한 척하는 백미나를 보자, 백미나는 재빨리 칼날을 손가락 사이로 숨겼다.

김소진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미나가 억울한 척 물을 끼얹었다.

"언니, 박 선생님한테 잘 보이고 싶은 건 알지만… 그래도 상황은 좀 가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람 많은 데서 이런 식으로 박 선생님 체면을 깎아 내리면 어떡해요?"

김소진은 즉시 받아쳤다. "백미나, 분명 네가 끊어—"

"그만해, 김소진!"

박인강의 눈썹 사이엔 비이성적인 보호자와 마주한 의사의 짜증이 그대로 서려 있었다.

"네 상태가 원래부터 문제라고 눈치챘어야 했는데… 이런 식으로 관심을 끌려고 하다니."

김소진의 눈빛엔 실망이 촘촘히 번져 갔다.

"백미나가 내 어깨 끈을 잘랐어. 믿기 힘들면 저 손가락 사이에 칼날 있는지 직접 봐."

박인강의 눈에 잠시 흔들림이 스쳤다.

"미나, 너가 한 거야?"

백미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저 아니에요, 선배… 저, 저 못 믿겠어요?"

큰 눈을 깜빡거리며 굵은 눈물이 우르르 흘러내렸다.

"제가 여기 있는 게 잘못이에요. 제가 끼어든 사람이라서… 저 그냥 갈게요. 다시는 안 올게요…"

박인강은 급히 그녀를 부축했고, 목소리는 금세 부드러워졌다.

"알아. 미안해. 방금은 의사라서 모든 가능성을 확인해야 해서 그런 거야."

백미나는 그의 어깨 너머로 김소진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언니는 선배를 너무 좋아해서 그래요.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제가 언니 데리고 가서 옷 갈아입히고 올게요."

박인강은 바닥에 주저앉은 김소진을 내려다보며 냉정하게 단정 지었다.

"미나를 모함하다니… 그런데도 미나는 널 감싸고 있어. 김소진, 문제를 좀 더 이성적으로 바라봐."

김소진은 옷을 갈아입고 백미나를 스쳐 지나 회의장을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백미나는 길을 막아섰다.

"김소진, 넌 도대체 뭘 믿고 나랑 싸우려는 거야?"

사람 없는 구석에 들어서자, 백미나는 순식간에 순한 환자의 가면을 벗고 본색을 드러냈다.

김소진은 피식 웃었다.

"나는 이제 너랑 싸울 생각 없어. 박인강? 네가 좋다면 가져."

백미나는 순간 멍해졌다. 이렇게 쉽게 포기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후. 그래, 알면 됐고."

그러나 그녀는 다시 김소진 앞쪽으로 돌아와 서더니, 계단 입구를 등지고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나는 박인강이 너를 철저히 혐오하게 만들어야만 네 자리를 대신할 수 있어."

김소진은 더 얽힐 생각조차 없었다. "그는 이미 나를 싫어해. 우리 사이는 이혼서류 한 장만 남았어."

백미나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김소진, 너 그 반쯤 죽어 가는 노인네는? 아직도 안 죽었어?"

순간, 김소진의 머릿속에 아버지의 창백하고 삐쩍 마른 얼굴이 스쳤다.

5년을 버텨 준 사람이었다. 정말 조금만 더 버텼다면…

그녀는 숨을 바짝 들이켰고, 목소리가 저절로 날카롭게 치솟았다.

"백미나! 네가 감히 아빠를 입에 올려?!"

그 다음 순간, 백미나는 갑자기 "살려줘!"라고 비명을 지르더니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김소진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손끝에 잡힌 건 백미나의 치맛자락 끝뿐이었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 손님들은 계단 위에서 손을 뻗고 서 있는 김소진과, 그 발밑에 쓰러진 백미나를 보게 됐다.

"미나야!"

박인강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

그는 사람들을 밀치고 뛰어들어 백미나를 끌어안았고, 중환자를 살리려는 의사처럼 허둥지둥했다.

"미나야, 정신 좀 차려!"

김소진은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 백미나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이렇게 무모한 짓까지 할 줄은 전혀 몰랐다.

"박인강, 나 진짜—"

그의 기세는 폭풍처럼 몰아쳤고, 시선은 의료사고를 낸 범인을 바라보듯 차갑고 잔혹했다.

"네가 아니라고? 네가 안 그랬다고? 그 말을 네가 믿을 수는 있겠어?"

"내 눈은 멀쩡해. 네가 미나를 못마땅해 하는 건 모두가 아는 일이고, 오늘은 아예 죽이려 한 거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김소진을 향했다.

"저렇게 예쁜 얼굴에 속이 그렇게 썩었을 줄이야."

"미모가 뭐가 중요해? 저런 독한 여자도 다 있네."

"저 아가씨는 늘 참고 양보하던데, 환자를 몇 번이나 다치게 하네."

"경찰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위험한 사람이야!"

"경찰 부르자! 잡아가야 해!"

김소진의 마음이 뒤틀리듯 무너졌다.

아버지는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 자신이 붙잡혀 가면 그 누구도 돌봐 줄 사람이 없다.

여기서 빠져나가야 했다.

"박인강, 정말 내가 한 게 아니야. 백미나는 스스로—"

박인강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와 턱을 움켜쥐었다.

그의 눈빛은 의사로서 환자를 죽게 만든 가해자를 응시하듯 차갑고 단단했다.

"김소진, 넌 정말 실망스러워. 법의 심판을 받아야 네가 제정신을 차릴 것 같네."

그는 휴대폰을 꺼내 직접 112를 눌렀다.

김소진의 몸이 죄다 떨렸다.

"박인강, 제발 이러지 마. 우리 아빠가… 아빠가…"

찰나, 그의 손이 날아와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소리는 마치 판결문이 쾅 하고 내려앉는 것처럼 건조하고 명확했다.

"그 사람이 죽든 살든, 나와 무슨 상관이야?"

떠들썩하던 주변이 일순 얼어붙었다.

김소진은 멍하니 굳어 섰고, 입 안에서 쇠 맛이 번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그녀에게 수갑을 채워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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