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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식사 자리에서의 재회

문아영은 편안하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대본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대량의 생필품을 구매하러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 나가려던 순간, 이영지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이영지는 최강원의 또 다른 비서로, 이영호와 함께 그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존재였다.

이영지와 이영호는 쌍둥이 남매로, 가난한 산골 마을 출신이었다. 최 씨 재단의 장학 지원 덕분에 학업을 마치고 해외 유학까지 다녀와 뛰어난 인재로 성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졸업 후 두 사람은 최 씨 그룹에 입사하여 성실하게 일하며 회사에 큰 공헌을 하고 있었다.

특히 이영지는 침착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철저한 워커홀릭으로, 최강원은 중요한 업무를 종종 그녀에게 맡기곤 했다.

이번에도 이영지는 사무적인 톤으로 문아영에게 말했다.

“문아영 여사님, 제가 방금 인수인계를 받아서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요. 이 프로젝트에 대해 만나서 논의하고 싶은데 혹시 시간 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문아영은 흔쾌히 답했다.

“좋아요.”

과거 자신이 최 씨 그룹 사모님이었던 시절 이영지와 꽤 자주 만나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이영지가 말했다.

“그럼, 시간과 장소는 여사님께서 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아영은 마침 쇼핑몰에 갈 예정이었기에, 쇼핑몰 안 카페에서 20분 후에 만나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이영지는 여전히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문아영은 자리에 앉으며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더 예뻐지셨네요.”

이영지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감탄하며 말했다.

“여사님께선 오히려 전보다 더 자신감이 넘치시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문아영은 잠시 멈칫했다.

내가 그렇게나 많이 달라졌나?

과거 최강원의 무시와 비난 속에서 얼마나 비참하고 자신감 없이 살았는지 떠올렸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다 입을 열었다.

“잘못된 인연을 떠나보내고, 잘못된 관계를 끝내는 것은 곧 새롭게 태어나는 것과 같죠.”

이영지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이 자리에 오기 전 최강원이 그녀에게 이영지와 나눈 대화를 하나하나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 말도 최 회장님께 보고해야 하나?

둘은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사업 얘기를 시작했다. 이영지는 이 프로젝트를 완전히 맡아 진행할 예정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문아영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강원만 만나지 않으면, 모든 골칫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얘기가 끝난 뒤 이영지는 가방에서 연고 두 개를 꺼내며 말했다.

“여사님께서 팔을 다쳤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피부 회복에 좋은 연고가 있으니 한번 써보시길 바랍니다.”

문아영은 이영지의 세심한 배려에 깜짝 놀랐다. 비록 이준이 이미 연고를 두 통이나 남기고 갔지만, 이영지의 성의를 거절하고 싶지 않아 그녀는 연고를 받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이영지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에요, 별거 아닙니다.”

문아영은 이어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우린 한 팀이니까 호칭을 여사님 대신 그냥 아영 씨라고 좀 더 편하게 불러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과거 그녀가 최 씨 사모님이였을 때는 예의상 이영지는 극존칭을 써서 불렀지만, 이제는 단순한 협력 관계이므로 더 이상 형식적인 호칭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영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어요.”

문아영은 쇼핑을 하러 가야 했기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떠났다.

문아영이 떠난 뒤 이영지는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

“최 회장님, 연고 전달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번 미팅 결과를 최강원에게 보고하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음을 알렸다.

하지만 문아영이 최강원을 ‘잘못된 인연’이라고 언급한 부분은 보고하지 않기로 했다.

이영호가 최근 최 회장님께서 전 부인인 문아영에 대해 여전히 마음을 두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번에도 최강원이 연고를 이영지의 이름으로 전달하라고 한 것을 보면 이영호의 말이 맞는 듯했다.

그녀는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기로 마음먹었다.

문아영은 장을 보고 돌아온 뒤 본격적으로 대본 세부 작업에 몰두했다.

큰 줄거리 초안은 이미 완성했으니, 이제는 세부 내용을 다듬고 특히 인물 대사를 신중히 고민해야 했다.

그렇게 집에서 약 3일 정도 대본 작업을 하던 중 김한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저녁에 제작진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친목을 다질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김한세가 의도한 것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최강원은 이번 식사 자리에 오지 않을 것이라며 말을 덧붙였다.

이미 프로젝트는 이영지에게 맡겼으니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최강원이 아닌 이영지라는 뜻이겠지.

문아영은 그의 말에 망설임 없이 참석을 결정했다.

이번 드라마의 감독은 특히 사극 쪽으로 유명한 감독으로, 자리에서 대본에 관해 논의할 좋은 기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직접 택시를 타고 갈 예정이었지만, 김한세가 자신이 마침 그녀 집 근처를 지나간다며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의 고집에 결국 그녀는 승낙했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었기에 문아영은 비교적 캐주얼한 옷차림을 선택했다.

하이웨이스트 청바지에 요즘 유행하는 검은색 크롭티를 매치했는데, 허리와 엉덩이의 곡선이 돋보여 세련되고 시크한 느낌을 주었다.

문아영을 태우러 온 김한세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입으니 정말 젊고 아름다워 보이네요.”

그의 칭찬에 문아영은 살짝 부끄러워졌다.

과거 최강원과 함께 있을 때는 주로 우아하고 차분한 ‘명문가 사모님’ 스타일을 고수했었다.

때로는 최강원이 좋아하는 김예지의 스타일을 흉내 내기도 했다.

당시 그녀는 최강원이 김예지 같은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생각했기에, 자연스럽게 그런 스타일을 추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하이힐도, 드레스도 좋아하지 않았다.

컨버스 운동화와 편안하고 캐주얼한 옷차림을 더 선호했다.

두 사람이 식당에 도착해 나란히 걸어 들어갔을 때, 바로 뒤에서 한 차량이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차 안의 최강원은 앞에 보이는 믄아영의 날씬한 몸매와 크롭티 사이로 드러난 하얀 허리를 바라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

이혼하더니 이젠 막 나가기로 작정한 건가?

허리를 반이나 드러내놓다니, 에어컨이 켜진 방에서 저렇게 입고 있다간 허리 시릴 텐데.

그녀의 얇은 허리로부터 골반,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그 유혹적인 몸 선이 그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자기도 모르게 이혼 전에 그녀와 나눴던 두 번의 격정적인 사랑의 순간이 떠올랐다.

한 번은 열정적이고 주도적으로 움직이던 그녀의 몸짓이 떠올랐고, 다른 한 번은 최씨 가문의 오래된 저택에서 벌어진 비밀스럽고 위험했던 그 분위기가 떠올랐다.

최강원은 갑자기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기 위해 셔츠의 윗단추를 하나 풀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아마도 내가 지난 1년간 그쪽.... 으로 너무 참아서 그런 걸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전 와이프를 보고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하겠어.’

곁에 있던 이영지가 적절한 타이밍에 끼어들었다.

“회장님, 도착했습니다.”

그제야 최강원은 정신을 차리고 안전벨트를 푼 뒤 이영지와 함께 차에서 내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문아영과 김한세가 방에 들어가니 이미 감독과 다른 스태프들이 와 있었다.

지난번 미팅에 불참했던 문아영을 위해 김한세는 그녀를 제작진들한테 인사시키며 소개했다.

인사를 막 끝내자마자 갑자기 방의 문이 열리며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왔다.

뒤돌아보니 최강원이 긴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의 서늘한 이목구비가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고 있었는데 흰 셔츠와 검은 바지의 심플한 복장이었지만, 키가 크고 몸매가 훤칠해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식적인 자리도 아니었던 터라, 풀린 셔츠 단추 틈으로 그의 매력적인 목선이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본 여자라면 아마 다들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문아영은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그녀의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바닥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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