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화려하고 안정된 그녀의 직업
문아영은 해외로 떠난 뒤 박정인을 통해 김예지가 임신한 적이 없었으며, 그 임신 진단서는 김예지가 조작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김예지의 목적은 단지 그녀와 최강원의 관계를 깨트리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문아영은 크게 분노하지 않았다. 김예지의 계략이 없었더라도 그녀와 최강원의 관계는 결국 끝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강원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야말로, 그녀가 완전히 포기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문아영은 김예지가 자신을 속인 일을 굳이 최강원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이미 이혼한 상황에서 그런 일을 들춰내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아영이 정말 아이러니하다고 느낀 건 따로 있었다. 최강원은 늘 그녀를 음흉하다거나 계략을 꾸민다며 비난했지만, 정작 그의 첫사랑인 김예지 또한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이었다.
박정인은 문아영이 그렇게 담담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자 참지 못하고 농담을 던졌다. “너야 최강원을 붙잡지 않는다 쳐. 근데 만약 그 사람이 너한테 집착하면 어쩔 건데?”
그러자 문아영은 마치 엄청난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웃음을 터뜨리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대스타님, 너 드라마 찍다가 진짜 머리까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최강원이 어떻게 나한테 집착을 하냐고?”
문아영은 최강원이 자신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최강원은 그녀를 그렇게나 싫어했고, 그의 성격은 언제나 차갑고 고고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집착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다만 그녀가 정말 걱정하는 건 따로 있었다. 그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앞길을 막아설 가능성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래서 최강원이 자신이 투자한 드라마의 작가가 문아영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바로 김한세에게 그녀를 교체하라고 요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녀의 농담에 박정인이 웃으며 대꾸했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너무 앞서갔네.”
“너는 마음 편히 연기만 해. 내가 알아서 조심할게.” 문아영은 미소를 지으며 박정인을 안심시켰다.
문아영은 박정인이 자신이 또다시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과거의 문아영이 아니었다.
과거에 최강원의 어머니 심경숙, 그의 여동생 최주희, 그리고 김예지까지 그녀를 괴롭혔을 때도 문아영은 늘 묵묵히 참아냈다. 그 모든 것은 단 하나, 최강원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경숙과 최주희는 대놓고 문아영을 멸시하고 경멸하는 언행과 태도를 보였다. 반면, 김예지는 그런 직접적인 방식 대신, 교묘하고 은밀하게 움직였다.
과거에 김예지는 최강원이 이미 문아영과 결혼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와 관련된 애매한 스캔들 기사를 계속 흘렸다. 이는 문아영이라는 아내의 존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문아영은 더 이상 최강원의 감정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도 더 이상 모든 것을 참아 넘길 이유가 없었다. 오늘 최주희에게 커피를 뿌린 것처럼 말이다.
*
김예지가 문아영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최강원 역시 사람들을 시켜 문아영을 조사했고, 누구보다 더 빨리 결과를 손에 넣었다.
유진 엔터테인먼트 CEO 사무실
최강원은 책상 앞에 앉아 자료에 적힌 작가의 이름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리아나?
이 이름, 왜 이렇게 낯이 익지?
그는 옆에 놓여 있던 서류 하나를 급히 집어 들고 펼쳤다. 그리고 그 안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순간, 그는 충격을 받았다. 거기에도 똑같은 이름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김한세한테 투자한 그 사극 드라마 작가가...... 문아영이라고?
최강원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최강원은 얼마 전 김한세가 아리아나라는 작가를 추천하며 했던 말을 떠올렸다. 김한세는 그녀가 비록 신인 작가이긴 하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글이 감동적이고 이야기 전달 방식과 표현 능력이 관객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김한세가 문아영을 그렇게 칭찬했던 것과 달리, 최강원이 3년간 그녀와 지내며 받은 인상은 전혀 달랐다. 최강원의 눈에 비친 문아영은 무뚝뚝하고 재미없으며, 특별한 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김한세가 말한 그 재능 있는 작가 아리아나를 자신이 알던 문아영과 연결 지을 수 없었다.
충격을 받은 최강원은 다시 한 번 문아영의 경력을 자세히 살펴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녀가 그동안 꾸준히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과거에 그는 매일같이 문아영을 조롱했다. 아무 쓸모도 없다며 그녀를 무시했고, 그녀가 단지 사치와 부를 탐내며 최씨 가문에 빌붙으려 했다고 비난했고, 심지어 이혼할 때도 그녀에게 사회와 동떨어져 살고 있으니 이혼하면 굶어 죽을 거라며 조롱과 멸시를 퍼부었다.
그러나 지금의 문아영은 화려하고 안정된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게다가 김한세로부터 극찬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는 작가로 자리 잡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