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그럴 자격도 없다
“뭐라고? 너희 오빠가 문아영 편을 들었다고?" 김예지가 믿기 힘든 표정으로 최주희에게 물었다.
최강원이 문아영과 결혼했던 3년 동안 그녀를 얼마나 무시했는지는 둘째치고, 이혼할 때 문아영이 최강원을 얼마나 철저히 망신줬는지를 생각하면, 그가 그녀를 싫어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도 그가 문아영 편을 들었다고?
김예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응.” 최주희는 울먹이며 방금 문아영과 있었던 갈등에 대해 전부 김예지에게 털어놓았다.
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에도 분을 삭이지 못한 최주희는 화난 목소리로 최강원을 원망했다. “생각 좀 해봐. 우리 오빠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고? 문아영이랑 이혼까지 했으면서 아직도 문아영 편을 드는 게 말이 돼?”
최주희는 자신의 감정에만 사로잡혀 불평만 늘어놓았고, 그런 그녀의 말이 최강원의 약혼자인 김예지에게 얼마나 불편하고 모욕적일 수 있는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김예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마음을 진정시키며 최주희를 다독였고, 동시에 자신의 체면도 지키려고 애썼다. “주희야, 너희 오빠가 꼭 문아영 편을 들려던 건 아닐 거야.”
“생각해 봐. 그들이 부부였을 때 너희 오빠가 언제 문아영을 감싸준 적 있었니?”
“오히려 너를 보호하려고 했던 걸지도 몰라. 너를 혼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체면이 서지 않으니까.”
김예지는 속으로 최주희가 스스로 자초한 문제를 그의 오빠인 최강원이 나서서 수습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비꼬았다. 그 탓에 최강원과 문아영이 다시 엮이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뉘앙스를 이해할 만큼 최주희의 머리가 좋지는 않았다.
최주희는 단지 김예지가 최강원이 자신을 보호하려 했다는 말만 알아들었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여겼다.
그래서 기분이 조금 풀린 그녀는 다시 문아영을 험담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문아영은 정말 싫어. 그 잘난 척하며 날 무시하는 태도 좀 봐.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아는 것 같잖아. 결국엔 우리 오빠랑 잘해보려고 온갖 수를 다 썼을 거 아냐.”
최주희의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김예지는 내심 불편했다. 최강원과 문아영이 과거에 그렇게 가까운 관계였다는 사실, 그리고 그 관계가 무려 3년이나 지속되었다는 점이 자꾸 떠오르며 마음을 무겁게 했다.
게다가 김예지는 아직까지 최강원과 그런 관계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욱 신경 쓰였다. 최강원이 이혼한 지난 1년 동안 그녀는 여러 번 은근히 신호를 보냈지만, 최강원은 여전히 그녀와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최강원과 헤어지기 전, 김예지와 그는 단순히 서로 감정을 나누는 선에서 머문 순수한 연애 관계였다.
사실 그때 최강원이 그녀를 원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오히려 김예지가 스스로 명문가의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쉽게 내어주면 최강원이 자신을 가볍게 보고 소중히 여기지 않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그녀가 모든 걸 내어주고 싶어도 최강원이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자, 김예지는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한편, 최주희는 여전히 전화기 너머에서 끊임없이 하소연을 늘어놓고 있었다. “예지야, 우리 오빠가 나보고 방에서 나오지 말래. 너 꼭 내 편 좀 들어줘. 나 진짜 답답해서 미칠 거 같단 말이야.”
전화를 끊은 뒤, 김예지는 더 이상 국을 끓일 마음이 사라졌다. 결국 가스불을 꺼버리고, 바로 사람을 시켜 문아영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
문아영은 병원을 나와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박정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박정인이 안도하며 말했다. “별일 없어서 다행이다. 네 그 하얀 피부에 흉터라도 남았으면, 나 진짜 최주희 가만 안 뒀을 거야.”
그리고는 잠시 망설이더니 덧붙였다. “근데 말이야, 최주희가 네가 돌아온 걸 알았다면, 김예지도 이미 알았을 가능성이 커. 그러니까 또 네 발목 잡히지 않게 조심해야 해.”
과거에 김예지는 문아영에게 임신 진단서를 보이며 최강원의 아이를 가졌다고 선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문아영은 그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 게다가 최강원이 차갑게 그녀에게 “나는 너와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고, 너 또한 그런 자격도 없어”라고 말했을 때, 문아영은 모든 희망을 잃었고, 그래서 스스로 최강원에게 이혼을 제안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