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앞으로 꽤 고생 좀 하겠는걸
“강원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허훈은 최강원의 셔츠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5만 원짜리 지폐를 흘깃 보며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최강원의 잔뜩 굳은 얼굴을 보고 겨우 웃음을 참았다.
최강원은 이를 악물며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더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입술을 굳게 다문 채 허훈의 사무실을 나갔다.
최강원이 나가자마자 허훈은 곧바로 손우석에게 전화를 걸어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야, 방금 강원이가 누구 데리고 우리 병원에 온 줄 알아?”
그러자 손우석은 전혀 놀라는 기색 없이 태연하게 세 글자로 답했다. “문아영.”
“어떻게 알았어?” 허훈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문아영이 돌아온 거 알고 있었어?”
그 말에 손우석이 여유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알고 있었지. 게다가 그녀가 강원이를 말문 막히게 만드는 것도 직접 봤거든.”
허훈은 손우석의 답에 다시 한번 놀라며, 두 사람의 대화가 어쩐지 흥미진진하게 흘러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방금 문아영이 최강원의 셔츠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은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며 한바탕 떠들어댔다.
전화기 너머에 있던 손우석도 허훈의 이야기에 낄낄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게 아마도 앞으로 문아영이 최강원을 대하는 기본 방식이 될걸?”
그 말에 허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강원이 말이야. 그렇게까지 당하고도 왜 문아영이랑 계속 엮이는 거지?”
“......”
허훈의 질문에 잠시 침묵이 흐렀고, 이내 허훈이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엔, 문아영이 어쩌면 강원이랑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던데.”
그러자 손우석이 키득거리며 대꾸했다. “야, 좀 더 자신 있게 말해. ‘어쩌면’은 빼고.”
허훈이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맞받아쳤다. “야,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왜 강원이한텐 그걸 안 알려주는 거야?”
그 말에 손우석이 어깨를 으쓱하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네가 보기에, 내가 말한다고 강원이가 퍽이나 믿겠냐? 문아영이 그렇게 오랫동안 붙잡고 매달렸는데, 이제 와서 마음이 식었다고 하면 믿겠냐고. 나라도 안 믿는다.”
허훈은 손우석의 대답에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이 상황을 두고 어쩐지 즐겁다는 듯 계속 농담을 주고받았다.
문아영이 최강원과 결혼했던 3년 동안, 그녀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허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왜 저러는 걸까? 곧 김예지랑 결혼한다며?”
최근 김예지가 최씨 가문에 시집온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이제 두 사람이 혼인신고만 하면 끝난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었다.
그때 손우석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강원이 저 녀석이 무슨 생각하는지 누가 알겠어.”
사랑이란 건 마치 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그 온도와 느낌은 당사자만이 정확히 알 수 있는 법이었다.
허훈은 여전히 의문을 품은 표정으로 다시 말을 꺼냈다. “내가 보기엔, 강원이 김예지한테는 별다른 감정이 없는 것 같던데? 그렇게 깊은 사랑은 아닌 것 같아.”
“그게 아니라면, 예전에 김예지랑 헤어진 직후 바로 문아영이랑 결혼했겠어? 문아영이랑 관계를 가졌든, 어르신이 강요했든, 강원이 성격상 누가 시킨다고 움직일 사람은 아니잖아.”
그러자 손우석이 반대편에서 눈썹을 살짝 올리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네 말은, 처음부터 강원이 문아영에게 꽤 만족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만약 네 말이 맞다면, 강원이 앞으로 꽤 고생 좀 하겠는걸.”
*
촬영장 밖
최주희는 자신의 차에 올라타 한참 동안 울며 짜증을 부렸다. 감정이 폭발한 그녀는 마치 세상이 모두 자신을 향해 등을 돌린 것처럼 억울해하며 소란을 피웠다.
옆에 있던 운전기사는 그녀의 소란에 질려 참다못해 담배를 피우려고 차 밖으로 나갔다.
이런 버릇없는 아가씨의 운전기사를 한다는 건 정말 운도 없는 일이었다.
최씨 가문이 돈을 많이 주지 않았다면, 그는 진작에 이 일을 그만뒀을 것이다.
최주희는 한바탕 울고 소란을 피운 뒤, 제일 먼저 김예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목적은 분명했다. 오빠 최강원이 오늘 문아영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꾸짖고 벌까지 줬다며 고자질을 해서, 앞으로 새언니가 될 김예지의 체면을 건드려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최주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다급히 말했다. “예지야, 문아영이 돌아왔어! 그런데 우리 오빠가 오늘 문아영 편을 들면서 나를 괴롭혔다니까!”
그 시각 김예지는 환하고 깔끔한 주방에서 국을 끓이고 있었다. 휴대전화 화면에 최주희의 이름이 뜨자, 그녀의 얼굴에 짙은 불쾌감이 스쳐 지나갔다.
김예지는 최주희를 속으로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절친이자 예비 새언니라는 가면을 쓰고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아야 했다.
최주희의 하소연을 듣는 순간, 김예지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국자를 놓쳐 바닥에 떨어뜨렸고, 쨍그랑 소리가 주방에 울려 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