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계속 해서 운이 없다
손우석은 그가 전화를 끊자 옆에서 느긋하게 제안했다.
"네가 문아영이 흔들기 작전으로 계속 너한테 매달릴까 봐 걱정된다면, 차라리 아예 그녀의 희망을 끊어버려. 당장 김예지랑 결혼해버리면 되지. 그러면 문아영도 완전히 포기할 거고, 너희 어머니도 조용해질 거야."
최강원이 손우석의 말 속에 담긴 놀림과 조롱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그에게 차가운 눈빛을 한번 보내고 나서 운전기사가 가져온 차에 올라타 떠났다.
손우석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신도 차에 올라 자리를 떴다.
사랑이란 게 정말 당사자는 혼란스러운데 옆에서 보는 사람은 또 뻔하게 보이는 법이었다.
택시를 타고 떠난 문아영의 기분은 무거웠다.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게 막힌 듯했다.
그녀가 힘든 이유는 최강원을 여전히 그리워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오만하고 거만한 태도에 대한 분노가 그녀를 짓눌렀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런 태도로 자신에게 말을 하는 건, 자신이 아직도 그를 신경 쓴다고 생각해서일까?
정말 우스웠다.
그녀는 예전에 정말로 최강원 없이는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혼 후 나중에서야 이 세상의 자유로움을 알게 됐다. 이 일 년 동안 그녀의 삶은 다채롭고 즐거웠다.
겪어 보니, 이 세상에서 한 사람에게 매달리지 않아도 살 수 있었다.
문아영의 작가 일은 매일 회사에 출근할 필요가 없었다. 각 부서 회의나 작가로서 설명이 필요한 경우에만 참석하면 됐고,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대본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오전, 문아영은 시간을 내서 백화점에 갔다. 최승학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했다.
사실 그녀도 이혼 후에 최승학과 연락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일 년 동안 최승학이 계속 그녀와 연락을 유지하면서 해외에 혼자 있는 그녀를 걱정해 주었기 때문에 문아영은 최승학을 완전히 차단하고 연락을 끊을 수가 없었다.
최승학은 목 디스크가 있고 여름에는 매일 에어컨을 켜니, 문아영은 남성용 스카프를 사서 최승학에게 주며 목을 보호하게 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남성복 매장을 둘러보는데, 하필이면 또 최강원과 마주쳤다.
문아영은 자신이 점을 보러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요즘 따라 일이 계속 꼬이는 게 정말 운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강원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성숙하고 우아한 분위기와 함께 차갑고 고고한 매력을 풍겼다. 그의 모습은 주변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역시 최승학의 생일 선물을 고르러 온 참이었다. 사실 최승학의 생일은 이미 며칠 전에 지났지만, 최강원이 출장 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던 터였다.
게다가 그동안 매년 최승학의 생일에는 문아영이 항상 선물을 준비해 줘서 그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는데, 올해는 그가 직접 고를 수밖에 없었다.
최승학이 전화해서 오늘 점심에 오라고 했고, 그는 이왕이면 선물도 같이 가져가는 게 성의가 있을 것 같았다.
원래 그는 점심에 다른 약속이 있었지만, 최승학이 하늘이 무너져도 취소하고 오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와의 약속에 가야만 했다.
문아영은 최강원을 보지 않은 척하고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이 원하는 스카프를 고르고 있었다.
최강원은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그녀 옆으로 와서는 입을 열자마자 비웃었다.
"누구는 여전히 안목이 형편없네."
최강원도 자신이 왜 그러는지 몰랐다. 문아영이 어젯밤 이준과 저녁을 먹고 이제는 남성복 매장에 나타난 걸 생각하니 첫 반응은 그녀가 이준에게 줄 물건을 사러 온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에서 이유 모를 화가 치밀어 올라 참지 못하고 독설을 내뱉고 말았다.
문아영은 살짝 입술을 깨물며 자신이 들고 있는 갈색 계열의 체크무늬 스카프를 내려다보았다.
분명히 최승학의 나이에 잘 어울리는데, 최강원은 앞뒤 상황도 모르면서 그녀를 비난했다.
이는 그녀에게 최강원과 결혼했을 초기를 떠올리게 했다. 그녀가 진심을 다해 최강원의 일상복을 골라줬을 때도 최강원에게 취향이 형편없다며 무정하게 무시당했었다.
사실 문아영은 자신의 안목과 취향이 나쁘지 않다고 자부했다. 박정인이 시상식에 입고 갈 드레스를 몇 번 골라달라고 했을 때도 그녀가 골랐던 스타일들이 박정인의 팬들에게 엄청난 호평을 받았었다.
사실 최강원은 그냥 그녀의 모든 것이 눈에 거슬려서 이것저것 트집을 잡았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