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화면이 주는 극도의 쾌감(1)
손이 하희진의 뺨을 때리기 직전, 하희진은 그녀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녀의 눈빛은 순간적으로 차가워졌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모르겠네."
그 눈빛을 마주한 하은지는 본능적으로 몸이 떨렸다.
그녀는 하희진이 변했다고 느꼈다.
비록 외관 상 그대로였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더 날카로운 가시와 차가운 무정함이 자라나 있었다.
"하희진, 시치미 떼지 마. 오늘 네가 그렇게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 내가 네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와 약혼하는 걸 보고 속으로 미칠 것처럼 괴로웠을 거야. 넌 나와 소태진을 질투해서 이런 일을 벌인 거야. 전형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증오지. 얻지 못하면 부수려고 하는 거잖아."
하희진은 그녀의 말에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질투라고? 저런 쓰레기를 두고? 참 우습군."
"웃어? 내가 네 심정을 정확히 맞췄으니 이제 할 말이 없는 거지?"
하은지는 격분하며 다시 물었다.
"하은지, 너야말로 네가 쓰레기통이나 옆에 끼고 있으면서 그걸 보물이라 생각하는구나.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너를 부러워한다고 착각하고 있잖아. 얼마나 한심한지 모르겠어."
마침 그 순간, 소태진이 복도로 들어오며 하희진의 말을 들었다. 그녀의 말이 그에게는 칼처럼 날카롭게 가슴을 찔렀다.
쓰레기통이라니? 그는 한때 그녀에게 있어 세상의 전부였고, 그녀는 늘 그와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걸 상상했다.
하은지는 비웃으며 말했다.
"그래, 네가 잘도 부정하겠다. 과거엔 네가 매일 나와의 결혼을 꿈꾸지 않았다는 말을 말야."
하희진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래, 과거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어. 그리고 네가 말하는 질투나 증오라는 게 정말 내 동기라고 생각한다면, 증거를 가져오도록 해."
하은지는 증거가 없었다. 그녀는 더욱 화가 나며 소리쳤다.
"증거는 필요 없어. 내가 지금 너를 목 졸라 죽여버릴 거야!"
그녀는 분노에 차서 하희진의 목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하희진은 가볍게 몸을 비틀어 그녀의 손길을 피했고, 균형을 잃은 하은지는 발목을 접질리며 바닥에 세게 넘어졌다.
"그만해!"
소태진이 단호히 외치며 하은지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하희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그런 태도는 하은지를 더욱 화나게 했다.
"오빠, 하희진이 절 괴롭힌 거예요!"
그녀는 억울한 표정으로 외쳤다.
하지만 소태진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며 하희진을 향해 말했다.
"하희진, 우리도 한때 서로 사랑했던 사이야. 꼭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여야 하니?
대화를 한 번 가져보는 건 어때?"
하희진은 경멸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태진, 네가 뭘 봤고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증거도 없이 날 비난하려거든 입 닥쳐. 그리고, 설령 내가 했다고 해도, 네가 날 탓할 자격이 있긴 해?"
그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과거에 이런 남자를 사랑했다는 사실에 더욱 혐오감을 느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올린 채, 냉정히 복도를 걸어 나갔다.
소태진은 그녀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방금 한 말 하나하나가 그의 가슴을 깊게 찔렀다.
하은지는 그의 반응에 더 화가 났다.
"왜 가만히 있어? 당장 사람들 불러서 쟤를 붙잡아야지! 저년이 한 게 분명하잖아요!"
하은지의 말에 소태진은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그만해! 네가 증거를 갖고 있어? 제발 좀 생각이란 걸 하라고."
그의 언성이 높아지자 하은지는 억울해하면서도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그저 발을 구르며 울분을 삼켰다.
엘리베이터에 오른 하희진은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바로 그때, 진다혜의 전화가 걸려왔다.
"희진아, 그동안 사경연을 꼭 스카우트하고 싶었지? 방금 그와 원 소속사의 계약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어. 게다가 재계약 의사가 없다네. 내가 그 사람 저녁 8시에 드림랜드 호텔 스위트 드리즐 룸에서 만나기로 약속 잡았어."
"알겠어.”
하희진은 전화를 끊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바로 이어진 하건국의 전화는 그녀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다.
"딸아, 한 시간 내로 집에 오렴. 할 얘기가 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집에 도착했을 때, 집안 분위기는 무겁고 침울했다. 하건국은 소파에 앉아 굳은 얼굴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고, 하은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진미령은 그의 옆에 앉아 조심스레 말했다.
"여보, 은지도 사랑에 눈이 멀어 그런 실수를 저지른 거잖아요. 이번 일은 나중에 따지기로 해요.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게 있지 않나요? 당신을 정말 화나게 한 건 사실 희진이 아닌가요?"
진미령이 다시 말했다.
"설령 은지가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희진이가 이런 짓을 벌인 게 잘한 건 아니잖아요. 우리 집안의 명예를 이렇게까지 떨어뜨린 게 절대 정당하지 않아요.”
하희진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이 진미령을 잠시 쳐다본 후, 천천히 다가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주머니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에요? 언니의 약혼자를 유혹하고 제 인생을 망친 게, ‘잠깐 사랑에 눈이 멀어서’ 얼렁뚱땅 넘어가야 한다고요?”
진미령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희진아, 은지가 말한 대로 정말 모두 네가 벌인 일인거니?”
"네 여동생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 해도, 결국 가족의 치부를 드러낸 건 잘못 아니냐? 너는 이런 일이 우리 가문의 명예를 망치리라는 생각을 못 했던 거니?"
하건국의 얼굴은 여전히 잿빛으로 굳어 있었다.
오늘 있었던 사건들, 즉 하은지와 소태진, 그리고 하희진 사이에서 벌어진 모든 일로 인해 하씨와 소씨 집안 모두 전국적인 웃음거리가 되어버렸다. 그가 화를 참지 못할 수는 없었다.
"제가 한 일이 아니에요."
하희진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어떻게 단언하시죠? 이 일을 터뜨린 사람이 소씨 집안의 라이벌이 저질렀을 가능성은 없다고요? 그 집안 사람들 인성이 형편없는데, 그들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저뿐이겠어요?"
하건국은 딸의 눈빛을 바라보며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다.
"아니야! 분명 너야! 타이밍이 너무 딱 들어맞잖아! 아빠, 하희진이 하는 헛소리하는 거 듣지 마세요!"
하은지는 억울한 듯 외쳤다.
"여보, 사돈 쪽에서 이미 조사를 시작했다고 하니, 곧 진상이 밝혀질 거예요. 이런 일을 퍼뜨린 놈은 소씨 집안에서 가차 없이 처단할 거에요."
진미령은 차갑게 말하며 하희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하희진은 진미령이 자신에게 들으라고 한 말임을 알면서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조사? 그들이 뭘 조사할 수 있다고? 이 정보는 인스타그램 내부 관계자를 통해 언론에 뿌린 거고, 이때 사용한 계정은 가짜 IP를 사용했는데."
하희진은 냉소를 띠며 말했다.
"하은지, 네가 내 약혼자를 유혹하고, 영상 통화로 너희 불륜현장을 내게 생중계했을 때, 난 이미 한계에 다다르도록 참았어. 그런데 너는 그 주둥아리를 아직도 못 닫는 거야?"
그 말을 들은 하건국은 곧바로 격분했다.
"뭐라고?"
그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하희진이 3년 동안 집을 떠났던 것이었다. 그런 일을 직접 봤다면 누구라도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맞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니가……"
"입 다물어! 한 마디만 더 하면 당장 집안 규율로 다스릴 거야!"
하건국은 소리쳤다.
"언니의 약혼자를 유혹했으면서도 네가 잘났다고 할 셈이냐?"
"제 약혼자를 유혹한 걸로 끝나지 않았어요. 영상 통화를 하고 제가 현장에 갔을 때, 그들은 나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배를 걷어차고, 얼굴을 짓밟으며 저를 폭행했어요."
하희진은 냉소를 띤 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하건국은 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의 가슴은 터질 듯 아팠고, 딸이 겪었을 고통을 상상하자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내 딸이 그때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는 하은지와 소태진이 이렇게까지 악랄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에요……"
하희진은 자신의 헤르메스 가방에서 몇 장의 서류를 꺼내어 하건국에게 건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