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내기
"네, 아빠. 여기 보세요. 이건 우리 학과의 매 학기 성적 순위예요."
하희진은 핸드폰을 꺼내 성적표 사진을 하나씩 찾아 하건국에게 보여주었다.
모든 성적표에서 그녀의 영문 이름 Seven Ha가 항상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건국은 깜짝 놀라며 감탄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하희진의 성적이 괜찮긴 했지만,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집을 떠난 후, 그녀는 세계 최고 대학 중 하나에 입학한 것도 모자라, 학과 수석이 되어 돌아왔다.
"우리 딸, 정말 대단하구나!"
하건국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활짝 웃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하희진의 뛰어난 성과로 가득 찼고, 하은지가 자랑했던 해성대학교 금융학과 상위 50등 성적은 완전히 잊혀졌다.
그런 철저한 무시에 하은지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해성대학교는 국내 명문대 중 하나이긴 하지만, 춘하대학교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분을 참지 못하고 이를 꽉 깨물었다.
"겨우 춘하대학교 붙었다고 뭐가 그렇게 대단해?"
하은지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진미령이 재빨리 테이블 밑에서 그녀의 발을 세게 밟았다.
그리고는 눈짓으로 입 다물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맨날 말만 많고, 니가 할 줄 아는 건 집에서 분탕질 치는 것뿐이냐?"
하건국이 냉정하게 말했다.
"별거 아니라며? 그럼 네가 한번 춘하대 붙어 보든가!"
하희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식사를 이어갔다.
그녀는 마치 이 상황과 전혀 무관한 방관자처럼 행동했다.
하건국은 원래부터 하은지의 성격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그녀가 하희진에게 저질러온 짓들을 알게 된 후로는 더욱 신뢰를 잃었다.
"희진아."
하건국이 갑자기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시내 중심에 새로 짓고 있는 파라데이 아파트 있잖아. 그 브랜드 광고 모델을 하나 선정해야 하는데, 혹시 적당한 사람이 있을까?"
그 말을 듣자마자, 하은지가 흥분해서 말했다.
"당연히 사경연이죠! 그가 모델이 되면, 우리 아파트 분양 대박 날 거예요!"
"넌 현실 감각이 없구나. 사경연이 누군데 그렇게 쉽게 계약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
하건국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돈이면 되죠! 지금 사경연의 광고료가 40억쯤 하잖아요?
그럼 우린 60억을 제시하면 돼요. 그렇게 하면 거절 못 할 걸요?"
하은지는 오랫동안 사경연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의 콘서트와 팬미팅에 수없이 다녔지만, 한 번도 그를 가까이서 볼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집안 사업을 이용해 그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니!
이 계약을 성사시키면, 친구들 앞에서 다시 한번 자랑할 거리가 생기는 것이었다.
"참, 대단하시네. 60억이 뉘 집 개 이름이야?"
하희진은 무심히 말했다.
그리고 우아하게 손에 들고 있던 오렌지 주스를 내려놓았다.
"비싸긴 하지만, 위험을 감수해야 큰 성과가 있는 법이에요. 사경연의 팬덤 규모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몰라요?"
하은지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게다가, 내가 직접 X 엔터테인먼트와 협상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요."
그녀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하희진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왜 그렇게 확신하는데?"
하희진이 물었다.
"그야 나는 돈이 많으니까."
하은지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녀는 뭔가 대단한 걸 말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그때, 하희진이 하건국에게 물었다.
"아빠, 사경연을 모델로 쓰고 싶으세요?"
"가능하다면 쓰고 싶지. 60억도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닌데… 문제는 그를 설득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거야."
하건국이 솔직히 말했다.
"20억으로 계약, 성공할 수 있어요."
하희진이 침착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자, 하은지는 코웃음을 치며 눈을 굴렸다.
"웃기지 마. 20억으로 사경연을?"
"네 주제를 알긴 하는거야
"대체 뭘 믿고, 그렇게 단언하는 거야? 마치 사경연이 네 부하라도 되는 것처럼. 네가 명령하면, 그가 바로 움직이기라도 한대?"
그 말을 듣고, 하희진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곤,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바로 사경연의 보스인데?'
하은지가 불만스럽게 물었다.
"뭘 그렇게 웃고 있어?"
"아니야, 그냥…"
하희진은 가볍게 대답했다.
"좋아, 그럼 내기하자."
하은지가 제안했다.
"하희진 너는 20억, 나는 60억으로 시작해서 누가 계약하는지 겨루는 거야."
"그리고 누가 실패하는지 보자."
"이긴 사람은 진 사람에게 원하는 걸 요구할 수 있어. 어떤 요구든 반드시 들어줘야 해."
하은지는 하희진이 사경연을 섭외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60억이면 몰라도, 꼴랑 20억으로? 그건 완전히 헛소리 같이 들렸다.
그리고 이 기회를 이용해 반드시 하희진을 제대로 밟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무릎 꿇고 빌게 만들어야지.
"은지야, 선은 넘지 말자꾸나."
하건국이 차갑게 말했다.
"아빠, 그냥 자매끼리 내기하는 거잖아요. 그게 뭐가 그렇게 심해요?"
하은지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그리고 누가 질지도 모르는 거고요."
"쓸데없는 짓이다."
하건국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
그런데도 하희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좋아, 내기 받아들일게. 하지만 네가 졌을 때는 확실히 인정해야 해."
"좋아, 근데 만약 진 사람이 내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하씨 집안의 모든 재산 상속권을 포기한다. 어때?"
하희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콜!"
하은지는 자신만만하게 손가락을 튕겼다.
사경연을 잡는 건 그녀에게 필연적인 승리라고 상상했다.
60억을 들고 있는 자신은 마치 '다이아' 티어 플레이어가 된 것만 같았다.
반면, 하희진은 고작 '브론즈' 수준에 불과한 듯 보였다.
이런 싸움에서 자신이 질 가능성은 단 1%도 없었다.
"아빠, 그럼 이렇게 결정하는 거죠?"
하희진은 부드럽게 하건국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건국은 딸을 한참 바라보더니,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그는 천천히 냅킨을 들어 입을 닦고는 우아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먼저 가볼 테니, 너희도 그만들 하고 조용히 식사나 해라."
그가 식당을 떠나자, 하은지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비웃었다.
"하희진, 너 이제 망했어. 기다리고 있어. 네가 내 앞에서 무릎 꿇고 강아지처럼 짖는 거, 인터넷 생중계할 거니까."
"그리고 아빠 회사의 상속권도 포기하게 될 거고."
그녀는 오만하고 자만에 찬 미소를 지은 채 생각했다.
“아빠가 날 보고 맨날 집에서만 분탕질만 친다고 하셨지? 좋아, 이번엔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 드릴 테니까. 최근 하희진이 너무 잘나가는 게 못마땅했는데, 이번 기회에 철저히 눌러주고 제대로 망신을 줘야겠다.”
그러나 하희진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런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밤 8시, 드림랜드 호텔 '레이니 윈드' VIP 룸.
하희진은 정시에 호텔에 도착했다.
부드러운 오렌지 컬러의 꽈배기 니트와, 하얀색 플로럴 롱스커트, 그리고 오렌지 컬러의 앵클부츠를 매치한 그녀는 우아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의 미모는 온갖 보석보다도 빛났다.
방에 들어서자, 사경연, 진다혜, 그리고 X 엔터테인먼트의 고위 관계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딱 한 테이블이 가득 찰 정도의, 최고 핵심 인원들 만이 모여 있었다.
그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존재는 사경연과 진다혜였다.
사경연은 심플한 흰색 맨투맨과 검은색 볼캡을 착용한 수수한 차림이었다.
그는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맨얼굴이었지만, 그의 미소는 홋카이도의 설원처럼 청초하고 깨끗했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순히 앉아 있을 뿐인데도, 주변의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 옆의 진다혜는 복숭아빛 핑크 컬러의 정장에 흰 셔츠를 매치한 단정한 스타일이었다.
그녀의 짙은 머리카락은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그 차분한 카리스마는 마치 TV 속 완벽한 커리어 우먼의 표본처럼 보였다.
그녀의 미모는 단순히 아름다운 것을 넘어서, 날카로운 지성과 강인함이 함께 깃든 아름다움이었다.
둘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지만,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방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가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테이블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희진이 들어오자, 갑자기 모든 대화가 멈췄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그녀를 향해 인사했다.
"대표님, 들어오셨습니까."
그녀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사경연 옆의 빈자리에 앉았다.
"무슨 이야기 나누고 계셨어요?"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아, 별거 아니고요. 앞으로 진행될 연습생 공개 모집 관련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진다혜가 대답했다.
그 순간, 진다혜의 휴대폰이 진동하며 새로운 이메일이 도착했다.
"띠링—"
그녀는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열어 이메일을 확인했다.
보낸 사람은… 하은지.
메일 내용:
"사경연 씨를 저희 '파라데이' 신축 아파트 모델로 기용하고 싶습니다. 광고 모델료 60억을 제안드립니다."
진다혜는 순간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을 하희진에게 건넸다.
"하 대표, 이 여자 또 무슨 짓거리를 꾸미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