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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5년 후.

우주는 한 고용주가 낙태 수술하러 병원에 오는 걸 동반하였다.

여자는 수술실로 들어서기 전까지 엄청 긴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주는 아래층으로 가서 따뜻한 물 한 잔을 떠오더니 그녀한테 건네주며 잠깐이면 된다고, 금방 끝난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여자는 따뜻한 물을 손에 쥐고는 얼굴이 창백한 채 약간 불안해하며 물었다.

“안 떠나실 거죠? 그쵸?”

“동반하는 건 제 일입니다, 당연히 안 떠나니까 걱정마세요.”

우주는 여자의 백을 대신 들어줬다. 그녀의 정서가 안정되고 수술실로 들어간 후 몸을 돌려 복도 의자에 앉으려고 할 때, 순간 멈칫하며 고개를 들자 갑자기 멀리 서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짧디짧은 그 한 순간에, 우주는 자신이 환각이 생겼나하며 약간 의심했었다.

그는 또 한 눈 보았다. 저 얼굴은, 역시 방태준이 맞았다!

주름 한 점 없이 곧게 펴진 코트를 입고 꼿꼿하게 그 곳에 서있었다. 몇 년 전보다도 더욱 품격있고 진중해 보였으며 얼굴에는 여전히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홀연히 닥쳐온 이 광경이 참으로 황당스럽다고 우주는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나 둘이 다시 만났다는 곳이 수술실 앞일 줄이야!

첫눈에 보았을 때부터 방태준이 잘 생기다 못해 사람같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잘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너무나 잘 긴 그를 꿈에서라도 갖고 싶었다, 엄청 욕심이 났다.

태준의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고 정교한 눈섭에 코도 오똑했으며 입술도 얇고 고왔다. 그래서 우주는 예전에 몇 번이고 그와 입을 맞추면서도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더더욱 그한테서 뭔가를 갈취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려하지 않았다. 태준은 그와 몇 초간 눈을 마추고는 한 발 뒤로 물러서더니 몸을 돌리고 가버렸다.

그후 우주는 넋이 나간 상태로 정신을 딴 곳에 팔고 있었다. 그러다 고용주인 여자가 입술과 얼굴이 창백해져서 수술실에서 나왔고 우주는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는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고나서 그녀를 부축이며 밖으로 나갔다.

여자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 목적지까지 절반의 노정이 남았을 무렵, 여자는 갑자기 구슬프게 울면서 우주한테 물었다.

“내가 자신의 몸도 잘 안 아끼는 여자로 보여요?”

“아니요.”

우주가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그러고는 여자더러 앞으론 자신의 몸을 잘 아끼고 사랑해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그도 남의 인생에 대해 뭐라하면서 지적 할 자격이 없었다. 자신의 지난 일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언급하기가 부끄러웠고, 지금은 말도 안 될 정도로 엉망진창에 형편 없이 지내고 인생인데다 사랑에서도 또한 얽히고 꼬였다. 그래서 남들의 미움과 혐오를 사는 건 일쑤였다.

우주는 갑자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만약 자신이 여자라면 아마 방태준 때문에 몇 백 번은 낙태를 했을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태준이 그가 너무 싫어서 밤일 하는 것조차 하는 것도 약을 먹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그한테 우주는 또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고 갈망하면서 비굴하게 굴었었다.

결국엔 그한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말았다.

우주는 주말 하루만 시간을 내어 병원에 병보러 가는 걸 동반해주는 알바를 하고 있었다. 그는 2 년 전부터 홀로 자주 병원으로 들락거려서 사람들이 혼자서 병을 보러갈 때의 그 고독함과 쩔쩔매며 어쩌할 바를 몰라하는 난처함을 매우 뼈저리게 느꼈었다.

그는 현재 한 과학기술 회사에서 아트 디자인 직을 맡고 있다. 대학도 간신히 졸업했다. 1년 동안의 휴학 신청을 냈었고 그를 알고 있는 지인이나 동기들이 다 졸업을 마친 후에야 몰래 학교로 돌아가 복학해서 학업을 마저 다 마쳤다.

후엔 그가 다니는 회사도 인수를 당했지만 그한테 별로 지장이 없었다, 그를 놓고 말할 땐 그냥 사장님이 바뀌었을 뿐이다.

우주가 금방 회사에 입사하였을 때부터 오늘에 새로 온 부대표님이 취임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입으로 빵을 한 쪼각 물어베고 회의실로 들어섰을 때, 마침 회의실 앞쪽에서 비서실장과 방태준이 앉아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세상이 참 좁다고 어쩜 소설 속에나 나오는 전 남자친구가 자신의 상사가 되는 이런 희극적인 우연을 자신이 닥치게 될 줄이야 하며 속으로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다.

회의에서 우주는 계속 집중을 못하고 회의 내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회의실엔 온통 방태준의 목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그러다 회의가 다 끝나고 동료인 임재성이 그한테 물었다.

“오늘따라 너 같지가 않네. 예전엔 항상 열심히 회의 내용 전부를 다 기록하더니, 웬 일이래.”

하는 일마다 서툴고 중요하지 않는 내용도 모조리 다 기록하는 초딩같다며 항상 사람들은 그한테 이렇게 말했었다.

자신이 2년 전에 수술 한 번 받은 이후로 기억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을 우주 혼자만 안다. 늘 자기도 모르게 무언가를 자주 까먹어서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계속 놏트거나 휴대폰으로 기록하고 있는 거다. 예전엔 곁에 방태준이 항상 시험 시간, 수업 시간표에 또 나갈 때 빠뜨린 게 없는지 잘 체크해 보아라고 일침을 해주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주 혼자만 남았으니 뭐든지 자신절로 기록해야하고 중요한것들을 여러번 되뇌면서 기억해야 한다.

“뭐 딱히 기록할 게 별로 없어서요.”

우주가 금방 말을 마치자마자 동료들이 방태준에 대한 말이 오고가는 게 들렸다. 듣기론 높은 월급을 조건으로 회사에 초빙해 왔다고, 또 어느 대학을 졸업하고 어떤 휘황찬란한 업적을 이루었다 등등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을 우주는 다 알고 있었다. 가끔씩 방태준의 소셜 계정들을 몰래 눈팅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뉴스에 소식들도 빠짐 없이 잘 챙겨보았었다.

그의 기억속으로 한 매거진에서 방태준을 인터뷰하면서 그의 이상형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그는 외모를 딱히 보지 않고 자신이 사피오 섹슈얼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주는 사피오 섹슈얼이 무슨 뜻인지 한 번 검색해 보았다. 입을 열릴락 말락하며 속으로는 자신이 다음생에 태어났어도 절대 방태준의 이상형이 될리가 없을터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방태준이 날 역겹게 생각했던 거 겠지.’

방태준이 점점 멀어져 닿을 수조차 없을 정도의 존재로 되어버리니 마치 자신만 제자리 걸음하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유기견이 된 것만 같았다.

강우주의 인생은 21살 이 되던 해에 아예 두동강 나버렸다. 앞부분의 인생은 마치 사탕발린 말들과 꿀 발린 생활에 빠져있었다면 뒷부분의 인생은 아마 쓰디쓴 간수 속에 묻혀버려 억지로 쓴 맛을 되새기며 삼키고 있다고 해야 한다. 비참함을 겪고 나서야 세상에서 자신외에 아무도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져 줄 의무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오후가 되자 회사에서는 저녁에 회식할 거라고 메일로 통지를 보내왔다. 안 가긴 그렇고해서 우주는 퇴근 정리를 마치고 느릿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밖으로 향했다. 그러다 마지막엔 강우주와 다른 한 동료만 남겨지게 되었다. 그는 제자리에 서서 속으로 왜 자신만 운이 이토록 나쁜걸까 하며 또 신세한탄을 시작했다.

그러다 방태준이 차를 몰고 오더니 자신의 차에 앉아서 함께 가도 된다고 말했다.

우주는 방태준의 시선이 자신한테 한동안 멈춰있는 걸 발견하고는 갑자기 긴장해나더니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방태준도 자신이 재수 없게 됐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보고도 아는 척하지도 않았으니... 뭐 차라리 처음 본 낯선사람 취급하는 게 더 낫지.’

우주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우주는 기타 다른 한 동료하고 방태준의 차에 올라탔다. 둘은 아주 얌전하고 반듯하게 앉아서는 약속이나 한 듯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주는 차 안의 어디선가 엄청 눈에 띠는 로고 보며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러다 대2가 되던 해에 자신이 방태준한테 지금 그가 몰고있는 차와 똑같은 자동차를 선물하려 했던 게 문득 생각났다.

그러나 후에는 방태준이 그 선물을 받지도 않고 화를 한바탕 크게 내었었다. 그래서그가 있는 앞에서 더는 언급하지도 않고 도리어 자신이 차를 운전하고 다녔다. 마침 그때 우주는 운전면허를 땄지만 실제 도로 위에서 주행하는 게 무섭다며 대부분은 방태준더러 기사노릇하게 하고는 정작 자신은 자동차 조주석에만 앉아있었다.

그리고 조주석엔 자신만의 자리고 자신만이 앉을 수 있으며 딴사람은 안 된다고 방태준한테 말했었다. 그러나 방태준은 우주가 철없는 꼬장을 부린다고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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