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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가족들은 순식간에 뻘쭘해졌다.

신지아는 늘 가시 돋친 고슴도치 같아서, 말만 섞으면 싸움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이번엔 모처럼 평화롭게 대화하나 싶었는데, 진짜 사과할 생각까진 못 했던 거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기들이 너무 섣불렀던 건 사실이고, 억울한 것도 당연했다.

사과하고, 자존심 좀 세워주고, 가족끼리 화해하면 되는 거다. 가족 앞에서 고개 좀 숙이는 게 뭐 대수라고.

"미안해."

윤세라가 선수 쳐서 입을 열었다.

"지아야, 내가 가족들 대신 사과할게. 이번 일, 내가 다친 것 때문에 가족들이 너무 놀라서 그런 거니까 엄마 아빠랑은 상관없어. 미워하려면 나만 미워해."

"네가 무슨 잘못이 있니, 그 김민지라는 애가 나쁜 년이지." 윤정희가 바로 끼어들었다.

사람들은 또 중구난방으로 윤세라를 위로하기 시작했고, 신지아는 안중에도 없었다.

신지아는 익숙하다는 듯, 결정권자인 신동철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신동철이 헛기침을 했다.

"이번엔 아빠가 오해했다.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라, 다 들어주마."

"그러면 지분..."

그녀가 일부러 말꼬리를 늘리자 사람들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달라고 해도 안 줄 거잖아요."

사실 신씨 집안 자식들은 성인이 되면 회사 지분 5%를 증여받는데, 신지아의 몫은 진작에 부모님이 윤세라에게 넘겨버렸다.

윤세라에게 빚진 게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5%. 윤세라 친엄마 목숨값치고는 싸다고 생각했겠지.

그녀의 비웃음을 본 신동철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

"정말 미안하면, 외할머니 집 당장 제 명의로 돌려주세요."

신지아가 본론을 꺼냈다.

그 집은 돈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되지만, 기념비적인 의미가 컸다.

무리한 요구도 아니었는데, 신동철과 윤정희의 표정이 순간 묘해졌다.

신동철은 그녀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그건 약혼식 끝나고 얘기하자."

"말했잖아요. 약혼 안 한다고. 강민우랑 헤어졌다고요."

그녀가 정색하며 신동철을 노려보았다.

"원하는 거 다 들어준다면서요? 하나도 못 들어주면서 무슨 사과의 진정성이 있어요?"

딸에게 대놓고 추궁당하자 신동철은 부끄러움이 분노로 바뀌어 책상을 쾅 내리쳤다.

"너 성격 진짜 못돼먹었다! 약혼이 애들 장난이야? 취소 절대 안 돼. 약혼 안 하면 집도 못 받을 줄 알아."

"원래 할머니가 저한테 남겨준 건데, 왜 그걸로 협박질이에요?"

"내가 네 애비니까! 그 집 명의가 지금 네 엄마한테 있으니까!"

그가 눈을 부라렸다.

"강씨네랑 우리랑 사업이 얼마나 얽혀 있는데, 파혼하면 얼마나 타격이 큰지 알아?"

"그래서요? 신씨네 사업이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배당금 한 푼 받은 적 없는데 알 게 뭐람.

할 말이 없어진 신동철은 억지를 부렸다.

"정 안 하겠다면 언니 시집보낼 거다. 그 집도 언니 줄 거야. 어차피 다 같은 외손녀인데! 꼭 너한테만 주란 법 있어?"

어떤 포인트가 그녀를 폭발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신지아가 벌떡 일어나더니 밥상을 냅다 뒤엎어버렸다.

와장창—!!

국물과 반찬이 식탁 위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쏟아졌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신지아는 눈이 시뻘게져서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꼴이 말이 아닌 가족들을 노려보았다. 이를 악물고 한 글자 한 글자 씹어뱉었다.

"주라고 해. 걔가, 그럴 자격이나 있어?"

상이 엎어질 때 윤정희가 반사적으로 윤세라를 감싸 안았지만, 신지아가 너무 세게 엎는 바람에 뜨거운 국물이 윤세라 머리 위로 튀었다.

그녀는 세상 불쌍한 표정으로 울먹였다.

"지아, 아무리 내가 미워도 그렇지... 할머니는 내 할머니이기도 한데, 왜 말을 그렇게 해?"

신재민은 입에 든 밥알을 퉤퉤 뱉어냈다.

"무시해, 쟤 완전 미친년이야."

"이런 호로자식이! 부모 면전에서 밥상을 엎어? 네가 못 할 짓이 뭐냐!"

신동철이 길길이 날뛰었다.

윤정희는 발을 동동 구르고, 신재원은 엄마랑 윤세라 다친 데 없나 살피느라 정신없었다.

식당 밖에서 가정부들이 안절부절못하며 이 난장판을 지금 치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신동철이 얼굴에 묻은 국물을 닦아내며, 시커먼 얼굴로 최후통첩을 날렸다.

"잘 들어. 집 갖고 싶으면 강민우랑 약혼하는 길밖에 없어. 갖고 싶으면 이번 달 약혼식 얌전히 치러."

그는 알고 있었다. 강씨네 놈이 좋아하는 건 지아라는 걸. 20년 순애보인데 신붓감이 쉽게 바뀌겠나.

그리고 이 막내딸이 가족들하곤 안 친해도 외할머니 일에는 끔찍하다는 걸 알기에, 분명 굴복할 거라 확신했다.

온 가족의 욕설을 들으며 신지아는 차분해졌다.

그녀는 맞은편의, 아버지라 불리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낯설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는 잊었나 보다. 그녀가 아주 어릴 때, 그가 딸을 번쩍 들어 올리며 "천하제일가는 남자 아니면 우리 공주님 못 데려가"라고 웃으며 말했던 것을.

누가 딸을 조금이라도 슬프게 하면 다리를 분질러 놓겠다던 그 아빠를.

신동철은 딸의 분노 대신, 차분한 조소를 들었다.

"돌아가신 분 유언을 귓등으로 듣네. 할머니가 밤에 찾아올까 봐 무섭지도 않으세요? 신동철 씨, 윤정희 씨, 두 분 밤에 잠은 잘 오시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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