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그렇게 차갑고 음산한 말투, 헝클어진 긴 머리, 충혈된 눈, 창백한 얼굴은 정말로 목숨을 앗아가는 귀신처럼 섬뜩했다.
신씨 가족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신동철이 얼마나 고집불통인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기에, 오늘 밤은 결판이 나지 않을 게 뻔했다.
신지아는 몸을 돌려 나가려다, 나가기 직전 의자를 들어 가구 몇 점과 골동품 꽃병 세 개, 명화 한 점, 비싼 장식품 다섯 개를 아주 차분하게 박살 냈다.
어차피 신씨 집안 재산은 그녀에게 한 푼도 안 올 테니, 많이 부순다고 아까울 것도 없었다.
아마 그녀의 그 차갑고도 광기 어린 눈빛에 압도당했는지, 신씨 가족들은 멍하니 그녀가 집을 때려 부수는데도 막지 못했다.
아니면 겁을 먹었거나. 불똥이 튈까 봐.
그녀가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 신동철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
"네 외할머니 집은..."
"더러워서 안 가져."
그녀는 그 한마디를 툭 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강민우는 윤세라가 묻은 더러운 물건이었다. 그녀는 다시 줍지 않을 것이다.
만약 언젠가 외할머니가 남겨준 추억이 거꾸로 그녀를 찌르는 칼이 된다면,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도 편치 않으실 것이다.
그건 이미 고인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그러니 그녀는 집 한 채 때문에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을지라도.
신지아의 발걸음은 침착했고, 꼿꼿한 뒷모습은 그 무엇도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오직 젖은 눈가와 떨리는 손만이 그녀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되뇌었다.
'신지아, 뒤돌아보지 마. 앞만 보고 가.'
하인이 차를 차고에 넣어둔 탓에 차를 빼는 데 시간이 좀 걸렸는데, 도로가에 윤세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신지아의 차를 막아섰다.
윤세라의 원피스는 여전히 더러웠고, 머리카락은 국물에 젖어 축축했다. 꼴은 엉망이었지만, 그녀에게선 승리자의 여유가 뿜어져 나왔다.
안 봐도 뻔했다. 윤세라가 나오기 전에 얼마나 감언이설을 늘어놓았을지. 자기도 당했으면서 동생 걱정하는 척, 가족 관계 회복하려고 애쓰는 척 연기했을 것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화목한 그림인가. 자애로운 부모와 효녀, 우애 좋은 남매들.
두 사람은 차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다.
"신지아, 내가 말했지? 네 모든 걸 내가 하나하나 다 뺏어 올 거라고. 이건 네가 나한테 빚진 거야."
신지아는 어릴 때부터 사사건건 자기 걸 탐내던 의붓언니를 보며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남이 쓰던 거 주워가는 게 그렇게 좋아? 내가 썼던 거라면 똥이라도 보물처럼 주워갈 기세네. 윤세라, 너 변태야, 아니면 자격지심이야?"
"흥, 마음대로 지껄여."
윤세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다시 비릿한 미소로 바뀌었다.
"외할머니 집 엄청 갖고 싶지? 예전에 회사 지분 나한테 넘어갔을 때도 이렇게 흥분하진 않더니. 근데 어쩌니? 아까 나 차 사고 났을 때, 엄마가 그 집 나 주겠다고 약속하셨거든. 3일 뒤에 정식으로 명의 이전해 주신대."
"점쟁이가 내 사주가 약해서 인생에 굴곡이 많을 거래. 그래서 기운 센 오래된 물건으로 눌러줘야 하는데, 그 집이 제일 좋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엄마 아빠가 두말없이 그 집을 나한테 주기로 했어."
"진짜 웃기지 않니? 네가 몇 년을 목매던 걸 난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얻었네."
신지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까 그녀가 집 얘기를 꺼냈을 때 부모님의 부자연스러웠던 표정, 신동철이 무심코 내뱉었던 "언니 준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라, 이미 결정된 일이었구나.
그녀가 약혼을 하든 안 하든, 그 집은 애초에 받을 수 없는 거였다.
신동철의 협박은 그냥 목적 달성을 위한 시간 끌기용 립 서비스였을 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헛된 기대를 품었었다. 적어도 외할머니의 유언만큼은 지켜줄 거라고.
웃기다. 진짜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미 감각이 없을 정도로 얻어맞았는데도, 심장은 여전히 아팠다. 그들이 그 집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도 그랬다는 게.
신씨 부부 눈에는 집 주인이 윤세라든 신지아든 별 차이 없어 보일지 몰라도, 신지아에게는 세상 누구라도 상관없지만 윤세라만은 안 되는 거였다.
그녀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
맞은편에서 신나게 떠들던 윤세라가 절정에 달했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똑같은 외손녀인데, 왜 할머니는 항상 너만 편애하셨을까? 안 주면 뺏어야지. 신지아, 이건 다 네 잘못이야."
그녀는 신지아의 귀에 대고 통쾌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내가 자격 없다고?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네 뜻대로 돌아가지 않아. 사람도 못 지키고, 집도 못 지키고."
"웅—"
머릿속에서 굉음이 울렸다. 마치 그 17살의 여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복숭아나무가 무성하고 매미 소리가 요란하던 날, 대바구니를 메고 웃으며 문지방을 넘었던 그녀. 외할머니한테 산에서 딴 거 자랑하려고 했는데, 눈앞에 보인 건 흩어진 알약들과 싸늘하게 식은 할머니, 그리고 그녀를 향해 사악하게 웃던 윤세라였다.
어린 시절의 모든 아름다움은 그 순간 끝났다.
세상이 멈췄다.
"윽—"
윤세라의 승리 선언이 뚝 끊기고, 눈에는 공포가 서렸다.
가느다란 목이 손에 잡힌 채, 윤세라는 차에 짓눌려 숨을 헐떡였다.
"이런 말 지껄이는 게 나 자극해서 또 피해자 코스프레 하려는 거잖아? 난 말주변이 없어서 너처럼 주둥이는 못 놀리지만, 제 발로 와서 매버는 년은 절대 안 봐줘. 사람 죽이는 거, 내가 제일 잘하잖아. 언니, 네가 제일 잘 알지 않아?"
신지아의 표정은 차분했지만 눈빛은 은은하게 돌아 있었다. 목을 조르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윤세라는 눈을 부릅뜨고 후회했다.
실수했다. 혼자 와서 자극하는 게 아니었는데. 외할머니가 역린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녀도 6년 전 그 여름이 떠올랐다.
신지아는 진짜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년이다.
윤세라는 겁에 질렸지만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고, 그저 신지아의 팔을 툭툭 칠 뿐이었다.
깊은 밤, 부촌이라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이 미친년이 진짜 자기를 죽일 거라고 생각했을 때, 신지아가 갑자기 손을 풀며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일부러 차 사고 내서 나 함정에 빠뜨릴 때도 겨우 팔에 찰과상 하나 내더니. 윤세라, 너랑 김민지한테 다음 무용 콩쿠르 엄청 중요한가 보네?"
"너 뭐 하려고?"
윤세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