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사랑과 사랑하지 않는 차이
"대표님, 작은 사모님 퇴원 마중 나오신 건가요?"
장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남경의 웃음기 어린 눈매는 민희진을 발견하는 순간 차갑게 굳어버렸다. 그는 그녀가 입원 중이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으니, 정말 우연히 마주친 상황이었다.
그의 시선은 민희진의 불룩한 배에 잠시 머물렀다.
"민경아. " 곁에서 김유리가 나지막이 불렀다.
하남경은 곧바로 사색에서 깨어났다. 민희진에게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차갑게 말했다.
"장 아주머니, 저는 급한 일이 있으니 희진이를 집으로 보내주세요. "
민희진은 불룩한 배를 부여잡고 앞쪽으로 달려갔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남경, 저 여자 배 속의 아이는 누구 아이예요?"
민희진은 여자의 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상대방의 배가 불러오른 모양새로 보아도 육, 칠 개월은 족히 넘어 보였다.
이 사실이 민희진의 마음속에 바늘처럼 박혀 고통을 주었다.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그의 사적인 일에 민희진이 간섭할 차례는 아니었다.
"내 남편이 임산부를 데리고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왔는데, 아내인 내가 물어볼 수도 없나요?"
민희진에게 하남경은 언제나 말수를 아끼는 사람이었다. 이번만큼은 민희진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분노로 하남경 뒤에 보호받듯 서 있는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 이 상간녀! 그만큼 떨어져! 안 그러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민희진, 입 닥쳐!"
하남경은 불안해하는 김유리를 보호하듯 감쌌다. 정작 본인 앞에서, 김유리와 다소 닮아 보이는 민희진은 그저 우스꽝스러운 광대 같았다.
하남경이 원하는 것은 아무나 대체할 수 없는 것, 영혼이 없는 가짜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민희진과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남경은 김유리의 어깨를 감싸며 돌아섰다.
"가지 마!"
민희진은 달려가 손을 뻗어 그 여자를 붙잡으려 했다.
그녀의 손이 그 여자에게 닿으려는 찰나, 하남경은 그녀의 손을 거칠게 떼어냈다.
거동이 불편했던 그녀는 휘청이며 뒤로 넘어졌다. 다행히 장 아주머니가 달려와 부축한 덕분에 쓰러질 참사를 면했다.
민희진은 다리가 풀려, 극도의 공포에 질려 떨었다.
하남경의 잘생긴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민희진을 잡으려 했던 손은 아무렇지 않은 듯 슬쩍 거두어졌다.
쓸데없이 이 여자가, 일부러 그런 건가!
민희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하남경 곁에 있던 여자가 먼저 말을 꺼냈다.
"민경아, 나 배가 아파. "
김유리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힘없이 그의 몸에 기대 쓰러지듯 안겨왔다.
하남경은 재빨리 김유리를 안아 올리며 그녀의 상태에 집중했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하자, 하남경은 바로 몸을 굽혀 김유리를 안아들었다.
"하남경, 당신 아내는 나야. 돌아와... "
민희진은 쫓아가려 했지만, 다리가 풀려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민희진은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를 안고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병원은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했다. 민희진은 산부인과 주변을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그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출입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뜨거운 햇살조차 민희진의 차가운 몸을 데워주지 못했다.
이런 날이 오리라 예상 못한 건 아니었지만, 하필 지금 돌아온 것이 문제였다.
민희진은 조용히 자신의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물러설 수 없었다.
"작은 사모님, 저희 이제 돌아가요. "
장 아주머니가 부드럽게 말했다.
"장 아주머니, 저 아이가 정말 하남경의 아이일까요?"
민희진은 메마른 눈으로 오가는 행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머릿속에는 오직 그 여자의 얼굴과, 하남경이 그녀를 바라보던 미소만이 가득했다.
결국, 사랑과 사랑하지 않는 차이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은 사모님, 너무 걱정 마세요. 대표님은 그런 분이 아니세요. "
장 아주머니는 그녀가 극단적인 생각을 할까 봐 두려웠다.
"이제 대표님의 아이를 가지셨으니, 의사 선생님도 사모님께 안정을 취하시라고 했잖아요. 어서 집으로 돌아가요. "
민희진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이 쓰라림을 참아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민희진은 버텨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