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화 그의 첫사랑이 돌아왔다
민희진은 구석에 웅크린 채 양손으로 아랫배를 꼭 누르고 있었다. 어렵게 가진 아이를 조금씩 잃어간다는 생각과 시어머니 사영희의 모진 말들이 비수처럼 날아왔지만, 그녀는 이미 고개를 들 힘조차 없었다.
항상 이랬다.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잘못은 항상 자신의 몫이었다.
"울긴 왜 울어?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내 손주 잘못되면 넌 당장 하 씨 집안에서 나가야 할 테니 그리 알아라. "
사영희의 차가운 말과 동시에 장 아주머니가 진 아저씨와 함께 급히 달려왔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민희진은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하고 태아를 지키기 위해 그녀는 기약 없이 몇 달을 그렇게 지냈다. 긴 시간 동안 그녀의 곁을 지킨 것은 오직 장 아주머니와 교대로 오는 간호인뿐, 하씨 집안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하남경에게 수없이 전화했지만 한 번도 연결되지 않았다. 장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하남경은 해외 출장 중이었다고 했다.
그녀가 지금 하남경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TV나 잡지에서뿐이었다. 이 출중한 남자는 언제 어디서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존재였다.
점차 불러오는 배를 만지면서 머지않아 작은 하남경이 태어날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삶에 희망이 생겼고, 그 작은 희망이 병원에서의 나날을 견디게 해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밤이면 홀로 배를 보며 속삭였다.
"아가, 네가 태어나면 아빠는 분명 널 사랑하게 될 거야. "
퇴원하는 날, 민희진은 장 아주머니에게 화장품을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 모브 로즈 아이섀도에 손가락을 대는 순간,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남경의 지갑 속에 늘 자리하던 사진. 그 사진 속의 여자가 바르던 바로 그 색이었다.
민희진은 본래의 정렬적인 레드 립을 지우고 모브 로즈 계열 립을 조심스레 덧발랐다.
거울 속의 민희진은 눈매가 부드러웠지만 눈 밑의 실핏줄은 숨길 수 없었고, 마치 다른 사람의 옷을 훔쳐 입은 아이 같았다.
"작은 사모님, 이렇게까지…"
장 아주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민희진은 곱슬머리를 곧게 펴고 옅은 살구색 원피스로 갈아입은 자신의 모습을 보며, 분명 자신의 얼굴인데도 조금씩 다른 여자의 그림자를 덧입는 듯했다.
민희진은 몇 번이나 거울을 확인하면서 만족스러운 듯하였다.
"이렇게 하면 그이가 나를 한 번쯤은 봐주려나?"
민희진은 다시 하남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는 여전히 부재 중이었다.
"작은 사모님, 대표님은 워낙 바쁘시니, 시간이 나시면 꼭 돌아오실 거예요. "
장 아주머니는 애써 위로했지만, 속으로는 안타까움에 한숨을 쉬었다. 장 아주머니는 민희진을 불쌍히 여겼다.
시집온 지 삼 년,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심해야 했다. 가문도 좋고 아름다운 여자였지만, 남편의 애정과 시어머니의 환심을 얻지 못했다.
그나마 아이를 지켜냈으니, 이젠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민희진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분명 출장 때문에 아직 못 돌아온 걸 거야.'
아이를 낳고 나면 그가 자신과 아기를 위한 시간을 내어줄 것이라고, 반드시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사모님, 여사님께서 오늘 한약을 달이셨대요. 집에 도착하면 바로…"
장 아주머니는 간단한 짐을 들고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다.
민희진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장 아주머니는 민희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입가에 맴돌던 말을 삼켰다.
그동안 그림자도 볼 수 없었던 하남경 대표가 배가 부른 한 여자를 부축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웃으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그 모습은 마치 금실 좋은 부부와도 같았다.
아주머니는 처음 보는 하남경의 환한 미소에 놀라 굳었다.
민희진은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 여자가 돌아왔다!'
하남경이 마음속 가장 소중한 곳에 간직했던 그 여자가 돌아온 것이다.
민희진은 그 여자의 얼굴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수도 없이 화장으로 흉내 내고, 몸짓 하나하나를 따라 했던 그 여자였다.
민희진은 단지 하남경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랐다.
김유리는 상상보다 더욱 가녀리고 아름다웠다. 만삭의 몸이었음에도 미모가 출중했고, 하남경 옆에서 완벽한 한 쌍을 이루며 시선을 붙잡았다.
그 광경은 민희진의 눈을 찔렀고, 마음속 가장 연약한 실낱이 그 순간 끊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