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아 씹! 이 미친년아, 네가 감히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대걸레를 한 번 휘두르자 연은지는 힘이 완전히 빠졌다.
그녀는 대걸레 자루에 몸을 기대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박소연을 바라보는 눈빛만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김한샘이 나더러 하인 노릇을 하라고 했지, 너보고 나 괴롭히라고 한 건 아니야. 넌 대체 뭐길래 나한테 이래?"
박소연은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온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풍기고, 얼굴엔 더러운 물이 흥건한데다 연은지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그녀는 이를 악물고 연은지를 노려봤다.
"두고 봐. 가만 안 둘 거야."
그 말을 남기고 박소연은 그대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연은지의 시야가 몇 번이나 흐릿해졌지만, 그녀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정신을 붙들었다. 메마른 입술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대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고 있던 그때, 서늘하기 짝이 없는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연은지, 아직도 네 처지를 제대로 파악 못 한 것 같네."
김한샘의 차갑고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2층 난간에 서서, 높은 곳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연은지의 가느다란 몸이 흠칫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내가 몇 번을 말해야 믿어줄 거야?"
김한샘의 얼굴은 더욱 냉혹해졌다.
"아직도 변명할 생각이야?"
그는 그대로 계단을 내려와 그녀의 팔을 거칠게 움켜쥐고 위층으로 끌고 갔다. 도자기 조각에 베인 상처는 아직 딱지가 앉지도 않았는데, 그의 손바닥에 꽉 쥐어지자마자 피가 다시 배어 나왔다. 둔한 통증이 겹겹이 쌓이며 그녀의 의식을 짓눌렀다.
"으윽... 김한샘! 놔줘! 상처가..."
그녀가 그의 손을 떼어내려 몸부림쳤지만, 그는 오히려 더 세게 움켜쥐었다.
"이제야 아픈 줄 알아?"
김한샘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는 그녀를 서재 카펫 위로 내던졌다. 그 손길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새미를 괴롭힐 땐, 걔가 아플 거라는 생각은 해봤어?"
머리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아직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턱이 거칠게 붙잡혔다. 억지로 고개가 들려졌고,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똑똑히 봐. 이게 다 네가 김새미를 괴롭혔다는 증거야. 연은지, 난 네가 조금 철없는 줄만 알았지, 이렇게까지 악독한 줄은 몰랐어."
두툼한 서류 뭉치가 그대로 그녀의 얼굴에 던져졌다. 연은지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잠시 후에야 다시 떴다. 김한샘은 소파에 앉아 그녀를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서류를 집어 들고 한 장을 훑어봤다. 순간, 동공이 급격히 수축했다.
맨 위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3월 21일.
새미 아가씨가 선물을 들고 연은지를 찾아갔으나, 연은지가 그녀를 쫓아내고 선물까지 밖으로 던짐.
4월 10일.
새미 아가씨가 연은지를 쇼핑에 초대했으나, 연은지가 고의로 아가씨를 햇볕 아래 방치함.
4월 30일.
새미 아가씨는 개를 무서워함에도 불구하고, 연은지가 개를 데리고 나타나 아가씨의 심장병이 재발함...
그 뒤로도 날짜별로 사건들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마치 모든 일이 누군가에게 감시당하고 있었던 것처럼.
연은지는 서류를 쥔 손에 힘을 줬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김한샘을 바라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걸 믿어? 정말 내가 이런 짓을 했다고 믿는 거야?"
그녀가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만 해도 이미 과분한 일이었다. 그녀는 늘 분수를 지키며 그의 애인으로 지내왔다. 어떻게 그의 여동생을 괴롭힐 수 있었겠는가.
오히려 김새미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으면 애썼지!
그 순간, 머릿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연은지는 다시 서류를 들여다봤다.
3월 21일, 김새미가 선물을 들고 온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때 김새미는 자신에게 그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대신 버려 달라고 그녀에게 말했었다.
4월 10일, 김새미와 함께 쇼핑을 나갔고, 김새미가 음료를 사 오라고 해서 줄을 오래 섰다. 하지만 돌아왔을 땐, 김새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리고 4월 30일, 김새미는 직접 전화를 걸어 애견숍에서 개를 데려오라고 했다. 그녀가 개를 데리고 갔을 때, 김새미는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
그동안 무심코 넘겼던,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조각들이 하나둘 또렷해지며 맞물렸다. 연은지의 머릿속에 대담한 생각 하나가 스쳤다.
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어 김한샘을 바라봤다.
"만약 내가 이 전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면? 선물을 버리라고 한 것도, 음료를 사 오라고 한 것도, 개를 데려오라고 한 것도 전부 김새미였어. 전부 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