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아무것도 아니야."
한시아는 붉어진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그 순간, 창밖 하늘 위로 수많은 불꽃이 터져 올랐다. 눈이 부시게 화려했다.
그녀는 낮에 임가연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오늘 밤, 성지환이 그녀를 위해 도시 전체에 불꽃놀이를 올릴 거라고 했던 그 말.
한시아가 넋을 잃은 채 창밖의 불꽃을 바라보는 걸 본 성지환은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이런 거 좋아해? 그럼 나도 준비할게. 이것보다 훨씬 큰 걸로, 응?"
그는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낮게 속삭였다.
한시아는 살짝 웃었지만, 그 웃음엔 쓴맛과 눈물이 섞여 있었다.
"성지환, 난 남이 쓰던 건 싫어."
불꽃도,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
그녀가 불꽃을 두고 한 말이란 걸 알면서도, 그의 심장은 덜컥 내려앉았다. 이유 없이 불안이 밀려왔다.
그는 잠시 말이 없더니, 품을 더 세게 조였다.
"그럼 내가 다른 걸로 준비할게. 다른 여자 부럽지 않게 해줄게."
한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멀리서 번지는 불꽃만 바라보았다.
며칠 동안 성지환은 매일같이 아침 일찍 나가 늦게 돌아왔다.
표정도, 행동도 어딘가 들떠 있었고 비밀스럽기까지 했다.
하녀들까지 그 변화를 눈치챘다.
"부인, 성 대표님이 또 깜짝 선물 준비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게요, 얼마 전엔 맞춤 주얼리까지 주문하시더니 이번엔 또 뭐가 있을까요? 사랑받는 건 참 좋으시겠어요."
하지만 한시아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무표정하게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성지환이 다시 비밀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시아야, 내가 데려가고 싶은 곳이 있어. 분명 마음에 들 거야."
한시아는 막 거절하려던 찰나, 휴대폰이 진동했다.
보낸 사람은 임가연이었다.
[한시아, 이제는 누가 더 중요한지 알겠지? 그의 마음속에서 너와 나, 누가 위일까?]
그 순간 성지환의 휴대폰도 진동했다.
한시아는 무심히 시선을 돌렸다가 화면에 비친 내용을 보고 말았다.
임가연이 검은 스타킹을 신은 다리를 찍어 보낸 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엔 장난스럽게 적힌 한 문장.
[기회는 한 번뿐이야~]
성지환의 눈빛이 즉시 깊어졌다. 목이 여러 번 꿀꺽 움직였다.
잠시 후, 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시아야, 급하게 문제 생긴 프로젝트가 있어서 지금 바로 가봐야 해. 다음에 꼭 같이 나가자. 그때 진짜 깜짝 놀랄 거야."
한시아는 조용히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은 이상하게도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불과 몇 초 뒤, 성지환의 차는 그대로 출발했다.
몇 시간이 지나, 임가연에게서 또 사진이 도착했다.
쓰레기통 안, 뜯어진 콘돔 포장지들이 널려 있었다.
[한시아, 또 졌네. 나 아직 임신 중인데도 그 사람이 그새를 못 참고 달려와. 도대체 나를 얼마나 사랑하길래 그럴까?]
임가연의 문장은 자랑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한시아는 그저 잠잠히 화면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속으로 정리된 상태였다.
이제는 어떤 말도, 어떤 사진도 그녀를 흔들 수 없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성지환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한시아는 묻지도, 기다리지도 않았다.
대신 임가연의 메시지는 끊이지 않았다.
과일을 깎아 담은 사진, 명품으로 가득한 선물장, 직접 요리한 음식까지...
모두가 성지환의 애정을 과시하듯 보내왔지만 한시아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집 안을 정리했다.
자신과 관련된 모든 흔적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사라지기로 결심했다면, 완전히 사라져야 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