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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남긴 자국

41.0K · 완결
친이잉
27
챕터
3.0K
조회수
9.0
평점

개요

"한시아 씨, 정말로 모든 신분 정보를 말소하시겠습니까? 절차가 완료되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누구도 당신을 찾을 수 없어요." 한시아는 잠시 침묵하다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도 저를 찾지 못하게 해주세요." 전화기 너머의 담당자는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 차분히 답했다. "알겠습니다, 한시아 씨. 절차는 약 2주 후에 완료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전화를 끊은 한시아는 바로 휴대폰을 열어 2주 후 F국으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그때, TV에서는 성씨 그룹의 주얼리 신제품 발표회가 재방송 중이었다. 일주일 전, 성씨 그룹의 대표 성지환이 세상 최고급 다이아몬드와 보석으로 단 하나뿐인 주얼리를 만들어 아내에게 바쳤다. 이름은 뮤시아(Musia). 그는 뮤즈이자 아내의 이름을 따서 전 세계에 선언했다. 성지환은 영원히 한시아를 사랑한다고. '뮤시아'가 공개되자마자 각종 플랫폼의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고, 뜨거운 화제는 식을 줄 몰랐다. 방송이 끝난 뒤에는 거리 인터뷰 영상이 이어졌다.

후회남 순정남미녀까칠녀후회물

제1화

"한시아 씨, 정말로 모든 신분 정보를 말소하시겠습니까? 절차가 완료되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누구도 당신을 찾을 수 없어요."

한시아는 잠시 침묵하다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도 저를 찾지 못하게 해주세요."

전화기 너머의 담당자는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 차분히 답했다. "알겠습니다, 한시아 씨. 절차는 약 2주 후에 완료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전화를 끊은 한시아는 바로 휴대폰을 열어 2주 후 F국으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그때, TV에서는 성씨 그룹의 주얼리 신제품 발표회가 재방송 중이었다.

일주일 전, 성씨 그룹의 대표 성지환이 세상 최고급 다이아몬드와 보석으로 단 하나뿐인 주얼리를 만들어 아내에게 바쳤다.

이름은 뮤시아(Musia).

그는 뮤즈이자 아내의 이름을 따서 전 세계에 선언했다. 성지환은 영원히 한시아를 사랑한다고.

'뮤시아'가 공개되자마자 각종 플랫폼의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고, 뜨거운 화제는 식을 줄 몰랐다. 방송이 끝난 뒤에는 거리 인터뷰 영상이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성 대표와 사모님의 사랑 이야기, 알고 계시죠?"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부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둘의 사랑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성 대표가 책까지 냈잖아요. 거기엔 사모님에 대한 기록이 가득하대요. 사모님이 체리를 좋아해서 별장 정원 전체를 체리나무로 꾸몄다잖아요. 저도 남편한테 배우라 했더니 그런 남자는 세상에 없으니까 자기한테서 그런 허구 이야기 바라지 말래요. 진짜 사람 비교하면 속 터져요."

기자는 다른 사람에게도 마이크를 건넸다.

젊은 여대생이 두 손을 모으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건 그냥 현실판 달달한 로맨스죠! 성 대표는 완전 순정파예요. 4년 전 사모님이 신부전으로 생명이 위태로울 때, 본인 신장을 이식했다잖아요. 주변에서 다 반대했는데도요. '아내가 내 생명이다. 그녀가 없으면 나도 살지 않겠다.' 그렇게 말했대요. 세상에 이런 남자가 또 있을까요?"

인터뷰는 계속 이어졌고, 모두가 성지환과 한시아의 사랑을 부러워했다.

뉴스는 몇 번이고 반복 재생됐지만, 한시아는 비웃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 덕에 늘 많은 이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부모가 일찍 이혼한 탓에, 한시아는 사랑에 큰 기대를 품은 적이 없었다. 누가 고백해도 늘 같은 말이었다.

"미안하지만, 남자친구 만들 생각 없어. 연애엔 관심 없어."

그런 그녀가 성지환을 만났다.

그는 다른 남자들과 달랐다. 세 해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따라다녔고, 거절당할수록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결국 그녀가 갖고 싶어하던 목걸이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불법 레이싱 경기에 나섰고, 거의 죽을 뻔했다.

그제야 그녀의 마음이 흔들렸다.

함께한 뒤에도 그의 사랑은 식지 않았고, 오히려 더 깊어져 그녀의 단단한 마음을 서서히 녹여갔다.

심지어 청혼도 무려 쉰두 번을 반복한 끝에야, 그녀는 결국 마음을 굳히고 용기를 내어 그에게 결혼을 허락했다.

청혼하던 날, 한시아는 약지에 반지를 끼운 채 눈가에 눈물을 머금고 성지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성지환, 앞으로 난 당신의 아내로서 최선을 다할게. 생사나 빈부가 어떻든 절대 배신하지 않을 거야. 다만 한 가지만 기억해. 난 어떤 거짓말도 용서하지 않아. 당신이 날 속이면, 난 당신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거야."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은 이제 잔인한 현실 앞에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세 달 전, 한시아는 성지환이 이미 다른 여자를 숨겨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낮에는 자신과 함께 있으면서, 밤에는 그 여자에게 가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이미 두 사람에게 나뉘어 있었다.

결국 '불타는 사랑은 빨리 식게 돼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천천히 달아오른 마음은 끝내 식지 못하고 여전히 끓어오르는데 말이다.

한시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TV를 껐다. 그리고 이미 준비해둔 이혼서류를 꺼내 또박또박 자신의 이름을 써 내려갔다.

이제 그녀는 스스로의 말을 지킬 것이다. 그의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겠다고 했으니까.

서명을 마친 뒤, 그녀는 이혼서류를 예쁜 선물 상자에 담아 정성스럽게 포장했다.

한 시간쯤 지나, 성지환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신발을 벗을 틈도 없이 다가와 그녀를 안고 달래듯 사과했다.

"미안해, 여보. 오늘 주얼리 찾으러 갔다가 늦었어. 그래서 결혼기념일을 놓쳤네. 화 풀어, 응?"

그는 '뮤시아'가 들어 있는 상자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검은 셔츠의 맨 윗단추가 풀려 있었고, 그 아래 드러난 목선과 쇄골 위에는 선명한 키스 자국과 여자의 손톱으로 긁힌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한시아의 시야가 아프게 흔들렸다.

정말로 주얼리를 찾으러 간 걸까? 아니면 임가연의 침대에 다녀온 걸까.

아마 지금 막 그곳에서 나온 참이겠지.

하지만 성지환은 그녀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직접 그녀의 목에 주얼리를 걸어주었다. 보석은 눈부신 빛을 뿜었고, 그 빛이 그녀의 얼굴을 더욱 아름답게 비췄다.

"여보, 정말 예쁘다." 성지환의 눈에는 감탄이 가득했다.

그러나 한시아는 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붉어진 눈으로 탁자 위의 선물 상자를 들어 그에게 내밀었다.

"이거 받아."

"이게 뭐야?" 성지환은 고개를 갸웃했다.

"선물이야. 결혼기념일이니까, 당신이 나에게 선물을 줬듯 나도 답례를 해야지."

그의 눈빛에 즉시 기쁨이 번졌다. 그는 소중하게 상자를 받으며 당장이라도 열어보려 했다.

하지만 한시아는 그의 손을 막았다.

"2주 후에 열어."

"왜?" 성지환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시아는 또렷하게 말했다.

"그 선물은 2주 후에 열어야 의미가 있어."

그 말에 성지환은 잠시 멈칫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입맞췄다.

"우리 여보가 하라는 대로 할게. 난 깜짝 선물을 기다릴 줄 아는 남자니까."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포스트잇을 뜯어 그 위에 한 줄을 썼다. '2주 후 개봉.'

그 글자를 상자 위에 정성스레 붙이는 모습을 한시아는 묵묵히 바라보았다.

성지환, 부디 그때는 진짜 깜짝 놀라게 되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