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집에 돌아오자 한시아는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좀처럼 열이 내리지 않았다.
술기운이 남은 성지환이 집에 돌아와 그녀가 의식을 잃은 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모습을 보고는 순식간에 당황했다.
그는 급히 그녀를 안아 병원으로 향했다.
정신이 서서히 돌아왔을 때, 한시아는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그녀가 눈을 뜨자 약을 갈던 간호사가 반가움에 소리를 냈다.
"성 부인, 드디어 깨어나셨네요. 하루하고도 밤새도록 열이 내리지 않아 성 대표님이 걱정이 많으셨어요. 방금 전화 한 통 받고 잠시 나가셨는데, 불러올까요? 깨어나셨다고 하면 정말 기뻐하실 거예요."
한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부르지 마세요."
간호사는 더 말하지 않고 약을 갈아준 뒤 조용히 물러났다.
넓은 병실은 금세 적막해졌다.
한시아는 귀를 기울이면 병실 밖에서 성지환이 통화하는 목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는 언제나 침착한 사람이었지만, 그녀 앞에서만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목소리에는 기쁨과 들뜬 감정이 묻어 있었다.
잠시 후, 발소리가 멀어졌다. 성지환이 병원을 떠나는 소리였다.
한시아는 남은 힘을 다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몇 층을 내려가자, 마침 성지환이 임가연을 부축하며 산부인과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두 사람의 얼굴엔 미소가 번져 있었고, 입가에 걸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시아의 모습을 본 임가연은 일부러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성 부인, 이런 우연이 있네요. 병원에서 뵙다니."
그 말에 성지환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멀리 서 있는 한시아와 마주쳤다.
그는 몸을 굳힌 채 급히 임가연의 팔을 놓았다.
"시아야, 내가… 내가 네 약을 가지러 내려왔다가 임가연 씨를 우연히 부딪쳤어. 임신 중이라 혹시라도 다칠까 봐 잠깐 도와준 거야."
그는 다급히 설명하며 오해를 살까 조마조마한 얼굴이었다.
한시아의 시선이 임가연의 배로 향했다.
숨이 막히듯 답답해진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임가연 씨, 언제 임신하신 거예요? 아이 아버지는 안 오셨어요?"
임가연은 행복한 표정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달콤하게 웃었다.
"방금 확인했어요. 한 달 됐네요. 아이 아빠는 일이 있어서 못 왔지만, 제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너무 기뻐했어요. 벌써 별장 몇 채를 사주고, 백억을 계좌에 보내줬답니다. 오늘 밤엔 우리 사랑의 결실을 축하하려고 도시 전체에 불꽃놀이를 쏘기로 했어요."
그녀는 자랑스럽게 말을 이어갔고, 한시아는 오래도록 그녀를 바라보다가 겨우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축하드려요."
임가연은 더욱 우쭐해져 웃었다.
"그렇죠? 성 부인, 오늘 시간 괜찮으시면 저녁 같이 해요. 아이 아빠도 부를게요."
그 말에 성지환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는 차갑게 임가연을 노려보며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럴 필요 없어. 시아는 바쁘니까."
말을 마친 성지환은 한시아를 달래듯 품에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시아야, 몸도 아직 안 좋아. 괜히 돌아다니지 마."
"그깟 광고 모델 하나 가지고 뭐 하러 신경 써."
그의 말속에 깔린 무시가 들리자 임가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가 파래졌다.
그녀는 눈가를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제가… 제가 들떴던 것 같아요. 성 부인과 함께 식사할 자격도 없는데요."
그 말을 남기고는 눈물을 훔치며 홱 돌아서 나갔다.
성지환의 얼굴이 굳었다. 곧 따라가려다 곁에서 담담히 그를 바라보는 한시아를 보고는 결국 멈췄다.
처방받은 약을 챙겨 병원을 나선 한시아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 임가연에게 소리친 일 때문인지, 성지환은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자마자 회사에 급한 일이 있다며 서재에 틀어박혔다.
방으로 돌아온 한시아는 그제야 휴대폰을 확인했다.
임가연에게서 도착한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임신 초음파 사진이었다.
이어서 도발적인 메시지들이 연달아 쏟아졌다.
[한시아, 오늘 병원에서 이미 눈치챘겠지? 아이 아빠는 지환 씨야. 그가 정말 너를 사랑한다면, 내 존재는 뭘까?]
[그 사람이 얼마나 나한테 미쳐 있는지 알아? 네 생일이든 결혼기념일이든, 너 재워놓고 항상 나한테 온다니까. 그 사람 진짜 대단해, 우리 매번 몇 상자를 비워야 할 정도야. 다음 날엔 난 항상 일어나지도 못해.]
[그의 마이바흐 안에서도, 대표실에서도, 심지어 너희 신혼집에서도 우리의 흔적이 남아 있어. 나한테 72가지 체위를 전부 썼다니까.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다고 하잖아. 그 사람이 너한테 그렇게 열정적이었던 적은 있니?]
도발적인 문장들이 눈앞에서 춤추듯 번졌다.
한시아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
휴대폰 화면을 꺼버리는 순간, 성지환이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
"이쁜이, 뭐 보고 있었어?"
그는 턱을 그녀의 목덜미에 기댄 채, 까맣게 꺼진 화면만 바라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