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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한시아는 내내 말이 없었다.

그저 자리에 앉아 형식적으로 웃었을 뿐, 더 이상 그 연극 같은 자리를 견딜 수 없었다.

"시간이 늦었네요. 전 먼저 갈게요."

그녀가 일어서자 성지환도 같이 따라 일어났다.

그러자 친구들이 서둘러 그를 붙잡았다.

"형수님은 몸이 약하니까 일찍 쉬게 하고, 넌 좀 더 있다 가라. 우리 이렇게 모인 게 얼마 만이냐?"

"맞아, 형수님 보내드리고 우리끼리 좀 놀자. 너 너무 아내한테 붙어만 있잖아."

한시아는 성지환의 손을 조용히 빼내며 말했다.

"운전기사가 데려다줄 거야. 당신은 남아서 즐겨."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돌아섰다.

걸음은 망설임 없이 빨랐고, 그가 부르려 했을 때는 이미 멀어져 있었다.

차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가방 안에서 낯선 감촉을 느꼈다.

꺼내보니 검은색 휴대폰이었다.

성지환의 휴대폰이었다.

한시아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운전사에게 말했다.

"다시 돌아가 주세요."

차가 술집 앞에 멈추자, 바로 그때 임가연이 택시에서 내렸다. 그녀는 휴대폰 화면을 거울 삼아 메이크업을 고치며, 앞을 보지도 않고 안으로 향했다.

한시아는 본능적으로 손에 쥔 휴대폰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임가연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예상대로, 그녀는 성지환이 있는 VIP룸 앞에서 멈춰 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임가연은 곧장 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성지환은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미소 지었다.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

임가연은 그의 어깨에 기대며 새초롬히 웃었다.

"보고 싶었어요. 전화 받자마자 바로 왔지롱."

그는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상을 줘야겠네."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키스는 금세 뜨거워졌고, 방 안의 다른 남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그 장면을 지켜봤다.

"됐어 됐어, 여기서까지 공개 애정행각이야?"

농담 섞인 말들이 오갔지만,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한시아는 문틈 사이로 그 광경을 똑똑히 봤다.

피가 서늘해지고 손끝이 떨렸다.

모두 알고 있었던 거야. 그가 임가연과 어떤 관계인지, 나만 몰랐던 거야.

문 안쪽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누군가 말했다.

"지환아, 이제 가연이도 왔으니 우리 좀 더 재밌는 게임 해볼까?"

남자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손뼉을 쳤다.

잠시 뒤, 아까 나갔던 여자들이 다시 방으로 불려 들어왔다.

금세 거의 모든 남자들이 여자 하나씩을 품에 안았다.

게임은 단순했다.

술병 돌리기. 병이 가리키는 사람이 진실게임이나 벌칙을 택해야 했다.

몇 번을 돌린 끝에, 병이 성지환을 향했고 방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지환아, 지난번은 언제야?"

질문한 남자가 의미심장하게 웃었고, 모두가 그 뜻을 알아차렸다.

성지환은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

"어제. 차 안에서."

순간, 방 안이 술렁였다.

"헐, 대단한데? 어땠어, 기분?"

임가연은 얼굴이 벌게져 그의 품에 파묻혔고, 성지환은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렸다.

"기분? …아주, 황홀했지."

"하하하하! 봐라, 그래서 다들 말하잖아. 집에 있는 여자보다 밖의 여자가 더 짜릿하다고."

"맞아, 우리 같은 놈들이야 밖에 몇 명쯤 있는 게 정상이지."

"들키지만 않으면 평생 즐겁게 사는 거야. 한시아는 절대 모를걸?"

남자들은 그렇게 말하며 옆의 여자들을 끌어안고, 웃으며 키스했다.

그때, 누군가 한시아의 이름을 꺼내는 순간 성지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표정을 굳히며 낮게 말했다.

"그 이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 내 아내 앞에서 장난치면… 결과는 알지?"

"알았어 알았어! 절대 형수님 귀에 안 들어가게 할게."

남자들은 대충 웃으며 대답했다.

그 모든 말이, 단 한 글자도 빠짐없이 한시아의 귀에 꽂혔다.

방 안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울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녀는 몸이 서서히 굳어가고, 다리가 저려오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운전기사가 그녀의 얼굴빛을 보고 급히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안으로 들어가서—"

"아니요."

그녀가 그를 막았다.

"나 혼자 걷고 싶어요. 그리고… 성지환에게는 내가 돌아온 거 절대 말하지 마요."

운전기사는 더 묻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섰다.

한시아는 홀로 인적 드문 거리를 걸었다.

곧 폭우가 쏟아졌지만, 피하지도 않았다.

차가운 빗물이 온몸을 적실수록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를 만큼 오래 걸었다. 십칠 살이던 그 해, 눈이 펑펑 내리던 밤, 발목을 삐었던 그녀를 성지환이 업고 집으로 향하던 그 길보다도 더 길고, 더 멀게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도 쉽게 식는구나. 진심은, 이렇게 순식간에 변할 수 있는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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