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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택시를 타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몇 년간 함께 살았던 집. 그곳엔 온통 심도윤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알 수 없는 짜증이 울컥 치밀었다.

지난날의 달콤했던 기억들이 눈앞에 생생했다.

나를 위해 직접 요리를 하고, 내 속옷까지 손수 빨아주던 남자. 내가 무심코 무언가 먹고 싶다고 한마디 하면, 그게 아무리 한밤중이라도 온 도시를 뒤져서라도 구해오던 그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전부 가짜였다.

아마 죽기 직전에 들었던 심도윤의 그 저주만이, 유일한 진심이었으리라.

나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혼 서류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곧바로 임신 중절 수술을 예약했다. 모든 것을 마치고 나니, 마음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겨우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꼬박 밤을 새웠다.

그날 밤, 심도윤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동시에 예상 밖의 일이기도 했다. 적어도 한동안은 더 연기를 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번 생의 오희진은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벽 5시.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서 굳어버린 심도윤과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에 스친 당혹감.

"왜 안 자고 있었어?"

평소와 다름없는, 다정한 그 목소리. 하지만 이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긴, 사람의 마음은 하나뿐이다. 한 사람에게 온전히 마음을 주면, 다른 사람에게 줄 마음 따위는 남지 않는 법이니까.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심도윤의 등 뒤에서 오희진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는 생긋 웃고 있었다.

"유안 언니. 도윤 씨가 저보고 당분간 언니네 집에서 지내라고 하네요. 지금은 돌봐줄 사람도 없다고. 언니, 혹시 싫으세요?"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심도윤을 바라봤다. 그는 내 시선을 피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바보라도, 오희진의 말에 담긴 속뜻을 모를 리 없었다.

이건 명백한 과시였다. 심도윤이 나를 화나게 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을 챙긴다는 과시. 만약 내가 여기서 거절한다면, 나는 그저 속 좁고 인정머리 없는 여자가 될 뿐이었다.

역겨웠다. 두 사람이 알콩달콩해서가 아니었다. 이 집은 '내' 집이다. 그런데 심도윤이, 집주인인 내 허락도 없이 외부인을 끌어들였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역겨웠다.

나는 차가운 비웃음을 흘리며 심도윤에게 되물었다.

"적어도 나한테 먼저 말은 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말에, 마치 정곡이라도 찔린 사람처럼 심도윤이 날을 세웠다. 그는 노골적으로 화를 냈다.

"임유안! 너 어떻게 그렇게 냉혈한처럼 굴어?"

"지금 희진이 걔, 돌봐줄 사람 하나 없어. 병원에서 죽을 뻔했다고. 내가… 친구로서, 당연히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넌 내 아내잖아. 내 아내면, 내 친구한테 좀 더 친절하게 대할 수도 있는 거잖아."

심도윤은 적반하장으로 나를 '속 좁은 사람'으로 몰아붙이며, 자신은 할 도리를 다하는 척했다.

만약 과거의 나였다면, 참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를 사랑했고, 그가 원한다면 뭐든 들어줬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한 번 죽었다. 그것도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손에. 이번 생에서까지 나 자신을 희생하며 참고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잊었나 본데, 이 집은 내 집이에요. 당신이 누리는 모든 것도 다 내거고."

"나 결벽증 있어서, 내 집에 남의 손 타는 거 질색이거든."

물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다른 누가 들어와 있는 건 더 질색이고.

심도윤은 잠시 멍하니 굳어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거절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바로 그때, 오희진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심도윤의 팔을 붙잡았다.

"알아요… 제가 두 분 사이에 낀 거죠. 남편은 감옥 가고, 부모님도 저랑 연 끊고… 제가 도윤 씨 발목 잡으면 안 되는데. 저, 지금 당장 나갈게요. 두 분, 저 때문에 싸우지 마세요. 네?"

그 가련한 모습에, 심도윤의 얼음장 같던 표정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는 안쓰럽다는 듯 오희진을 바라보더니, 그녀를 잡아끌고 빈방으로 향했다.

그는 마치 나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걱정 말고 여기서 지내. 이 집, 내 지분도 절반은 있어. 그러니까 안심해. 온 세상이 다 널 버려도, 난 절대 너 안 버려."

심도윤은 그렇게 오희진의 손을 잡고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오희진이 나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가 입모양으로 똑똑히 속삭였다.

「멍청하긴. '굴러온 돌'이 어떻게 '첫사랑'을 이기겠어?」

나도 피식 웃어주었다. 오희진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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