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나는 가온구 아파트로 미친 듯이 달려가 민우와 내 짐부터 챙기기 시작했고, 밤새 사설 경호 업체에도 연락을 돌렸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날만 밝으면, 민우를 데리러 가면 됐다.
새벽이 깊어갈수록 이재온은 오늘도 들어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술에 잔뜩 취한 이재온이 비틀거리며 들어왔다.
그가 내 턱을 거칠게 움켜쥐고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남수연, 너 지금 나한테 표정이 그게 뭐야?"
이어 이재온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송유린이랑 준희는 내가 알아서 정리할 거야. 네 자리 흔들 일도 없고. 그런데 너는 왜 한 번을 못 참아주냐?"
참아?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다섯 해 전에도 참았다. 그 대가로 돌아온 건, 그가 다른 여자와 아이까지 낳아놓은 현실이었다.
SNS에는 송유린이 올린 사진이 떠돌고 있었다. 셋이 함께 놀이공원에서 생일을 축하하는 뒷모습, 마치 누구보다도 단란한 가족처럼.
그런데 내 민우는 지금, 차갑고 어두운 그 훈련원 어딘가에 갇혀 있었다.
이재온의 손이 내 뺨을 느릿하게 쓸었다. 눈빛에는 아직도 기분 나쁜 집착이 남아 있었다.
"수연아. 우리 딸 하나 더 낳자. 아들도 있고 딸도 있으면, 너도 더는 나 떠날 생각 못 할 거야."
그가 몸을 밀어붙이며 뜨거운 손바닥을 치맛자락 안으로 파고들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대로, 이재온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이재온이 멍하니 굳었다가 눈을 번뜩였다.
"너 미쳤어?"
나는 그를 밀어내고, 미리 준비해 둔 서류를 꺼내 그의 가슴팍으로 내던졌다.
"미친 건 당신이야. 이혼하자."
이재온의 부모는 늘 내 집안이 평범하다고, 재벌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제는 사생아까지 품고 살겠다는 인간과 이 결혼을 붙들 이유가 더는 없었다.
이재온의 얼굴이 시커멓게 가라앉았다. 술기운이 이성을 마비시킨 건지, 아니면 애초에 나에게 질려버린 건지, 그는 처음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정말 확실해?"
"확실해."
이재온의 눈이 붉게 충혈됐고, 그는 서류를 낚아채더니 거칠게 사인했다.
"남수연, 네가 언젠가 나한테 빌러 오는 날이 올 거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류를 챙기고 가방을 들어 올린 뒤,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나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경호원들을 데리고 곧장 훈련원으로 들이닥쳤다.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경호원들은 움직임이 달랐다. 십 분도 채 안 돼서, 그들은 금지구역처럼 숨겨진 독방에서 민우를 찾아냈다.
고작 스물네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이미 망가져 있었다. 눈은 풀려 있었고, 몸은 덜덜 떨렸으며, 나를 봐도 '엄마'라는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민우를 안아 들었다. 울음이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은 울 시간이 아니었다. 병원부터 가야 했다.
그렇게 주차장으로 달려갔는데, 검은색 제네시스 한 대가 앞을 가로막으며 끼익, 하고 멈춰 섰다.
차에서 이재온과 송유린이 동시에 내렸다.
나는 창문을 거칠게 내리며 소리쳤다.
"비켜! 민우 당장 병원 가야 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유린이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고 통곡을 터뜨렸다.
"언니, 제발… 준희를 돌려주세요! 나 애 없으면 못 살아!"
그러더니 바닥에 머리를 쿵, 쿵, 쿵 찧어댔다.
나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무슨 소리야? 난 네 아들 본 적도 없어!"
그 순간, 이재온이 차창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리며 폭발했다.
"남수연!"
"깡패까지 고용해서 훈련원 쳐들어갈 정도면, 네가 못 할 짓이 뭐가 있어!"
심장이 쥐어짜이듯 아팠다.
그는 내 아이가 이상하다는 걸 보지도 않았다. 내 아이가 떨고 있는데도, 송유린의 아이 얘기만 하며 나를 몰아세웠다.
내 품 안에서 민우가 더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얼굴빛이 점점 잿빛으로 바뀌었다.
이대로는 안 됐다. 나는 이를 악물고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이재온이 갑자기 문을 확 열어젖히더니, 민우를 거칠게 낚아채 갔다.
그의 눈빛은 어둡고 사나웠다.
"남수연, 마지막으로 묻는다. 준희를 내놓을 거야? 말 거야?"
민우의 팔이 그에게 잡혀 흔들렸다. 아이가 아파서 숨도 제대로 못 쉬는데, 그는 그런 것 따윈 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끝내 무너졌다.
"나 진짜 그 애 본 적 없어! 우리 십 년을 살았어… 그런데 당신한테 나는, 그렇게까지 악독한 여자야?"
이재온이 잠깐 흔들리는 듯했지만, 그 틈을 송유린이 놓치지 않았다.
송유린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민우 길 닦아주려고라면 못 할 게 어딨어요! 어차피 준희는 언니 아들도 아니잖아요!"
그리고는 내게 매달리듯 울부짖었다.
"제발… 언니, 뭐든 나한테 해요! 우리 애만 건들지 말아줘요!"
울음은 처절했지만, 눈 밑에 번뜩이는 계산은 아이를 잃은 엄마의 눈이 아니었다.
이재온이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억지로 눌러 부드럽게 만들었다.
"준희 상속권? 공증으로 포기할게. 그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제발… 준희만 무사히 돌아오게 해줘."
"네가 애만 돌려주면, 내가 당장 유언장도 써."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친 사람처럼, 숨이 끊길 것처럼.
"누가 당신 유언장을 신경 써!"
내 목소리는 갈라졌고, 눈물이 시야를 흐려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