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본래의 모습
안여름은 꿈에서 돌아다닌 적이 없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채 이태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이태현은 담담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부상자야.”
안여름은 한 번도 남자와 같은 침대에서 자본 적이 없었다.
그의 강렬한 분위기와 차가운 기운은 그녀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놓았다.
긴장한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이불을 살짝 들어 올리고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
그러나 손목이 순식간에 옆에 있던 이태현에게 붙잡혔다.
이태현의 시선이 그녀의 손과 얼굴을 오가더니 의문을 던졌다.
“왜 손은 이렇게 하얀데 얼굴은 누렇게 떴지?”
안여름은 놀란 듯 손을 빼고 작게 대답했다.
“원래 그래요.”
그리고는 토끼처럼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뛰어갔다.
뒤에서 이태현의 시선은 흥미로움으로 물들었다.
화장실 안.
안여름은 거울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세면대 아래에서 클렌징 제품을 꺼내어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몇 분 후, 거울 속에는 피부가 하얗고 눈부신 미모를 가진 여자가 서 있었다.
졸업 후 집을 나와 매일 화장을 지우는 덕분에 본래의 얼굴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
딸이 예쁘게 자라면 엄마가 기뻐해야 할 텐데,
어릴 때 김소희는 오히려 안여름이 안여울보다 돋보이는 걸 싫어했다.
안여름이 예쁜 옷을 입는 것도 막았고,
그녀는 어머니의 기쁨을 위해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최고 성적에서 꼴찌로 떨어졌고,
학교에서 꽃으로 불리던 아이에서 외톨이가 되었다.
그렇게 해도 김소희는 한 번도 더 따뜻하게 자신을 바라보지 않았다.
안여름은 김소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차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30분 후, 다시 자신을 감춘 채 화장실에서 나왔다.
이태현은 침대에 기대어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차가운 표정에 금욕적인 분위기가 더해져 있었다.
안여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걸었다.
“저 나가려고요. 연락해서 사람 부르세요. 안 그러면 구급차를 부를 거예요.”
이태현은 반응하지 않았다.
안여름도 개의치 않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그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했다.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안여름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검은색 차 한 대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창문이 내려가자 부드러운 미소를 띤 젊은 남자가 보였다.
“여름아, 어디 가?”
안여름의 눈이 순간 빛났다.
“기범 오빠? 여긴 어쩐 일이야?”
“일단 타. 여기 오래 정차하면 안 돼.”
심기범이 문을 열어주자, 안여름은 주저 없이 차에 올랐다.
그녀가 문을 닫자마자 심기범이 말했다.
“네 언니 만나기로 했어. 같이 가서 밥 먹자.”
언니 안여울을 만나기로 했다고?
안여름은 그제야 예상했다.
안여울과 심기범이 어울린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들려왔다.
두 사람은 사귀지 않았지만, 안여름은 그의 친구로 남으면서도 심기범에게 마음을 품고 있었다.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난 할 일이 있어서…”
“오랜만이잖아. 같이 가자.”
단호한 그의 태도에 거절할 틈도 없었다.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안여울은 이미 와 있었다.
그녀는 안여름과 심기범이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심기범은 눈치채지 못하고 말했다.
“여울아, 오다가 여름이를 우연히 만났어. 같이 먹어도 괜찮지?”
안여울은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심기범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비웠다.
그가 나가자 안여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뭐야? 네 남편은 만족 못 시켜서 기범 오빠까지 꼬시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