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그녀를 발판으로 삼다
다음 날 아침.
안여름은 휴대전화 벨소리에 잠에서 깼다.
촌스럽게 보이기 위해 요즘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능이 다양한 스마트폰 대신, 전화와 문자만 가능한 구형 휴대전화를 고집해 온 그녀였다.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자,
순간적으로 잠이 확 달아났다.
잠시 망설이던 안여름은 결국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안대성의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엄격하고 무미건조했다.
“어제 집에 다녀왔냐? 누가 널 데려다줬지?”
갓 시집간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대신, 이런 사소한 질문부터 하는 아버지의 태도에 안여름은 씁쓸함을 느꼈다.
안대성은 평소에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이런 질문을 한다는 건 분명 의도가 있을 터였다.
그래도 안여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태현의 사촌 동생이요.”
안대성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시간 되면 네 언니 데리고 집에 한 번 가 봐라.
거기 괜찮은 젊은이들 있으면 몇 명 소개시켜 줘. 친구도 사귀고.”
그의 말뜻을 안여름은 단번에 알아차렸다.
어제 자신이 집에서 나간 뒤 안여울과 ‘이혜성’이 마주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안여울이 이혜성을 마음에 들어 했으니, 아버지가 자신에게 다리를 놓으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얄팍한 계산이었다.
처음에는 안여울과 이태현이 약혼할 사이였다.
하지만 결국 안여름이 대신 시집을 갔다.
그런데 이제는 그녀를 발판 삼아 안여울에게 더 좋은 남편을 찾아주겠다는 것이었다.
호양시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태현 집안은 그 자신을 제외한 사촌과 형제들까지도 모두 뛰어난 인물들뿐이었다.
안여름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안여울은 안대성의 친딸이고, 자신도 그의 딸인데 왜 이렇게 차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음을 다잡은 안여름은 최대한 감정을 숨기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다.
“언니를 데리고 가고 싶은데요. 전 아직 이태현 씨를 만나지도 못했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대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혼한 지 며칠이나 됐는데 남편 얼굴도 못 봤다고? 도대체 쓸모가 있긴 하냐? 너 같은 게 무슨 낯짝으로 집에 와!”
안여름은 코끝이 시큰했지만,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았다.
그리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를 보내 보세요. 이태현 씨가 언니는 만나 줄지도 모르잖아요. 저 같은 가짜 신부는 왜 만나겠어요?”
마침 욕실에서 나온 이태현은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까만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흘러내리고, 휴대전화를 꽉 쥔 손에는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눈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지만,
끝내 흘리지 않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이태현은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안여름은 전화를 끊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이태현이 다가와 그녀의 손에서 전화를 빼앗더니,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런 구식 휴대전화를 쓰다니.’
그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차갑게 말했다.
“듣기 싫은 말이면 안 들으면 돼.”
안여름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 탓에 그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말에는 어딘지 모르게 위로의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저 왜 침대에 있는 거예요?”
그녀는 어젯밤, 이태현을 침대에 눕히고 자신은 소파에서 잤다.
이태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네가 꿈에서 침대로 기어 올라왔어.”
그러더니 그녀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 옆에 자연스럽게 누워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