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내가 바로 네 남자야
황리나는 속이 뒤틀린 채 오래도록 숨만 차올랐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도 못했는데, 올라오는 건 시큼한 것뿐이라 토하고 나니 목까지 따갑게 타들어 갔다.
눈물은 고집스럽게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쓰레기통 옆에 쪼그려 앉아 몸을 웅크렸다.
왜 인생이 여기까지 와버린 건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멀리서 지켜보던 성준열의 얼굴이 단단히 굳었다.
이미 기분이 안 좋은 기색이었는데, 지금은 한층 더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다가오더니 황리나의 손목을 꽉 잡아 억지로 일으켰다.
"왜 울어. 내가 한 말 하나도 안 들렸냐?"
차갑게 떨어지는 목소리.
황리나는 이미 힘도 없는데, 그 말이 더 크게 박혔다.
"성준열 씨, 저... 진짜 싫어요. 제 앞에서 좀... 사라져 주세요."
참고 눌러두었던 서러움이 결국 터져 나왔다.
무섭지만, 더는 삼킬 데도 없었다.
눈물은 한 번 나오기 시작하자 멈추질 않았다.
황리나는 고개를 깊이 숙인 채 흐느꼈다.
성준열의 얼굴이 바짝 굳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흔들리던 마음이 있었는데, 그녀의 그 한마디에 완전히 끊어진 표정이었다.
"나 싫어? 그래서 뭐, 추민재가 더 좋냐?"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아주 깊고 위험하게.
순식간에 그의 손이 더 강하게 그녀의 손목을 조였다.
"좋아. 그런 말 나왔으니까, 오늘은 제대로 알게 해줄게. 네 남자가 누군지."
그는 말 그대로 그녀를 복도 끝 어두운 곳으로 거칠게 끌었다.
황리나는 너무 놀라 손끝까지 얼어붙었다.
"성준열 씨... 그러지 마세요. 저... 무서워요..."
떨리는 목소리가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나왔다.
작은 체구라 저항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사람이 잘 오지 않는 복도 끝, 그늘진 자리.
거기서 성준열은 갑자기 그녀를 벽 쪽으로 몰아붙였다.
숨이 꽉 막힐 정도로 가까운 거리.
눈빛은 질투와 분노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황리나, 너 말로 하면 잘 안 듣잖아."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오자 황리나는 어깨를 움츠렸다.
손끝이 떨리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도망칠 생각 하지 마. 너 그러면 더 안 좋아져."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고, 통제되지 않은 감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황리나는 두 손을 가슴 앞에 꼭 모았다.
"싫어요... 진짜 이러면 안 돼요..."
그제야 성준열의 손이 아주 조금 느슨해졌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쉬더니, 갑자기 자신의 회색 재킷을 벗어 그녀 어깨에 걸쳐주었다.
황리나는 이 모순적인 행동에 오히려 숨이 막혔다.
몰아붙였다가 또 감싸주고... 이런 방식이 더 잔인했다.
그녀는 벽에 기대 작게 웅크린 채 한참을 떨며 숨을 고르기만 했다.
조금 지나서야 비틀거리며 복도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 순간, 저쪽에서 황수경이 빠르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황리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숨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리나야! 여기 있었네. 엄마가 얼마나 찾았는데."
황수경은 가까이 와서 그녀의 몰골을 보는 순간 눈이 크게 흔들렸다.
헝클어진 머리, 울어 번진 화장, 성준열의 재킷.
하지만 표정은 금세 바뀌었다.
오히려 눈이 반짝였다.
"아이고, 준열이가 널 챙긴 거구나. 아주 못 참는구나, 못 참아."
깔리는 웃음까지 흘렀다.
황리나는 그 말이 너무 벅차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
기댈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엄마, 저 그냥 가고 싶어요."
황수경은 찢어진 드레스를 보고 혀를 찼다.
"아이고, 옷 좀 봐. 그리고 너는 왜 이렇게 애가 안 들어서는 거야.. 벌써 3년이야!"
황리나는 이마를 짚으며 숨을 들이켰다.
그 얘기만은... 제발.
듣고 말고도 없이, 황수경은 등을 탁 내리쳤다.
"네가 관리를 못 해서 그런 거지! 다 네 잘못이야!"
황리나는 비틀거리며 벽을 짚었다.
눈물이 또 터졌다.
"엄마는... 왜 맨날 애 얘기만 하세요? 그렇게 좋으면 엄마가 낳으세요!"
황수경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야!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잖아! 성씨 집안에서 널 받아준 것도 네가 임신했기 때문이었는데..."
황리나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턱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래요. 맞아요. 감사해야죠. 잘 모셔야죠. 금줄 꽉 잡아야 하니까요."
황수경은 그제야 그녀 표정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리나야... 너 준열이랑 싸웠어?"
"싸움이요? 그게 돼요? ... 저는 싸울 수 있는 급이 안 돼요."
말투에서 체념이 스며 나왔다.
황수경은 잠깐 멈칫했지만, 또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래도 애는 있어야지! 추유민 좀 봐. 얼마나 예뻐. 너랑 준열이가 낳으면..."
황리나는 더는 못 참고 등을 돌렸다.
"리나야! 말 좀 듣고 가!"
황수경이 뒤에서 따라오다 그녀의 등에 꽝 부딪혔다.
황리나는 멈춰 서서 울먹이며 돌아봤다.
"그만하세요. 저... 못 낳을 수도 있어요. 평생 그럴 수도 있다고요. 이제 됐죠?"
황수경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뭔가 말하려는 순간, 뒤쪽에서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조용히 다가왔다.
성준열.
황수경은 순식간에 표정을 정리하며 다가갔다.
"준열아, 리나가 잠깐 속상해서 그런 거야. 그런 뜻 아닌 거 알지?"
성준열은 아무 말 없이 황리나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 그의 존재감은 단단했다.
그리고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방금 그 말, 다시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