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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아준 사람, 뒤늦게 찾은 사람

176.0K · 연재 중
힌구린
70
챕터
533
조회수
9.0
평점

개요

비밀 결혼 3년, 그녀의 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쓸모없는 여자라 욕하고, 시누이는 재수 없는 흉조라고 손가락질했다. 그래도 남편만큼은 끝까지 내 편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가 내민 건, 차가운 이혼 서류 한 장을 들고 왔다. "이혼하자. …그녀가 돌아왔어." 이혼 후, 성준열은 첫사랑을 데리고 산부인과 검진을 왔다가 세 쌍둥이를 데리고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전 아내와 마주친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그 애들, 도대체 누구 자식이야?!"

현대물카리스마결혼이혼후회남

제1화 그녀를 3년 동안 옭아맨 고통

"약 먹어."

성준열은 셔츠를 대충 걸친 채 복근이 드러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손바닥에 흰 약 한 알을 올려둔 채 황리나를 보고 있었다.

황리나는 책상에서 내려오다 다리가 잠깐 풀렸고, 급히 책상을 짚고서야 그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그건 피임약이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는 매번 관계가 끝나면 피임약을 준비해 건네고, 그녀가 삼키는 걸 끝까지 지켜봤다.

삼 년이 지나며 몇 번째인지 기억도 흐려졌지만, 약을 먹을 때마다—그는 그녀가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다는 걸 계속 확인시키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다시 임신하는 일을 막으려고 늘 경계했다.

우스운 건, 그녀는 이미 엄마가 될 자격을 잃었는데도 여전히 그가 만든 연극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연극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황리나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들었다.

"저... 어제 생리 끝났어요. 아직 안전일이라서... 오늘은 약 안 먹으면 안 돼요?"

그녀는 피임약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먹고 나면 한참 속이 뒤틀렸다.

그래도 말한 적은 없었다. 그의 목적이 피임이 아니라, 그녀를 모욕하는 데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준열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약 안 먹겠다고? 황리나, 너 내 애 낳고 싶어?"

황리나는 옆으로 내려온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그는 늘 그녀가 아픈 부분만 정확히 건드렸다.

"그런 거 아니에요..."

성준열은 성큼 다가와 차가운 손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눌렀다.

"황리나, 네 신분 기억해. 가사도우미 딸이 내 애를 가질 수는 없어."

황리나는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고,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왔다. 그녀는 표정을 지운 채 약을 집어 입에 넣었다.

그녀는 물도 없이 약을 씹어 삼켰다.

쓴맛이 퍼졌고 목이 따끔거렸지만, 마음속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삼 년 전, 임신을 계기로 그와 결혼했다. 그때의 성준열은 차갑긴 해도 최소한의 존중은 있었다.

여섯 달쯤 됐을 때, 그녀는 뜻밖의 유산을 겪었다.

그 뒤로 그는 그녀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가 일부러 아이를 떨어뜨렸다고 믿었다. 그녀를 차갑고 잔인하다고 했다.

결혼한 지 삼 년 동안, 그는 계속 그녀를 괴롭혀 왔다.

그녀가 약을 삼키는 걸 끝까지 확인한 뒤, 시선을 잠시 그녀의 아랫배에 두었다가 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 밤 추씨 집안 100일 잔치, 같이 가."

황리나는 멈칫했다. 추씨 집안...

그가 아까 갑자기 날카롭게 굴었던 이유가 이해됐다. 청첩장이 추씨 집안에서 온 거였다.

그는 삼 년 내내 '추씨 집안'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예민해졌다.

추민재는 그녀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성준열이 그녀를 배신하게 만든 남자라고 믿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날의 오해는 두 사람 마음에 깊게 박혀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알겠어요."

황리나는 작게 말하고 문 쪽으로 걸었다.

뒤에서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성준열은 또 화가 난 얼굴로 그녀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밤 네가 추민재랑 단둘이라도 말 섞으면... 해봐."

황리나는 문고리를 잡은 손이 잠시 멈췄다. 그건 분명한 경고였다.

그녀는 말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추씨 가문은 제경시 네 대 명문가 중 하나였고, 100일 잔치는 성대하게 열렸다.

그들은 제경시에서 가장 비싼 6성급 호텔을 통째로 예약했고, 도시의 이름 있는 인사들을 모두 초대했다.

호텔 입구에서 황리나는 검은 미니 드레스를 입고 성준열과 함께 리무진에서 내려섰다. 추강현은 아내 심소정과 서 있었고, 심소정 품에는 100일 된 추유민이 안겨 있었다.

추강현은 그들을 보자마자 반갑게 다가왔다.

"준열아, 리나야, 왔네. 소정아, 아기 좀 데려와. 유민이 보여줘."

그는 아빠 특유의 들뜬 얼굴로 성준열의 팔을 가볍게 쳤다.

"준열아, 아기가 얼마나 신기한 줄 알아? 이렇게 작은데 품에 안고 있으면 그냥 기분이 풀려. 너네도 하나 가져."

성준열은 그의 환한 얼굴이 괜히 신경 쓰였다. 심소정 품의 아기를 보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에게도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떠나버렸다.

그의 표정이 금세 굳었다.

황리나는 그 분위기를 느끼고 서둘러 준비해 둔 선물을 꺼냈다.

"강현 오빠, 새언니. 이거 유민이 위해 준비했어요."

심소정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무슨 선물이야. 강현아, 네 동생 너무 예의 차리는 거 아니야?"

겉으로는 '동생'이었지만, 황리나는 추씨 집안과 혈연이 없었다.

그녀는 어릴 때 추씨 집안에서 자랐고, 엄마 황수경이 두 형제를 돌본 가사도우미였기에 두 사람은 그녀를 동생처럼 대해왔다.

추강현은 황리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리나야, 너 살 빠진 거 아니야? 지난번보다 더 야위었네."

그 말이 끝나자 성준열의 표정이 더 차가워졌다.

"내가 잘 못 챙겼나 보지."

황리나는 순간 굳었다. 그 말에 담긴 뜻을 잘 알고 있었다.

추강현은 어색하게 웃었다.

"준열아, 너 진짜 웃긴다. 너희 먼저 들어가. 우리도 금방 갈게."

성준열은 굳은 얼굴로 안으로 걸어갔고, 황리나는 눈치를 보며 뒤를 따랐다.

그는 기분이 나쁘면 그 영향이 늘 그녀에게 돌아왔다.

연회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성준열은 서 있기만 해도 시선을 끌었다.

잿빛 수트는 그의 넓은 어깨와 긴 다리를 깔끔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은색 타이클립과 포켓 손수건까지 더해져 차가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황리나는 알고 있었다. 옷만 벗으면, 그는 전혀 신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걸.

"준열아, 왜 이제 왔니?"

성 부인은 보석이 반짝거리는 차림으로 다가와 황리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너 이게 무슨 차림이야?"

성 부인은 애초에 황리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가사도우미 딸이 성씨 가문에 들어올 일은 없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혼인신고만 했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황리나는 자신의 옷을 잠시 내려다보고 말했다.

"저는 괜찮은 거 같아요."

성 부인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까 들어오면서 유민이 봤지?"

"봤어요."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성 부인은 눈을 좁혔다.

"결혼한 지 삼 년이야. 첫 해엔 준열이가 네 몸이 허약하다고 임신 미루자고 했지. 근데 벌써 삼 년이야. 회사 그만두고 집에서 임신 준비해야 되는 거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