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그녀에게 임신을 재촉하다
성 부인은 평소 손주 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었다. 주변 친구들도 아직 할머니가 된 사람이 없었고, 그녀도 굳이 서둘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추 부인이 추유민을 안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성 부인의 속이 은근히 뒤틀렸다.
왜 추씨 집안이 먼저 손주를 볼 수 있단 말인가?
황리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성준열이 예전처럼 적당히 넘겨줄 줄 알았지만, 그는 냉담한 얼굴로 그녀만 바라볼 뿐 어떤 도움도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너한테 말하는데, 왜 준열이 얼굴을 봐?"
성 부인은 참다 못해 목소리를 날카롭게 높였다.
"내일 나랑 병원 가서 검사해. 그리고 당분간은 집에서 임신 준비나 하고."
"어머님..."
황리나는 속이 턱 내려앉았다.
한 사람은 아이를 낳으라고 재촉하고, 한 사람은 낳지 말라고 하고, 그녀만 그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회사 요즘 너무 바빠요. 두 달만..."
"네가 뭐가 그렇게 바빠? 너 하나 없으면 회사가 망하기라도 해?"
성 부인은 단칼에 말을 잘랐다.
"황리나, 기억해. 네가 성씨 집안에 들어온 건 네가 준열이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야. 지금 그 아이가 없어진 만큼 더 서둘러야지."
말은 너무 직설적이었고, 잔인했다.
황리나는 이 말을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혼전 임신은 늘 그녀를 부끄럼의 굴레에 묶어두었고, 성 부인이 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숨이 막혔다.
성준열은 그녀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고 담담히 말했다.
"내일 제가 데리고 갈게요. 어머니는 다른 걱정 하지 마세요. 추 여사님이 어머니 찾으시는 것 같아요."
성 부인은 아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멀리서 추 부인이 이쪽을 힐끔 보고 있는 걸 보았다.
"저 사람 또 손주 자랑할 거야. 너희 둘은 제발 좀 분발해. 나중에 쌍둥이라도 가지면 아주 속 시원하겠다."
성준열은 말 없이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성 부인이 자리를 비키자, 황리나는 위가 조여오는 듯 아파와 낮게 말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성준열은 그녀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인상 깊게 바라보며 이유 없는 짜증이 치밀었다.
그는 술잔을 받아 단숨에 털어 넣었다.
독한 술이 목을 타고 지나가며 화를 더 부추겼다.
그때, 그의 시야 한켠에서 익숙한 실루엣 하나가 연회장을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추민재였다.
성준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황리나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복도엔 바흐의 피아노 선율이 잔잔히 흘렀고, 그녀는 다시 연회장의 가식적인 분위기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중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밤이 내려앉은 중정은 조명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들어서려는 찰나, 안에 이미 누군가 있었다.
뒤돌아 나가려던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등을 울렸다.
"리나야."
그 목소리를 듣자 황리나는 어깨가 움찔 굳었다.
성준열의 경고가 생생히 떠올라, 그녀는 급히 걸음을 재촉했다.
곧 뒤에서 빠른 발걸음이 들렸고, 누군가 그녀 앞을 막아섰다.
"리나야, 나 보기가 그렇게 싫어?"
황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추민재의 눈가는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서운함이 고스란히 비쳐 그녀의 가슴이 아릿하게 죄였다.
"추민재, 우리... 만나면 안 돼."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다.
추민재는 그녀보다 보름 먼저 태어났고, 추 부인은 몸이 좋지 않아 젖을 먹이지 못해 아기였던 추민재를 황수경에게 맡겼었다.
아마 그래서 두 사람의 사이는 늘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3년 전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복도는 어둑했지만, 추민재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뜨겁게 빛났다.
그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리나야, 가지 마. 나... 진짜 보고 싶었어."
그는 연회장에서 멀리서 그녀가 성씨 집안 사람들과 있는 걸 보았다.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성준열이 그녀에게 잘하지 않는다는 걸.
황리나의 미소는 굳어 있었고, 눈빛엔 생기가 없었다.
그는 깊게 후회했다.
3년 전, 그녀가 가장 힘들었을 때 자신이 손을 놓아버린 걸.
"추민재, 너... 술 많이 마셨지."
황리나는 손목을 힘주어 빼냈고, 몸을 돌려 앞으로 걸어갔다.
"나 이제 가봐야 돼."
"황리나!"
추민재는 떨린 목소리로 외쳤다.
"너 지금 행복하지 않잖아. 원래 잘 웃었는데... 오늘은 한 번도 안 웃었어.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거야?"
황리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대답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빛과 그림자가 갈리는 자리에서, 성준열은 냉랭한 얼굴로 서 있었다.
마치 깊은 어둠 속에서 방금 걸어나온 사람처럼.
"그래?"
성준열은 황리나 옆으로 와 그녀의 허리를 단숨에 끌어당겼다.
그리고 몸을 돌려 추민재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우리 리나가 행복한지, 네가 나보다 더 잘 아는 모양이네."
그는 눈을 내려 그녀를 바라보며 턱을 가볍게 집어 올렸다.
눈가엔 차가운 적의가 번졌다.
"그럼 지금 바로 보여줄까? 괜찮다는 거."
황리나는 놀라 어깨가 굳었고, 허리까지 아릿한 통증이 번졌다.
그녀는 성준열의 경고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그녀와 추민재가 단둘이 있는 장면을 본 것이다.
그는 분명 화를 낼 것이었다.
추민재는 두 사람이 바짝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질투에 눈이 붉어졌다.
"성준열 씨, 당신은 리나 사랑하지도 않잖아요. 왜 놓아주지도 않아요?"
"누가 사랑 안 한다고 했는데?"
성준열은 그녀의 허리를 좀 더 세게 감았다.
몸이 바짝 붙었고, 그는 비웃듯 말했다.
"리나야, 네 어릴 때 친구한테 말해줄래? 내가 어떻게 챙겼는지."
황리나는 얼굴에서 피가 쭉 빠졌다.
성준열이 의도적으로 그녀를 모욕하고 있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았다.
추민재도 단번에 눈치를 챘다.
그는 주먹을 꽉 쥐며 떨었다.
"성준열, 너 진짜..."
"추민재, 그냥 가. 제발."
황리나는 급히 그의 말을 끊었다.
그녀는 성준열에게서 강한 술 냄새를 맡았다.
지금 그가 얼마나 예민한지 단번에 느껴졌다.
계속 자극하면 결국 다칠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었다.
"리나야, 너... 이렇게까지 모욕당하고 싶은 거야?"
추민재는 절박하게 말했다.
"이건... 우리 부부 사이 일이야."
황리나는 '부부'라는 말을 또렷하게 눌러 말했다.
그 말은 찬물을 끼얹은 듯 추민재의 눈빛을 단숨에 식게 만들었다.
그는 두 사람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며, 자신에게 어떤 자격도 없음을 깨달았다.
"미안하다... 내가 선 넘었네."
추민재는 비틀거리며 돌아섰다.
그의 흐트러진 발걸음이 점점 멀어져 갔다.
황리나는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갑자기 속에서 확 메스꺼움이 치밀어 올라, 성준열을 밀치고 쓰레기통 쪽으로 달려가 헛구역질했다.
성준열은 잠시 멈칫했지만, 금세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는 헛구역질하는 황리나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뭐야, 옛날 친구 한 번 봤다고 내가 그렇게 역겨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