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윤태성의 굴욕
다음날, 이른 아침.
안별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변기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유미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상대는 매우 흥분한 듯했다.
“별별! 너 오늘 뉴스 봤어?”
“......” 안별은 지금 막 보려던 참이었다.
“안별의 남자 윤태성이랑 도주원이 나란히 실검에 올랐어!!”
“누가 윤태성이 내 남자래!” 안별이 화를 내며 대답했다.
“뭐야, 그럼 도주원은 네 남자 맞다는 얘기야?” 유미미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유미미!”
유미미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튼 뉴스 먼저 봐. 난 그거 보니까 진짜 재밌더라.”
말을 마친 후, 유미미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안별은 사실 보지 않아도 온라인에서 어떻게 다루었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대개 도주원과 윤태성에 대한 평가는 비슷할 테니까.
역시나.
안별은 각종 플랫폼에 올라온 뜨거운 소식들을 확인했다.
#자선파티_억단위_기부_도주원_거액기부_기부천사
#사랑의가치?_윤태성_거금_들여_안별과결혼_거부
#도씨도련님_역시나_도주원이다_50억_보석_당장_선물
처음으로 도주원이 스캔들이 아닌 다른 내용으로 실검에 올랐다.
심지어 이번에는 경제와 사회 톱 기사에도 올라갔다. 물론 여론의 방향은 좋기도, 나쁘기도 했다.
하지만 윤태성에게 이번 사건은 처음으로 비웃음과 깎아내림을 당하는 일이었다.
뉴스를 본 윤태성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그에 대해선 언제나 칭찬만 있었고, 언론 매체들은 그를 완벽한 인물로 떠받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매체들이 그의 흠을 하나하나 꼬집기 시작했다. "인색하다", "안별을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완벽한 사람은 아니다", 심지어 "윤씨 집안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며 자금줄에 문제가 생겼다고까지 언급되었다.
실제로 문제가 생긴 건 사실이다. 그래서 윤태성은 절박하게 안씨 가문과의 결혼을 추진해 왔다. 안씨 집안에서 무조건적으로 융자를 끌어내려고 했는데, 하필 결정적인 순간에 도주원이 나타나 그의 계획을 망칠 뻔한 것이다.
가장 화가 난 건 윤씨의 주식 시장이 개장하자마자 하한가로 내려갔다는 것이다.
주식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윤씨는 막대한 자금을 빼돌려야 했다. 이는 그에게 큰 타격이었다.
윤태성은 분노에 몸을 떨며 스스로에게 냉정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안별과 결혼하는 거야."
안씨는 A국의 4대 가문 중 두 번째로 큰 재력을 자랑하는 집안으로, 도씨 가문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만약 그가 안씨 집안을 차지하게 되면, 안씨와 윤씨의 재력을 합쳐 도씨 가문을 누를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아무리 도주원이 발악을 하더라도 판을 뒤집을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안씨를 손에 넣으면 그에게 필요한 자본을 확보할 수 있다.
윤태성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입가에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오늘 받은 굴욕은 차후에 반드시 배로 갚아줄 거다."
*
안별은 따끈따끈한 뉴스들을 보면서 꽤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그때 유미미의 전화가 또 걸려왔다.
“봤어?”
“봤어.” 안별이 대답했다. “근데 왜 네가 그렇게 흥분해?”
“너 때문에 흥분한 거잖아!” 유미미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예전엔 네가 사람 보는 눈이 정말 바닥이라고 생각했어. 내가 너한테 이성적으로 조언을 해줘야 하나, 라는 생각도 했었고. 그런데 지금, 갑자기 깨달았어. 우리 별별 언냐, 사람 보는 눈 참 독해. 도주원 같은 슈퍼 쓰레기의 그 알량한 장점을 너는 어떻게 알아낼 수 있었던 거야?”
유미미가 자신을 칭찬하는 게 맞는지 살짝 의심이 들었다.
“나랑 도주원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그럼 뭐가 다른데?” 유미미의 얼굴엔 ‘흥미진진’이란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제 알게 될 거야.”
“안별별! 너 나한테 비밀 생기기 시작한 거야? 너 변했어!” 유미미가 투덜거렸다.
그렇다. 나는 변했고, 앞으로 더더욱 변해야만 한다.
'이에는 이'가 꼭 필요한 독한 사람으로!
“아, 맞다.” 유미미가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소지훈이 돌아왔어.”
“그래?”
기억 속에 요 며칠 전의 일인 것 같았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제 소리 소문 없이 돌아왔어. 나 깜짝 놀랐잖아. 근데 문제는...” 유미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안별은 뒷말이 궁금해졌다.
“아무튼, 걔가 돌아왔다는 건 무조건 좋은 일이 아니야. 내 재산을 빼앗으러 돌아온 게 틀림없어! 난 절대 그렇게 못하게 할 거야.” 유미미는 확신에 찼다.
안별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너무나도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녀와 재산 쟁탈을 벌이려고 하는 사람이 그녀의 아빠, 엄마, 오빠가 아니라, 늘 마음에 소중히 품고 사랑하던 사람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안별은 그녀를 믿게 만들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소지훈이 너희 집 재산을 뺏는 게 싫으면, 너가 네 회사에 출근하면 되잖아? 회사를 네 손에 쥐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음......” 유미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분명 아직 놀고 싶은 마음이 크고 출근은 죽어도 하기 싫은 거면서.
그녀는 우물쭈물거리며 말했다.
“정훈이가 있잖아~ 걔가 나를 도와서 우리 집을 지켜주면 돼!”
유미미는 그때 당시의 안별과 꼭 같았다.
끼리끼리 논다고, 똑같이 단순했다.
“아무튼, 내 말을 잘 생각해보도록 해. 끊어야겠다. 할머니가 나한테 전화하셨어.”
전화가 걸려온 건 사실이었다.
“너희 할머니가 무슨 좋은 일로 너한테 연락했겠어?!” 유미미가 투덜거렸다.
확실히 좋은 일은 없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을 잘 상대할 수 있도록 시간을 들여야 한다.
안별은 유미미의 전화를 끊고 문정자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 어쩐 일이세요?”
“누구랑 통화를 하고 있었길래 반나절이나 지났는데도 내 전화를 받지 않았던 게냐! 너는 어쩜 니네 아빠랑 똑같이 어른을 공경할 줄을 몰라!” 수화기 너머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여전히 언짢았다.
안별은 휴대폰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지만, 꾹 참았다.
남존여비의 사상이 깊게 뿌리박힌 할머니는 늘 안별을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나 큰 아버지네 큰 아들, 안지호를 더 이뻐했다. 그래서 그녀도 아버지처럼 할머니를 피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 생, 환생한 후로는 더 이상 입을 꾹 닫고 살고 싶지 않았다. 일말의 억울함도 허락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할머니, 어쩐 일이세요?”
“저택으로 들어와!” 할머니의 말이 끊기 무섭게 통화는 종료되었다.
안별은 잠시 멍하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녀의 안색이 굳어졌다.
다년간 할머니를 향해 꾹 닫아 두었던 입을 이제 열 때가 온 것 같았다. 아니면 정말 자신이 태황태후 마마라도 된 줄 알 것이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급히 씻은 후 아래층으로 내려가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별아, 아침도 안 먹고 어디 가?” 여민정이 급히 그녀의 딸을 불러 세웠다.
“할머니네 집 가요.”
“거긴 뭣하러?” 여민정은 걱정이 되었다. 또한,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도 있었다.
안씨 가문에 시집 온 후, 여민정은 한 번도 시어머니의 좋은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집안이 내세울 만한 집안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문정자는 여민정을 업신여겼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할아버지가 여민정을 많이 이뻐해 주셨다는 점이었다. 그 덕분에 혼사도 승낙하셨던 것이다.
결혼 후 여민정은 문정자에게 피할 수 있는 만큼 멀리 피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자기 딸이 혼자 가겠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할머니가 저한테 볼일이 있다고 하셨어요.”
“무슨 일인데?”
“말씀은 안 하셨어요.”
다년간 여민정은 문정자에게 반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딸이 그곳에 가는 걸 원치 않았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랑 같이 가자.”
“할머니가 저를 괴롭힐까 봐 그러세요?”
“언제 너를 안 괴롭힌 적 있어?” 여민정은 불만이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어차피 가도 도움이 안 되실 거예요.” 안별이 매정하게 정곡을 찔렀다.
사실, 그게 너무나도 현실적인 답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집안의 갈등을 일으키고 싶어하지 않았다. 절대로 할머니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은 될 수 없었다.
“최소한 할머니가 너 한 사람만 잡고 욕하지는 않을 거 아냐.”
여민정이 안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보호였다.
안별은 웃었다.
우리 엄마, 진짜 착한 사람이다.
“그럼 같이 가요.”
가요. 내가 보여줄게요.
엄마를 괴롭힌 악독한 시어머니를 어떻게 혼내주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