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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저희는 지렁이가 아닌 사람이에요

안씨의 저택은 한성 시내에는 위치하지 않았다.

한성시 교외의 한 읍에 자리잡고 있는 이 옛 저택은 거의 읍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도시와 읍이 개발됨에 따라 많은 지역이 원래의 모습을 잃었지만, 유독 안씨 저택만은 고유의 고색창연한 건축양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러 개발사들이 안씨의 옛 저택을 사들이고 싶어 했지만, 가격 협상에서 실패하며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결국 이곳은 '길지(吉地)'로 불리며, 도시계획국에서 개발을 포기하자 관광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후 이곳은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시작했고, 각종 인플루언서들의 SNS에도 자주 등장하면서 점차 명소로 자리잡았다.

안별과 여민정은 안씨 대저택의 큰 한옥 대문을 통과했다.

금가루처럼 빛나는 입구를 지나면, 그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푸른 잔디가 깔린 대형 정원이었다. 정원을 가로지르면 한쪽에 가산이 보였고, 그 뒤로는 연꽃이 만개한 연못이 있었다. 푸르른 다리를 지나고, 한옥 복도를 몇 개 거치면 형형색색의 한옥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다. 정면을 바라보면, 비로소 위엄이 넘치는 거대한 문이 보였고, 그 안에는 안씨 저택의 화려한 홀이 있었다. 홀 내부는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융합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으며, 곳곳에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정갈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이 시각, 안씨 집안의 유일한 어르신인 문정자는 바로 홀 안의 가장자리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표정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양옆에는 안수만 일가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본래 안수만은 시내 구역에 별장이 있었지만, 효심을 드러내기 위해 근래에 온 가족을 이끌고 안씨의 옛 저택으로 들어왔다. 정말 효자도 이런 효자가 없다!

안별은 주위를 둘러보며 덤덤하게 먼저 입을 열었다.

“할머니.”

“너한테 오라고 한 거지, 쟤는 왜 같이 따라온 거야?” 문정자는 안별이 들어서자마자 쏘아붙였고, 바로 질타가 이어졌다. “왜, 이 늙은 노인네가 너를 괴롭히기라도 할까봐 따라온 거냐?”

“어머님, 오해세요. 별이한테 저택으로 오라고 하셨다길래, 저도 오랜만에 어머님을 뵙고 문안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함께 온 것뿐이에요.” 여민정은 급히 나서서 해명했다.

“제수씨는 말을 참 잘해요. 그런데 난 어쩌다 보니 제수씨네가 빈손으로 온 것밖에 안 보이네요? 우리가 우스운 사람들인가요, 과일 바구니 하나 준비하지 않고?” 박정선은 비꼬며 여민정을 쏘아보았다.

안별은 고개를 돌려 박정선을 한 번 쳐다봤다.

그녀가 예전에 안효진을 혼내줄 때는 같은 편인 척했지만, 지금 시어머니 앞에서는 예쁨 받으려는 듯 바로 다른 사람처럼 태도가 변했다.

“누가 저희가 할머니께 드릴 선물을 준비 안 했대요?” 안별이 차분하게 대꾸했다.

“무슨 선물을 준비했는데? 어디 한번 꺼내보라고.” 문정자의 말투는 여전히 불쾌하고 공격적이었다.

여민정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급히 나와서 준비물을 챙기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이렇게 질문을 받으니,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안별에게 잠시 참으라고 눈짓을 보냈다.

매번 할머니 집 사람들과 대면할 때마다, 엄마는 늘 참기만 했으니까.

안별이 입을 떼려던 찰나, 문정자가 직접 말했다.

“너희가 준비한 선물, 난 그딴 거 필요 없어.”

“할머니, 무슨 일 때문에 저를 오라고 부르신 거예요? 별일 없으면 먼저 가볼게요. 여기에 있으면 할머니만 불쾌하게 만들잖아요.”

안별은 엄마를 끌고 바로 떠나려 했다.

“거기 서!” 문정자가 큰 소리로 명령했다. “내가 가라고 안 했는데 어딜 가! 그리고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역시 없는 집안 사람이 키운 자식이라 교양이 그따위지.”

또 여민정의 출신을 들먹이며 비난을 이어갔다.

여민정은 그냥 듣기만 했다. 사실 슬프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예전에 여러 번 엄마가 두 눈이 빨개져서 안씨 저택에서 돌아오는 걸 봤기에, 아빠가 난처해지는 게 싫어서 집안의 평화를 위해 무엇이든 참아야 했다.

하지만 입을 꾹 닫은 결과는 좋을 리가 없었고, 오히려 문정자는 그녀를 더 모욕하고 풍자하며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안별의 얼굴은 티 나게 일그러졌다.

문정자는 계속해서 비꼬았다.

“왜, 안씨의 재산을 상속받았다고 이제 이 늙은이는 안중에도 없다 이거냐?”

“할머니, 잊으셨나 본데요. 할머니 성씨는 안씨가 아니라 문씨예요. 안씨 집안의 재산은 처음부터 할머니가 손댈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물론 앞으로도요.”

“너!” 문정자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화가 나서 입만 벙긋거렸다. 늘 나약하기만 했던 손녀가 갑자기 이렇게 매서워져 면전에 대고 난처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안씨의 가업요. 그건 할아버지가 유서에 명확히 규명한 부분이에요. 그 부분에 대해 할머니께서 불만이 있으시면... 직접 할아버지한테 가서 따지시던지요.” 안별은 음침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감히!” 안수만이 버럭 화를 냈다. “안별,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거냐? 못돼먹은 자식 같으니라고, 감히 할머니를 저주해?!”

“큰 아버지, 저는 그냥 뱉은 말인데요?” 안별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큰 아버지, 그런 생각이 있어서 제 말을 그렇게 이해하신 건 아니죠?”

“너 그 입 함부로 놀리지 마!” 안수만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오늘 제가 돌아온 건 이런 시시한 말 싸움이나 하려고 온 게 아니에요. 당연히 우리를 아무렇게나 모욕해도 된다는 말도 아니고요. 할머니가 일이 있으시다고 하셔서 돌아온 건데, 만약 할머니가 저를 한바탕 혼내고 싶으셨다면, 죄송하지만 저는 더 이상 여기 머무르고 싶지 않네요!”

냉랭한 말투는 사람의 심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안별은 정말 순식간에 변한 것 같았다.

할 말을 따박따박 다 하고, 어느 때보다도 기가 세 보였다.

안별은 눈을 피하지도 않고 문정자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두려움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녀 옆에 서 있던 여민정이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며칠 전 안효진의 뺨을 때린 일도 자기 딸을 다시 봤는데, 오늘 기세등등하게 문정자와 말을 하는 안별을 보니, 여민정은 잠시 자기 딸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말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년간 문정자의 억압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던 여민정은 오늘처럼 시원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 딸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기껏해야,

기껏해야 안씨 옛 저택의 이 사람들과 연을 끊으면 그만이다!

여민정도 이제 알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은 단 한 번도 그녀의 가족을 가족처럼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그녀가 잘 보이려고 애쓰고, 심지어 아부를 하려 해도, 그 어떤 노력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너, 너, 너……” 문정자는 안별을 향해 온전한 한마디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안별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할머니, 제가 말씀드리지 못한 부분이 있네요. 이 안씨 옛 저택은 우리 아빠 명의로 된 땅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할머니 일가가 살고 있는 곳, 그게 사실 우리 집 거예요. 지금 우리한테 꺼져라고 하시면서 그게 타당한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안별 네 이년!” 문정자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물론, 저야 할머니께 나가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한 말씀 드리고 싶어요. 남의 물건을 점유하고 있으면서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시는 건, 그거 정말 큰 실례입니다.” 안별은 그 어떤 장난기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문정자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 나이 먹었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가족의 존중과 존경을 바라면 안 된다는 것을.

“안별! 어른한테 버르장머리 없이! 돼먹지 못한 게!” 문정자는 안별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자신을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저는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만약 제가 말한 사실이 할머니를 불편하게 하셨다면, 이 어린 손주를 용서해 주세요. 그런데요, 할머니도 이제 연세가 있으신데 많은 일들을 아셔야 할 때가 아니신가요? 만년에 노망나지 않으시려면, 좀 더 현실을 직시하셔야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지렁이가 아닌 사람들입니다.”

틀린 점 하나 없이, 안별의 말들은 문정자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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