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자선 파티 (4) 나 연애해!
안별은 도주원의 시선에 응답했다.
두 사람의 눈이 정확히 마주쳤다.
딱 1초 동안.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움직였다.
도주원은 사회자를 향해 외쳤다. “50억!”
구경하고 있던 사회자가 그 순간 정신을 차렸다.
“50억 원! 50억 원! 50억 원, 낙찰입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도주원 도련님, 낙찰 축하드립니다!”
연회장 전체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주원은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스테이지에 올라가 사파이어를 건네받았다.
사파이어는 정교한 유리 보석함에 보관되어 있었고, 화려한 조명 아래 그 푸른 색은 실로 눈부셨다. 많은 이들이 가까이에서 그 보석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했다.
이내 도주원은 뚜벅뚜벅 걸어 내려와 윤태성과 안별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윤태성의 미간이 약간 찌푸려졌다.
아마도 도주원이 일부러 자랑하러 온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지 못하게도 도주원은 어렵게 얻은 값비싼 사파이어를 직접 안별에게 건넸다.
“선물이에요.”
순간 연회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숨을 죽였다.
소문에 도주원은 안하무인에 언제나 갈피를 잡지 못하는 행동을 하곤 한다고 했는데, 오늘에야말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안별은 도주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 도주원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 말투는 어딘가 모르게 썸의 기운마저 풍기며, 안별의 심장을 저도 모르게 떨리게 만들었다.
“별이는 이걸 받지 않을...” 윤태성의 말이 끝나기 전에,
도주원은 아예 그 보석함을 안별의 품으로 밀어넣었다.
안별은 그것을 받아버렸다.
받아들인 것이다. 거절의 의사는 전혀 없었다.
윤태성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안별을 바라보았다.
안별은 그 순간 입을 열었다.
“도씨 도련님이 한사코 선물하겠다고 하시니, 도련님의 호의를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도주원은 분명히 웃고 있었다.
이 녀석이 웃으면, 단언컨대 모든 여자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시선을 돌려 윤태성을 향했다.
“남의 마음을 담은 물건을 억지로 뺏는 취미는 없어요. 이게 바로 진정한 양보 아닐까요?”
이 말은 방금 윤태성이 했던 허위적인 말을 비웃는 것이었다.
윤태성의 얼굴은 순식간에 시커멓게 변했다.
“가볼게요.” 도주원이 윤태성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그 순간, 안별은 그 말이 마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말없이 그는 유유히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늘 밤의 도주원은 다소 거만하긴 했지만, 분명히 멋있었다.
이 자식, 그동안 이렇게 여자들을 꼬시고 다녔던 건가?
“도주원이 저렇게 멋진 인간이었어?”
유미미가 옆에서 조금은 무심하게 말했다. 다만 그녀가 진심으로 느끼는 생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윤태성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덕분에 안별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윤태성은 항상 자신이 다른 가문의 도련님들과는 다르다고 자부해 왔고, 고상한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외부에서도 윤태성에 대한 평가는 높았다. 그는 A국에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인재라고 칭송받았다. 집안, 학벌, 능력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완벽한 인물로, 하늘의 편애를 받고 있다고들 했다.
안별은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러한 조건들은 단지 윤씨 집안이 윤태성을 위해 돈으로 사들인 것이라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그를 유리한 환경에서 성장하게 했고, 그의 앞길을 야심차게 닦아주었다. 윤태성은 그러한 모든 것을 진짜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고귀하다고 믿으며 자라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의 자존심이 무참히 짓밟혔으니,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일 수밖에 없었다.
유미미는 자신이 한 말이 상황에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눈썹을 찡긋거리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
“별별, 시간도 늦은 것 같으니까 나 먼저 갈게.”
안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
“알았어.”
유미미가 떠났다.
자선 파티도 막을 내리고, 모두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윤태성은 결국 마음속의 모든 불쾌함을 삼키고 안별을 데려다주었다.
*
차안에서.
안별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가끔 그 사파이어를 힐끗 바라보았다.
윤태성도 침묵을 지켰고, 그의 얼굴에선 분명히 화가 가득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내일 매체에서 어떻게 그 상황을 보도할지 상상해보며,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참지 못한 윤태성은 안별을 쳐다보며 말투를 단숨에 날카롭게 바꿨다.
“너, 어떻게 그 바람둥이 자식이 주는 물건을 받을 수 있어?”
‘그건 대놓고 나를 난처하게 만드는 거잖아.’ 그 말은 입에서 나올 뻔했지만, 끝내 입을 다물고 참았다.
“우리 엄마 곧 생신이셔. 이 사파이어를 예전부터 좋아하셨거든. 그래서 선물하고 싶었어.”
윤태성은 어쩔 줄 몰라했다. “아무리 그래도…”
“난 사실 그걸 내가 사려고 했었어.” 안별이 그의 말을 자르며 담담하게 이어갔다. “하지만 태성 씨는 그때 내가 낙찰하는 걸 말렸잖아.”
윤태성은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안별이 자신에게 돈을 내라고 할 거라 예상했던 것 같았다.
안별은 다시 한 번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내 파티에 올 때부터 아빠한테 말했어. 이 보석을 낙찰받아서 엄마에게 선물할 거라고. 서프라이즈를 주고 싶다고. 아빠도 동의하셨고, 나한테 예산 한도도 정해주지 않으셨어.”
윤태성은 민망함을 느끼며 잠시 말문을 닫았다.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나도... 네가 그 쓰레기 같은 자식한테 휘둘릴까 봐서 말린 거야.”
안별은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도주원이 정성 들여서 산 물건인데, 내가 받는 게 잘못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근데 그 쓰레기 같은 자식이 선물한 거잖아…”
“태성아, 예전엔 그런 상스러운 말은 입에도 담지 않았잖아? 왜 이렇게 변했어?”
안별이 순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 질문에 윤태성은 잠시 멈칫했다.
“너 오늘 밤 내내 도주원을 ‘바람둥이’, ‘쓰레기’라고 불렀잖아. 나, 이런 네가 너무 낯설어. 네가 이런 단어를 입에 담을 사람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안별은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윤태성은 당황해하며, 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건 오늘 밤 그 사람이 일부러 나를 겨냥해서 내가 화가 난 거야. 네가 싫어하면 앞으로 그런 말 안 할게.”
안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태성은 원래부터 속에 화가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안별의 몇 마디에 그 감정을 부득이하게 눌러야 했다.
안별은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너 위선자 노릇 좋아하잖아? 그럼 평생 그 가면을 벗지 못하게 해줄게.’
윤태성은 안별을 안씨 별장까지 데려다주었다.
안별이 차에서 내려서 집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갑자기.
“안별 아가씨!”
다시 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멎을 뻔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안별은 가로등 불빛 아래서 우아하게 벽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쪽은 이렇게 자주 깜짝 나타나는 게 취미예요?” 안별이 씩씩하게 말했다.
“보통 사람들은 바람을 이렇게 피운다던데?”
“누가 그쪽이랑 바람 피운대요!” 안별은 이 남자와만 있으면 그동안 지켜왔던 교양들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난 또 안별 아가씨가 나한테 결혼식에 와서 뺏으라고 하니까 내 이 몸뚱이가 욕심나서 그런 줄 알았죠.”
“......” 이번 생에 저 자식 때려죽이고 그냥 끝낼까?
“그게 아니라면, 내 카드 돌려달라고요!” 도주원이 화제를 돌려버렸다.
안별은 자기가 미칠 것 같았다.
심호흡을 하며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잠깐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도주원이 고개를 까딱였다.
안별은 집으로 돌아가 카드를 챙겨와서 도주원에게 돌려주었다.
카드를 받자마자 도주원은 떠나려고 했고,
안별은 그를 불러 세웠다.
“사파이어 값은 나중에 입금해 줄게요.”
“됐어요. 허세 부릴 만큼 다 부렸으니까요. 그깟 돈,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기요, 앞뒤 말이 안 맞는다고 생각 안 드세요?’
그깟 돈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왜 이 야심한 밤에 우리 집까지 찾아와서 카드를 내놓으라고 난리냐고요!
“잘 자요, 안별 씨.”
도주원은 요염한 새빨간 스포츠카에 올라타고는 쿨하게 떠났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꾸만... 자꾸만 도주원이 보여주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착각인가?!
아니,
도주원은 원래부터 알 수 없는 인간이었다.
이 시각, 그 알 수 없는 남자는 차를 운전하며 재미있는 듯 자기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카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면 영원히 대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이더니 블루투스를 연결했다.
“어, 준아.”
“소지훈이 귀국했대.”
“응.” 도주원이 짧게 응답했다. 알았다는 뜻이었다.
“너 오늘 밤 여자한테 선물한다고 50억 깨졌다며?”
진준은 참지 못하고 자신이 들은 가십을 흘렸다.
도주원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응, 나 연애해.”
“......” 진준은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이건 그가 들은 중에서 가장 웃긴 이야기였다.
절대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던 남자가 대뜸 잔뜩 설레는 말투로 "나 연애한다"는 말을 하다니.
그가 마치 연애라는 걸 전혀 몰랐던 사람처럼!
눈꼴시리게 웃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