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자선 파티 (2) 내 카드 돌려줘요
허윤지는 벙쪄 있었다. 속으로는 엄청 찔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늘 온순하던 안별이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을 내뱉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안별은 허윤지에게 체면을 남겨 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그들이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을 응시하다가, 시선을 천천히 올리며 말했다.
“혹은, 나보다도 허 비서님이 내 예비 신랑 옆에 서 있는 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 보네요?”
그제야 윤태성의 반응이 왔다. 그는 허윤지의 손을 급히 밀어내었다.
허윤지의 손이 허공으로 떨어지면서, 그녀는 더 얼굴이 화끈거렸다. 목소리마저 살짝 떨리며 억지 웃음을 지었다.
“그건, 안별 아가씨께서 이런 자리에 자주 참석하지 않으시다 보니 제가 윤 회장님의 파트너로 자주 사교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의도치 않게 오해를 불러일으킨 점, 정말 죄송합니다.”
“꼭 내가 이해심이 부족한 옹졸한 여자라는 뜻으로 들리네요.” 안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허윤지가 계속해서 해명하려고 할 때, 안별은 차분하게 말을 끊었다.
“내가 이 연회장에 들어서서 지금까지 5분 동안, 허 비서님은 제 예비 신랑의 팔짱을 끼고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어요. 난 또 허 비서님이 나에게 주권이라도 선포하는 줄 알았죠.”
안별의 말에, 허윤지의 얼굴은 핏기가 없어지고 새하얘졌다.
신분의 격차가 워낙 커서, 큰 소리로 반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녀는 그저 변명과 사과를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닙니다. 제가 주의가 부족했습니다. 다음번엔 꼭 더 신경 써서 행동하겠습니다.”
안별은 가볍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용서의 뜻도 없었다.
옆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유미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내가 알던 안별 맞아?
왜 이렇게 멋있는 거지!
유미미는 예전에 안별에게 귀띔해준 적이 있었다. 허윤지가 항상 윤태성 옆에 붙어 있으면서 딱 봐도 여우 같다고.
하지만 안별은 그때 자기는 윤태성을 믿는다고 했고, 유미미도 윤태성이 확실히 좋은 남자 같아서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허윤지가 거슬린 건 바로 안별 자신이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회장님의 비서가 된 뒤, 얼굴과 몸매가 괜찮다고 나대며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뒤에서는 그녀와 같은 상류 아가씨들을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대충 말하자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 외엔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이었다.
지금 이 순간, 안별이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허윤지를 꼬집는 모습이 유미미에게는 속 시원하고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별아.” 윤태성이 갑자기 입을 열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안별은 속으로부터 치솟는 구역질을 겨우 참았다.
“네가 오늘 올 줄은 몰랐어. 나 너무 기뻐.” 윤태성은 방금 전에 허윤지를 혼낸 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허윤지에 대해 좋은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왜 허윤지가 자기 팔짱을 끼고 있는 상황을 그냥 내버려뒀는지에 대해서도 해명하지 않았다.
윤태성은 언제나 자기에게 불리한 얘기는 쏙 빼고, 자신에게 유리한 말만 골라서 하는 재주가 있었다.
안별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허윤지를 혼낸 것만으로도 이미 윤태성의 체면을 깎은 셈이었다.
더 이상 바짝 조여 봐야 그녀가 앞으로 할 일에 불리하게 작용할 뿐이었다.
“우리 부모님께 인사하러 가자. 너가 온 걸 보시면 분명 나처럼 기뻐하실 거야."
윤태성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웃음은 언제나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다.
안별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미미에게 말을 건넨 후, 윤태성의 팔짱을 끼고 연회의 홀 안으로 걸어갔다.
신이 만들어주신 듯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선남선녀는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안별, 역시 소문대로 A국 제일 미녀야. 직접 보기 전에는 그냥 소문인 줄만 알았는데." 한 사람이 말했다.
“대중 앞에 잘 나타나지 않아서 나도 오늘 처음 얼굴 봐. 예쁘면 얼마나 예쁘겠냐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짧았던 거 같아." 다른 사람이 덧붙였다.
“예전엔 윤태성이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안별이 훨씬 더 빛나는 여자야." 또 다른 말이 이어졌다.
......
그들을 놓고 의논하는 목소리는 안별과 윤태성의 귀에도 들렸다.
예전에는 안별이 이런 자리에 거의 참석하지 않았고, 윤태성도 자신을 뽐내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한성의 사람들은 모두 윤태성이 훨씬 더 아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런 목소리를 듣자 윤태성은 기분이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늘 자기 자신을 가장 높은 위치에 두고 싶어 했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는 걸 참지 못했다. 특히 자신보다 잘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게 안별이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는 위장에 능한 사람이라, 남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했다.
두 사람은 함께 윤태성의 부모님 앞으로 갔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예전에 안별은 윤씨 집안 사람들이 진심으로 자신에게 잘해준다고 믿었다. 그들은 늘 걱정하는 말을 하며 살뜰히 챙겨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그들의 진짜 의도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그녀의 신임을 얻고, 결국 그녀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수작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감정과 기분을 신중히 숨기며 윤씨 집안 사람들과 어울렸다.
연회 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갔다. 윤씨 집안은 4대 가족의 일원으로, 이 자리에 아부하며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자 안별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떠난 사실을 윤태성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예전에는 그가 일에 집중하느라 밥도 챙겨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녀가 그를 등한시한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때마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를 위해 핑곗거리를 찾으며 자신을 속였었다... 바보처럼.
안별은 뒤돌아 정원 쪽으로 걸어갔다. 역시 너무 떠들썩한 곳은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
정원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온몸이 안정되는 기분을 느꼈다.
바로 그때.
“안별 아가씨.”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안별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애쉬 그레이 색상의 정장을 입고, 흰 셔츠에 실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깔끔한 재단과 미묘하게 어울리는 색 조합, 그리고 입체적이고 깊이 있는 오관이 더해져 단번에 사로잡힐 만한 매력적인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었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안별은 시선을 옮기며 조용히 물었다.
“왜 여기 있죠?”
도주원의 고운 입술이 양 끝으로 살짝 올라갔다.
“안별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가 나를 기다렸다고? 그가 어떻게 내가 정원으로 올 것이라고 알고 있었을까?
“저에게 볼일이라도 있나요?” 안별은 침착하게 물었다.
“내 카드 돌려줘요.” 도주원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안별의 안색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역시 그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는 여유 있게 답했다.
“여자한테 늘 손이 크다던데요?”
도주원이 사악하게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서 안별 아가씨가 나한테 상기시켜 주려는 거예요? 앞으로 그쪽이 내 여자라고?”
그 순간, 도주원의 매혹적인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고, 안별은 그로부터 강렬한 기운을 느꼈다. 위압감이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뭔가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안별은 재빨리 그를 피했다.
도주원의 얼굴엔 건들거리는 웃음이 걸렸다.
“색마.” 안별은 씩씩하게 말했다. “카드는 집에 있어요. 다음에 돌려줄게요!”
말을 마친 후, 그녀는 바로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이번 생에서 그녀의 목표는 확실했다. 자신에게 너무 느긋한 시간을 주는 건 싫었다. 그래서 사교하는 법도 배워야 했다.
그때 연회 홀에서 빠져나오는 윤태성이 보였다.
그제야 그녀가 곁에 없다는 걸 깨달은 듯, 윤태성이 찾으러 나온 것 같았다. 그녀를 발견한 그의 얼굴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어떤 일을 하던, 그녀는 항상 고분고분 자기 옆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순식간에 다른 사람이 된 듯, 우아하고 점잖은 모습으로 변했으며, 말투도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다.
“왜 혼자 나왔어? 갑자기 안 보이길래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윤태성이 다정하게 말했다.
“좀 답답해서 나와서 숨 좀 쉬고 있었어. 막 들어가려던 참이야.” 안별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는 나랑 같이 나오자.” 윤태성은 그녀를 끌어안으려는 듯,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안별은 온몸에 닭살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도주원의 시선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게 어떤 눈빛이었는지 말로 형용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히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시선이었다.
그들은 단지 합작 관계일 뿐인데.
윤태성도 그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점잖은 모습으로, 심지어 먼저 손을 내밀어 인사를 건넸다.
“도씨 셋째 도련님도 계셨네요? 오랜만입니다.”
도주원은 윤태성의 손을 한 번 쳐다보았지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는 차갑고 도도하게 그들을 지나치며 한마디를 던졌다.
“윤씨 큰 도련님의 예비신부가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우시네요. 긴장 좀 하셔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