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결혼식 얘기, 연기 시작
차 안에서, 안별은 여민정에게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할머니에게 맹목적으로 효도하지 말고, 큰 아버지네 가족들에게도 무작정 피하거나 참지 말아요. 그런 태도는 우리한테만 상처를 주는 거예요.”
여민정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너희 아빠도 가족 간의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으셔서 그래. 원래 안씨의 계승권은 장남에게 넘어가는 게 순리인데, 너희 할아버지가 모든 걸 너희 아빠에게 주신 거잖아. 그 덕에 큰 아버지네 가족이 불만을 품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
“그렇다고 큰 아버지네 가족이 우리를 밟고 올라서는 건 아니잖아요. 엄마, 사실 우리 집안 사람들이 하나씩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요. 가족의 기업은 반드시 장남이 물려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요. 차남이 물려받는 걸 장남에 대한 모독으로 여기는 게 너무 웃기지 않아요? 다시 생각해보세요. 왜 장남이 가업을 물려받지 못하고 차남이 계승했을까요?”
여민정은 잠시 말이 막혔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건 장남이 그만큼 능력이 부족해서예요. 가업을 이어가는 큰 책임을 지지 못할 만큼 무능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아빠를 선택한 거죠. 우리는 미안함을 느낄 필요 없어요. 오히려 당당해야 해요. 우리가 안씨 가업을 이어받았고, 그에 대해 큰 아버지네 가족은 고마워해야 마땅해요. 지금처럼 비아냥거리거나 괴롭히는 것은 옳지 않아요.”
여민정은 생각을 정리하며 딸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동안 그들은 가족 간의 갈등을 피하려고 자신들을 낮추어왔지만, 이제 그런 태도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별은 엄마가 결국 생각을 바꾼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엄마, 이제부터는 안씨 집안의 사람들을 상대할 때 당당해지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같은 죄 없는 사람들도 한순간에 범죄자로 몰릴 수 있어요.”
“맞아. 안씨 집안에서 참는다고 해서 평안이 오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어. 오히려 우리가 참을수록, 그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무기를 쥐어주는 셈이니까.”
“우리 엄마는 역시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에요!”
여민정은 딸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오늘 네가 한 모든 행동들이 결국 나를 위한 일이었지 않니?”
맞다.
하지만 오늘의 행동은 꼭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사실, 오늘 그녀의 모든 행동은 일부러 안효진을 자극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지금의 안별이 빛날수록, 안은서는 반드시 질투하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안은서는 자신이 안씨 집안의 큰 아가씨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늘 안별과 자신을 비교하며, 안별이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더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참지 못할 것이다.
일단 안은서가 질투를 시작하면, 이성적인 판단을 잃고 무리한 일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안은서는 행동력에 비해서는 똑똑하지 않다. 안효진처럼 교묘한 인물도 아니고, 그녀는 무턱대고 행동에 옮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효진은 그런 안은서를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물론, 안효진이 진심으로 안은서를 돕는 것이 아닐 거라는 건 분명하다. 그녀의 모든 행동은 안은서를 대체하려는 계산된 움직임일 뿐이다.
안별은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환생한 덕분에, 이제 그녀는 사람들의 추악하고 교활한 본성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추악함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고소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윤태성과 결혼하기 전에, 그가 가진 약점을 잡기는 어려운 일이다. 윤태성은 원래도 신중한 성격이라, 결혼 전에 함부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먼저 접근하고, 그를 유혹한다면...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윤태성은 분명 이를 반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그저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안별과 여민정이 안씨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안수철도 집에 도착해 있었다.
“이렇게 일찍 어디 다녀온 거야?”
“할머니 집에 갔었어요.” 안별이 대답했다.
안수철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변했다. 조금은 책망이 섞인 듯한 표정이었다.
“거기로 갈 거면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갔어?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어야지.”
그때,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안씨 저택에서 하이에나처럼 살아가는 그 가족들 속에서, 도망치듯 피하던 시간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삶을 살아야 했던 가족들이 참 가여웠다.
아무리 굽신거리고 어떻게든 맞춰주려고 애써도 돌아온 건 그 하이에나들이 윤씨와 연합해 자기 가족을 사지로 몰아넣은 일이었다.
여민정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앞으로는 여보는 일에만 집중해도 돼.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은 걱정하지 말고.”
안수철은 그 말의 진심을 알 수 없었다. 여민정은 예전처럼 안씨 저택에 갈 때마다 초긴장 상태였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며칠씩 우울해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건 그렇고, 여보는 왜 갑자기 돌아왔어? 무슨 일 있어?” 여민정은 급히 화제를 돌렸다.
많은 궁금증이 있었지만, 그 일이 떠오르자 안수철도 더 이상 묻지 않고 대답했다.
“윤가에서 우리에게 오늘 점심에 윤가네로 가서 식사를 하자고 하더라. 다음 달 별이랑 태성이 결혼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하면서 무심코 안별을 쳐다보았다.
안별은 웃으며 호탕하게 말했다.
“가야죠.”
“파혼하기로 결정한 거 아니었?” 안수철이 물었다.
“그건 나중의 일이에요. 지금은 윤씨네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맞춰주기만 하면 돼요. 최대한 맞춰서…”
연기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윤씨네를 더 철저하게 무너뜨릴 수 있다.
“그래, 그러자꾸나.” 안수철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딸에게 이번 결혼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게 맡긴 상태였고, 이제는 딸의 생각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하여 온 가족은 지체 없이 적당히 단정한 옷을 차려입고, 윤가네 별장으로 향했다.
별장 문앞에서.
윤씨 부부와 윤태성, 그리고 윤태성의 동생 윤태미는 친절하게 문 앞에서 그들을 맞았다.
예전에는 안별이 윤씨 가족이 그녀의 가족을 중히 여기고 있다는 생각에,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이 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차에서 내리는 순간, 안별은 구석에 숨은 파파라치를 발견했다.
고급 별장 구역은 평소라면 파리 한 마리도 함부로 날아들지 못할 곳이다.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그녀의 부모님처럼 그들의 친절한 태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행은 윤씨 별장으로 들어갔고, 마침 점심시간이라 모두 원형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았다.
산해진미로 가득 차려진 푸짐한 상은 성의가 넘쳐 흐르는 모습이었다.
“원래는 주말에 약속을 잡으려 했는데, 수철이가 출근을 해야 하고, 태성이도 출근 중이라서 날짜도 다가오고 급하게 오늘로 약속을 잡았어. 수철아, 괜찮지?” 윤판호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안별은 웃음을 참았다.
오늘 약속을 잡은 건 아마도 어제 여론의 영향을 받아 윤씨 주식 시장이 폭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 한 가족이 될 사람인데 괜찮지, 뭐. 괜찮아.” 안수철은 비즈니스 바닥에서 수십 년을 뒹군 사람이라 사교력만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나이가 되니까 업무는 다 밑에 사람들한테 맡겨서 내가 나설 일이 별로 없지.”
“앞으로 아버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겠습니다.” 윤태성은 바로 말을 이어가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태성이가 있어서 내가 한결 마음이 놓인다니까? 이제 너랑 별이가 결혼하면, 안씨 기업은 네가 많이 신경 써줘야 한다.”
안별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몰랐는데, 우리 아빠도 배우를 해도 될 정도로 자연스럽다.
“아버님, 걱정 마세요. 제가 열심히 하겠습니다.”
윤태성은 안수철의 말에 입가에 미소를 가득 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