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분노와 굴욕
구태우는 천진주를 향해 서늘한 시선으로 내뱉었다.
"잘 나가던 천아가씨가 이제 얼마나 비굴하고 천박한지, 용서를 빌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아랫사람과 키스까지 하다니. 천만석 그 노인네가 알면, 과연 면목이 있을까?" 그 말은 천진주의 친아버지인 천만석을 떠올리게 하며 그녀의 심장을 깊숙이 찔렀다.
천진주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고, 몸은 공포와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잠시 후, 그녀는 처참하게 하얀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다.
"천씨 집안엔 더 이상 천진주란 이름은 없어요. 난 이제 그저 죄수일 뿐입니다."
그토록 바라보던 잘생긴 얼굴, 한때 그녀의 꿈이었던 구태우가 이제는 오로지 두려움과 공포의 존재로 변해 있었다.
"태우 씨, 난 그저 죄수입니다. 제발 이번만큼은 저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놓아주세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청하며, 그의 눈을 마주하지 않으려 애썼다.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존심을 내려놓고 애걸했다. 그동안 쌓아왔던 자존심은 이곳에서 생존하는 데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구태우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의 안에 있는 감정은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 그가 한때 사랑하고 열정을 불태우던 천진주가, 지금은 이렇게 비굴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그에게 달려들던 그녀가 이젠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를 악물고 감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구태우의 마음속에선 분노가 계속 솟구쳤다. 그의 시선은 천진주의 입술에 고정되었다. 그 입술에는 오지훈과의 키스 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 흔적을 보자 그의 분노는 한층 더 커졌다.
갑자기 구태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그게 네 첫 키스였어?"
천진주는 당황한 듯 얼굴이 붉어졌지만, 말 한마디 없이 그저 고개만 숙였다.
분노가 가슴 깊숙이 치밀어오르며 구태우의 얼굴은 점점 더 냉혹해졌다. 그는 천진주의 팔을 거칠게 붙잡고, 그녀를 강제로 화장실 쪽으로 끌고 갔다.
"제발... 제발 저를 놓아주세요..."
천진주는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계속해서 자비를 구했지만, 구태우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다리와 발이 불편한 상태라 몇 번이고 넘어지고 비틀거렸지만, 그는 그녀의 고통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분노는 그녀의 애원을 들을 여유조차 없었다.
화장실에 도착한 구태우는 천진주를 세면대 앞으로 끌고 가 강하게 밀어 넣었다. 수도꼭지를 틀자, 콸콸 흐르는 차가운 물이 그녀의 얼굴로 쏟아졌다.
"콜록... 콜록..."
천진주는 숨이 막혀 기침을 터트렸지만, 구태우는 멈추지 않고 그녀의 머리를 물속에 눌러댔다.
그의 손은 계속해서 천진주의 입술을 거칠게 문질렀다. 오지훈과의 키스 자국을 지우려는 듯, 그의 분노는 그칠 줄 몰랐다. 그녀의 입술은 어느새 붉게 부어오르고 피가 날 듯 갈라지기 시작했다.
"잘못했어요... 태우 씨... 제발... 잘못했어요..."
천진주는 흐르는 물과 함께 흐느끼며 계속해서 자비를 구했다. 하지만 구태우는 끝까지 무언가를 말하지 않고 차갑게 그녀의 입술을 문질렀다. 그녀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입술이 부어오르고 상처투성이가 되었을 때, 그제야 그는 손을 멈췄다.
천진주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검은 대리석 세면대를 붙잡고 급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 위로 들리는 그의 차가운 목소리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말해봐, 방금 오지훈이 어떻게 너한테 키스했는지."
천진주는 충격에 고개를 들고 입술을 반쯤 벌린 채 그가 묻는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 질문이 단순한 모욕인지, 아니면 그녀를 시험하려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부끄러움과 당황으로 고개를 돌리고 침묵을 지켰다. 이것이 현재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저항이었을 것이다.
구태우는 그녀의 침묵을 가혹하게 받아들였다.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고, 그녀를 향한 모욕적인 조롱이 느껴졌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잡아 끌어 올리자, 천진주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는 구태우가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오면서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천진주의 눈이 점점 커지며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의 입술이 가까워지며 천진주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 순간, 구태우는 갑자기 입술을 비틀며 그녀의 귀에 가까이 대고 조롱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너 같은 여자가 내가 너에게 키스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천진주는 마치 얼음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얼굴에서 핏기가 빠지고, 차가운 공기가 그녀를 감쌌다. 구태우는 그녀의 혐오스러운 모습에 비웃으며 "넌 더럽잖아"라고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쿵! 천진주는 그 말 한마디에 마치 천둥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거의 바닥에 떨어지듯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구태우의 차가운 그림자가 머리 위로 드리우며, 그녀는 그가 악마처럼 보였다.
그녀는 다리를 꽉 움켜잡고 몸을 움츠리며, 눈앞의 악마를 화나게 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는 그저 살아남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고개를 가슴에 파묻은 채, 천진주는 남자의 매서운 시선을 피해 감정이 억제된 채로 있었다.
구태우는 그녀의 비참한 모습과 과거의 천진주를 연관 지을 수 없었다.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구태우는 무심하게 "빌어봐... 그럼 보내줄지도 몰라..."라고 말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여자를 응시하며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보였다.
천진주는 어깨가 살짝 떨리더니, 비참한 웃음을 터뜨렸다. 자존심?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926번이라는 범죄자의 신분으로, 더 이상 옛적의 천진주가 아니었다. 생존이 가장 중요했다.
무릎을 꿇은 천진주는 간절하게 "태우 씨, 제발 저를 그냥 내보내주세요"라고 간청했다. 목소리는 떨렸고, 그 비굴한 모습에 구태우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차갑게 굳어졌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이 여자가 이렇게까지 변했다고?’
구태우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반대편 거울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꺼져!" 그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차 울려 퍼졌다.
천진주는 마치 사면이라도 받은 듯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절뚝거리며 밖으로 도망쳤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구태우의 눈빛은 사나웠고, 칼날 같은 얼굴에는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빌어먹을 여자!" 구태우는 다시 한 번 주먹을 휘둘렀다. 천진주는 불편한 다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도망쳤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땡" 소리를 내며 열렸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그녀는 클럽으로 돌아가지 않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불편한 다리를 끌며 서둘러 건물 밖으로 나갔다.
"기사님, 남월동네로 가시죠."
평소 같았으면 택시비를 아끼려 했겠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며 급히 택시를 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침대 밑에서 싸구려 캐리어를 꺼내 몇 가지 짐을 재빨리 챙겼다. 당장 떠나야 했다. 구태우가 그녀를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어두운 밤 속에서 절뚝거리며 남월동네의 주택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는 천진주가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