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도망가다 잡혔다
천진주는 길 건너편의 ATM기로 다가갔다. 은행 카드를 넣고 예금 잔액을 확인한 후, 입술을 깨물며 40만 원을 인출했다. 돈을 손에 쥐고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며 승차했다. 하지만 도망칠 곳을 정하지 못한 그녀는 답답하기만 했다.
"어디로 갈 거예요?" 택시 기사가 다급하게 물었다.
천진주는 당황한 듯 머뭇거리며 생각했다. 갈 곳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도, 자신이 숨을 곳은 없다는 생각이 점점 그녀를 짓눌렀다.
"갈 거야, 말 거야? 안 갈 거면 내려!" 택시 기사는 짜증을 내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는 갑작스러운 손님의 등장에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다음 손님 기다리기 바쁜데, 정말 재수 없네!"
"죄송합니다... 아직 어디로 갈지 생각을 못 했어요." 천진주는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택시 기사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더욱 작아졌다.
그러나 착해 보이는 그녀를 본 택시 기사는 더욱 화가 나서 오늘 쌓인 불만을 모두 천진주에게 퍼부었다. "이봐, 그냥 장난하는 거야? 뭐 하는 거야? 네 부모가 널 이렇게 가르쳤어? 당장 내려! 에이 재수 없어. 오늘 이상한 년 만나가지고 재수 옴 붙었네”
천진주는 그 모든 모욕을 묵묵히 들었다. 감옥에서의 3년은 그녀를 더욱 순하게 만들었고, 세상의 험한 말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게 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다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곧 내릴게요."
천진주가 차 문을 열려고 하자 택시 기사는 갑자기 손을 뻗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아! 때리지 마세요!"라고 외쳤다.
택시 기사는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뭐? 미쳤어? 문 열어주려고 한 거잖아! 도대체 왜 이렇게 재수 없는 날이야, 미친 여자를 만나고..."
그는 문을 열어주며 "빨리 나가!"라고 소리쳤다.
천진주는 다리를 질질 끌며 천천히 택시에서 내렸다. 하지만 운전 기사는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는 듯 다시 욕설을 퍼부었다.
"야이 병신아, 빨리 좀 움직여!"
천진주는 조용히 고개를 들고,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단지 움직임이 느린 거지, 병신은 아닙니다."
그 말을 들은 택시 기사는 당황한 얼굴로 욕설을 퍼부었다.
"에이 씨발, 미친년, 정말 미쳤군! "
“정말 재수 없네... 오늘 똥 밟았나 에잉 쓰벌. 하루 종일 노름도 지고, 운이 계속 안 좋아..."
그는 자신의 화풀이를 계속하며 천진주의 손목을 잡고 뭔가를 요구했다. "돈 내놔."
"뭐요?" 천진주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차에 탔잖아, 세차비 줘야지. 넌 정말 재수 없는 여자야." 택시 기사는 더욱 거칠게 말했다.
"하지만 기사님, 목적지까지 가지도 않았잖아요."
천진주는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차에 탔으면 세차해야 할 거 아니야!" 그는 노려보며 2만 원을 요구했다.
천진주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할 수 없이 돈을 건넸다.
천진주는 갑자기 왼쪽 멀지 않은 곳에서 깜빡이는 자동차 불빛을 보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아우디 A6 네 대가 나란히 그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번호판의 마지막 숫자가 "1"에서 "4"로 순서대로 붙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선두 차량의 앞 유리창에 가로등 불빛이 번쩍였고, 천진주는 눈을 비비며 그중 한 차량의 운전석에 앉은 사람을 알아보았다. 구태우의 그림자처럼 항상 따라다니는 그의 부하였다.
그 순간, 천진주의 얼굴에 공포가 엄습했다.
"야! 돈 내놔! 왜 또 차에 앉아 있는 거야? 돈 안 내면 당장 내리라고 했잖아!"
택시기사는 화를 내며 그녀를 쏘아붙였다.
"기사님! 제발, 빨리 출발해주세요! 제가 돈 드릴게요!"
천진주는 급히 외투 주머니에서 지폐를 몇 장 꺼내 택시기사에게 내밀었다.
"빨리 가세요! 제발요!"
택시기사는 불만을 토해내려 했지만, 그녀가 내민 돈을 보고 말을 삼켰다. 천진주는 떨리는 손으로 지폐를 더 꺼내며, "이거 다 드릴 테니까 제발 빨리 출발해주세요! 더 필요하면 은행에 가서 인출해드릴게요. 제발요!"라고 애원했다. 그녀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고, 뒤쪽에서 다가오는 차들을 계속해서 의식하고 있었다.
운전기사는 그녀의 손에서 지폐를 받아들며 잠시 눈치를 보더니, 결국 돈에 이끌려 급히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천진주는 안도의 한숨을 쉬려 했지만 그 순간, 갑자기 밖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차 바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와 함께, 택시는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았다.
"씨발!" 택시기사는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쳤다.
"뭐야, 이 사람들이 널 쫓아오는 거야? 너 도망가는 거지? 뭘 훔쳤어?" 그는 갑작스럽게 소리치며 천진주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택시기사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던 것도 잠시, 그는 천진주의 절망 가득한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그저 공포에 질린 채 입술을 떨며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천진주는 무언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워했지만, 택시의 모든 창문을 급히 닫고 몸을 움츠리며 더 깊이 주저앉았다. 차라리 그들이 자신을 보지 못하게 숨고 싶었다.
"정말 멍청하긴..." 택시기사는 그녀를 비웃으며 핸들을 움켜쥐고 조롱하듯 한마디 던졌다.
그때 밖에서 택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 멈추자, 누군가 차창 너머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 아가씨, 내리시죠."
천진주는 그 목소리에 얼어붙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고, 마치 귀가 먹고 눈이 먼 사람처럼 더 깊이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