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쟤랑 키스해
"천진주 언니, 출소하면 뭐 하고 싶어요? 나는 청랑호에 가고 싶어요... 맑고 깨끗한 곳이잖아요. 물새도 예쁘고, 물고기와 새우도 맛있고... 하늘은 푸르고, 물은 맑고, 햇볕은 이 도시보다 더 따뜻할 거예요. 언젠가는 작은 민박집을 차리고 싶어요. 돈을 많이 벌려는 게 아니라 매일 청랑호를 바라보고 싶어서요. 그냥 밀물과 썰물을 맞이하면서 하루하루 조용히 살고 싶어요."
천진주는 그 소녀의 천사 같은 목소리를 평생 잊을 수 없었다. 차가워진 그 소녀의 몸을 자신의 체온으로 덥히며 마지막까지 안아주었다.
"언니, 사실 저는 청랑호에 한 번도 가본 적 없어요. 그저 TV나 잡지에서 본 것뿐이죠... 출소해도 민박집을 차릴 돈은 없겠지만, 죽기 전에 그 꿈을 한번 말해 보고 싶었어요..."
소녀의 눈빛은 마지막까지 간절했다. 그 간절함이 담긴 눈빛을 천진주는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그 눈빛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파져 눈가가 촉촉해졌다. 천진주는 몰래 눈물을 닦아내며 손을 뻗어 허리 왼쪽을 만졌다. 그곳은 비어 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정상인보다 장기가 하나 적었다.
그래서 그녀는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그녀는 큰 빚을 졌고, 그 빚은 갚을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죄를 지었지만 아직 용서받지 못했다.
안 돼! 아직 죽을 수 없어!
천진주는 고개를 들고 구태우를 향해 절박하게 말했다.
"태우 씨, 제발 술만 마시지 않게 해주세요. 뭐든지 시키시는 대로 할게요."
구태우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뭐든지?"
그의 말에는 위험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그는 눈앞에 선 천진주가 과연 예전의 자존심 가득한 천 아가씨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술만 안 마시면 돼요. 뭐든 괜찮아요."
구태우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 소리에 어두운 구석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검은 정장을 입은 작은 키의 남자, 구태우의 보디가드였다. 그는 정중하게 고개를 45도로 숙이며 말했다.
"태우 도련님."
천진주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남자를 바라봤다. 구태우의 얼굴에는 여전히 냉랭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고, 그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쟤랑 키스해."
천진주의 눈은 구태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그 끝에 있는 사람은 보디가드였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뭐? 못해?"
구태우는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둘 중 하나야. 술을 마시든지, 아니면 여기서 쇼를 시작하든지."
그 말이 끝나자 천진주의 온몸은 얼음물에 빠진 듯 차가워졌다. 귀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녀의 시선은 둔탁하게 소파에 앉아 있는 구태우를 향했다.
뭐라고...? 쇼? 마치 그녀를 기생집 여자처럼 취급하는 모욕이었다.
천진주는 천천히 마른 입술을 오므렸다.낯선 남자와 공공장소에서 키스를 하라는 요구였다. 그녀는 천천히 그를 바라봤다. 눈빛은 차갑지도, 분노로 타오르지도 않았다. 오직 절망만이 깊게 깔려 있을 뿐이었다.
구태우는 그 절망을 쾌감처럼 즐겼다. 그녀는 그를 거절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술을 마시거나 낯선 남자와 키스를 하는 것 중, 여자가 선택할 건 당연히 술일 것이다. 게다가 천진주는 한때 당당했던 그 천 아가씨였으니까.
그러나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바꿀 수 있을까요?"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첫 키스가 그녀에게는 너무 소중했다. 이미 모든 것을 잃은 그녀였지만, 이마저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애원하듯 고개를 들었지만, 구태우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흥정할 자격은 없어."
천진주는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며 힘겹게 일어섰다.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탓에 다리 전체에 저릿한 통증이 퍼졌고, 그 고통은 점차 심장으로까지 번져왔다. 잠시 주저앉을 뻔한 순간, 그녀는 이를 악물고 손을 들어 허벅지를 세게 두드렸다. 다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반복적으로 손바닥을 내려치며, 고통을 억누르려 애썼다.
겨우 통증을 진정시킨 뒤, 천진주는 절뚝거리며 검은 옷을 입은 보디가드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그녀의 걸음에는 간신히 버티고 있는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천진주가 허벅지를 두드리며 절뚝거리는 모습을 본 룸 안의 남자들은 단순히 그녀가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있어 다리가 저린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저 무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전예린은 달랐다. 그녀는 천진주가 단순한 저림 이상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천진주의 절뚝거리는 걸음은 고통 속에서도 침묵을 지키며 애써 버티고 있는 모습이었다.
전예린은 자신의 실수로 인해 천진주까지 이런 상황에 휘말리게 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죄책감이 그녀의 가슴을 짓눌렀고, 그 눈빛 속에는 깊은 후회가 가득했다.
"진주 언니…" 전예린이 겨우 입을 열었지만, 옆에서 서민준이 냉소적인 눈빛으로 쏘아보자 다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천진주는 침착한 척 팔을 들어 보디가드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나 그 가까운 거리에서 보디가드는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느꼈다. 이 여자가 한때 당당한 천 아가씨였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천진주는 한숨을 내쉬며 떨리는 입술로 그에게 다가갔다. 첫 키스가 고깃덩이처럼 소모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술을 마셨다가는 그녀의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었다.
구태우는 소파에 누운 채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결국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 순간, 룸 문 쪽에서 큰 목소리가 울렸다.
"야, 너 뭐하냐? 아직 안 나가고 뭐 하고 있어?"
그 목소리가 울리자 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문간에는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천진주는 몸을 떨며 그 남자를 바라봤다.
"그쪽..."
서민준은 그를 보며 능글맞게 웃었다.
"오지훈? 야, 너 청소부 아줌마랑 아는 사이야?" 서민준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청소부 아줌마가 오지훈과 아는 사이라니? 진짜야?"
구태우의 시선 역시 오지훈에게로 향했다. 그의 눈 밑에는 미묘한 어둠이 깔렸다.
오지훈은 주변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천진주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 여자는 대체 뭐 하는 여자지? 이 상황에 어떻게 구태우의 보디가드에게 키스하려고 하는 거지?’
"잠깐 자리를 비웠더니 룸이 시끌벅적하네." 오지훈은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그는 천진주를 향해 느릿하게 다가가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진주 씨?"
천진주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질문은 마치 구원처럼 느껴졌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