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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출소

3년 후

S시 여자 교도소의 철문이 천천히 열렸다. 한 여자가 조용히 그 문을 지나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녀는 몹시 마른 체구였고, 3년 전 수감될 당시 입었던 하얀 원피스를 여전히 입고 있었다. 그 원피스는 이제 그녀에게 너무 커져, 마치 커다란 천 조각을 몸에 걸친 듯했다.

그녀는 백 미터쯤 떨어진 역을 향해 한 걸음씩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고, 그 안에는 5,300원과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

무더운 여름, 태양은 그녀의 머리 위에서 맹렬히 내리쬐었다. 자갈길을 걸으며 보도 위에서 열기가 가득 쌓여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그 뜨거운 햇볕 아래를 걸었다.

창백한 피부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얼굴과 이마에는 약 3센티미터 정도의 흉터가 나 있었다. 그 흉터는 마치 그녀가 지나온 고통스러운 시간을 대변하듯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그녀는 조심스럽게 검은 비닐봉지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어 동전함에 넣었다. 버스 안은 거의 비어 있었고, 운전사는 그녀를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그녀가 전 여자 수감자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세상은 언제나 냉혹했다.

그녀는 운전사의 시선을 느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차 뒷좌석으로 걸어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버스가 출발하자, 그녀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천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3년이었다. 세상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도 완전히 변해 있었다.

버스는 붐비는 번화한 시내로 접어들었고, 천진주는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출소한 그녀,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문득 그녀는 자신이 돌아갈 곳이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를 열어보며, 그녀는 안에 있던 5,300원을 세심하게 세 번이나 세었다. 그 적은 돈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갈 곳도, 의지할 사람도 없는 상황에서 막막함이 그녀를 휩쓸었다.

길가에 붙은 구인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기사님, 여기서 내릴게요. 문 좀 열어주세요.”

감옥에서 보낸 3년 동안 천진주에게 남아 있던 오만함은 이미 사라졌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마다 기가 죽은 모습이 되었다.

운전기사는 짜증 섞인 얼굴로 문을 열었고, 천진주는 작게 고마움을 표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그녀는 구인 공고 게시판 앞에 멈춰섰다. 반나절 동안 게시판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길은 '청소부'라는 단어에 멈췄다. 이어 '한 끼 식사와 숙소 제공'이라는 문구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집도, 직장도, 학력도 없던 그녀에게 청소부 자리조차도 거절당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5,300원을 손에 쥔 채 그녀는 이를 악물고 "로열팔라디움"이라는 나이트클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에어컨 바람이 온몸을 얼게 만들어 그녀는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

“이름이 뭐지?”

책상 뒤에 앉아 있던 여자는 짜증난 표정으로 물었다.

“천진주.”

그녀의 거친 목소리가 사무실 안에 울리자, 그 말을 듣고 정보를 기록하려던 여직원은 깜짝 놀랐다. 펜이 손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그녀는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목소리가 왜 이렇게 굵어?”

3년간의 감옥 생활은 천진주의 성격을 무디게 만들었고, 이미 사람들의 비난에도 무덤덤해진 그녀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연기 때문에요.”

그 말에 여직원은 천진주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며 놀란 눈빛으로 되물었다.

“화재가 있었던 거야?”

“네, 화재가 났었어요.”

천진주는 힘없이 눈을 감았다. 사실 그것은 누군가가 고의로 저지른 방화였다.

여직원은 더 이상 묻지 않겠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건 안되겠네… 우리 로열은 그냥 유흥 클럽이 아니고, 여길 찾는 손님들도 다 귀한 분들이야.”

그녀는 천진주를 아래위로 흘끗 쳐다봤다. 혐오의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자루 같은 옷, 낡아서 하얀색이 누렇게 변한 치마. 로열팔라디움은 평범한 직원조차도 외모가 뛰어나야 하는 곳이었고, 이곳의 청소부 역시 보통 사람들은 아니었다.

여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진주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 같은 애는 안돼. 웨이터로도 안될 거야!”

그러고는 천진주를 무시한 채 뒤돌아서 나가려 했다. 그때 천진주가 힘차게 외쳤다.

“저는 청소부로 지원했습니다!”

그 거친 목소리에 여직원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돌아서서 천진주를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청소부 일을 하겠다고 자처하는 20대는 처음이네.”

그녀는 천진주의 앙상한 몸과 흉터 난 얼굴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이곳에서 일하는 청소부들 중 가장 젊은 사람도 40대였고, 20대라면 대부분 모델처럼 생긴 직원들이거나 웨이트리스였다.

하지만 천진주는 이 모든 비웃음과 경멸을 이겨내기로 결심했다.

“저를 받아주세요. 돈만 벌 수 있다면 고생은 상관없어요.”

천진주는 거친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제 자신을 돌아봤어요. 몸을 팔 자본은 없지만, 노동력을 팔 수는 있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할 겁니다.”

감옥에서 그녀는 '926호'라는 번호로만 불리는 수감자일 뿐이었다. 그런 생활을 마치고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온 그녀에게 쓸데없는 자존심은 무의미했다. 천진주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여자는 천진주를 다시 한번 위아래로 훑어보며 놀란 표정으로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천진주라고? 그 진주, 바닷속 보석처럼 귀한 진주라는 뜻 맞지?”

“네, 맞아요.”

“그렇군.” 여자는 다시 천진주를 살피며 말했다.

“부모님이 너를 애지중지해 이름까지 보배처럼 지었겠지…”

천진주는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애지중지였을까?

만약 자신이 그 ‘악독한 마음’으로 하지아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천씨 가문이 파멸에 이르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자신도 애지중지 받았을지 모른다.

“저는 가족이 없어요.”

천진주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여자는 잠시 침묵한 채 천진주를 응시하다가, 더 이상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았어. 주민등록증 복사해 와.”

하이힐을 신고 문으로 걸어가던 여자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천진주를 향해 돌아섰다.

“천진주, 내가 왜 너를 받아준 줄 알아?”

천진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니가 한 말이 맞았어. 팔 수 있으면 팔고, 팔 수 없으면 다른 일을 해서라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여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나이 먹고도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고, 바라는 건 많지만 능력은 없지. 그런데 넌 달라. 스스로를 제대로 보고, 네가 뭘 할 수 있는지 잘 파악하고 있어.”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없이 천진주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천진주, 우리 로열은 그저 그런 클럽이 아니야.”

천진주는 여전히 침착했다.

“알고 있어요. 제 목소리가 굵고 거칠어서… 가능한 한 말하지 않겠습니다.”

입을 함부로 열지 않으면 실수도 덜 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여자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로열 같은 곳에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신입으로 받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규칙을 깨고 청소부로 그녀를 받아들였다. 여자의 지위는 낮지 않았지만, 이 혼란스러운 대도시에서 그 누구도 그녀를 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 로열에 들어온 이상, 규칙을 배워야 했다. 무엇을 말해야 하고, 무엇을 행동해야 하는지 철저히 파악해야 했다.

천진주가 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저기요… 사장님… 지금 갈 곳이 없어요.”

여자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나를 ‘하나 언니’라고 부르면 돼.”

그리고는 전화를 꺼내 들었다.

“강 비서, 여기로 와. 방금 청소부 신입 한 명 뽑았으니까 직원 숙소로 안내해 줘.”

전화를 끊은 뒤, 천진주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출근해.”

천진주는 손에 쥐어진 출입증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오늘 밤은 길거리에서 노숙하지 않아도 되었다.

천진주가 로열에서 일한 지 석 달이 지났다.

저녁 무렵, 대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천진주는 방금 술에 취해 구토한 한 여자가 남긴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손은 느리지만 꼼꼼한 움직임으로 구석구석을 치웠다. 그리고 향을 피워 구석에 놓았다.

밀걸레를 손에 들고 각 구역의 위생을 청소하다가 마지막으로 청소도구 보관실에 머물렀다. 그곳은 그녀가 잠시 쉬는 공간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를 붙잡았던 웨이터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천진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걸레와 물통을 정리한 후, 구석에 앉아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천진주, 이 모든 게 구태우의 뜻이야.

넌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자랑스러웠던 가문도, 아름다운 미모도, 뛰어난 학벌도. 넌 이제 그저 범죄자일 뿐이야.

그녀의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그냥 얌전하게 순종해. 반항하지 말고. 태우님이 널 고이 모셔야 한다고 했으니까.’

그 목소리들은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그녀를 지배했다.

’감옥에서 네 신장 두 개가 무슨 소용이야? 하나라도 떼어내서 사람을 살려. 그게 네가 저지른 죄를 속죄하는 길이야.’

천진주는 그 목소리들이 점점 커지는 걸 느끼며 온몸이 떨렸다. 마치 일그러진 얼굴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떨쳐낼 수 없었다.

“천진주, 빨리 나와! 6층 VIP 룸 606번으로 가야 해!”

칸막이 문을 열며 웨이터가 짜증스럽게 천진주를 불렀다.

“좀 빨리 움직여! 느릿느릿하면 안 돼. 이곳에서 제일 잘나가는 모델들도 너처럼 거만하진 않아.”

그의 말은 재촉과 동시에 모욕이었다.

천진주는 원래 말이 적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누군가가 그녀를 고의로 괴롭혀도, 반박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웨이터들은 종종 천진주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

“룸 청소는 룸 공주 담당 아닌가요?”

천진주는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웨이터의 귀에는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표정이 싸늘하게 변한 웨이터는 비꼬듯 말했다.

“손님이 토했는데, 그걸 루나 언니한테 시키겠다고? 너 진짜 제정신이야?”

루나는 그런 더러운 일을 하지 않았지만, 천진주는 그런 일을 맡아야 했다. 웨이터는 천진주가 상처받을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역시나 천진주는 반응하지 않았고, 그저 어리숙한 표정으로 “네…”라고 말할 뿐이었다. 옆에 있던 웨이터는 그녀를 비웃으며 속으로 무시했다.

천진주는 눈을 내리깔고 웨이터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웨이터는 갑자기 천진주를 밀어냈다. 의아해하며 쳐다보는 천진주를 향해 웨이터는 혐오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뭐? 6층밖에 안 되잖아. 계단으로 가. 그리 높지도 않잖아.”

그리고는 “살 좀 빼라”는 말과 함께 경멸의 눈빛을 던졌다.

사실 천진주는 뚱뚱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마른 체형이었다. 다만 매일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고 출근했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우둔하고 둔해 보이는 사람으로 착각했다. 웨이터는 일부러 천진주를 비난한 것이었지만, 천진주는 예상대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웨이터는 그녀가 대꾸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더 대담하게 굴었다.

결국 천진주는 순순히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웨이터는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찼다.

“정말 무용지물이군.”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 계단실은 천진주의 발자국 소리만 울릴 정도로 조용했다. 이곳은 비상 탈출 계단으로, 평소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곳이었다. 빛은 흐릿하고 음산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천진주는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갔고, 5층에 다다랐을 때는 조금 지친 듯 멈춰 섰다. 잠시 숨을 고르며 쉬려는 순간, 어디선가 천천히 들리는 여자의 숨소리가 들렸다.

천진주의 심장이 덜컹거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코너 너머에서 한 남자가 여자를 계단에 밀착시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키스를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은 선정적이면서도 모호했다.

천진주가 볼 수 있었던 것은 그 여자의 뒷모습과 남자의 반쪽 얼굴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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