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상관없어
강지석의 눈에 감도는 감정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그는 분명 이마리의 약혼자였지만, 자신이 이나리를 감싸는 것이 전혀 잘못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마리는 도도하고 언제나 강한 여자였다.
누구의 도움 따위 필요 없는 사람.
하지만 이나리는 달랐다.그녀는 늘 연약했고, 그 연약함은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앞으로 이마리와 결혼한 이후에도, 강지석은 여전히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이고, 이나리를 계속 편애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마리는 그런 그의 모습을 그저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이마리가 결국은 또 타협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나리에게 느끼는 건 연민이자 책임감이었고, 그 감정 또한 일종의 사랑이라고 여겼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복잡하다. 그가 이나리에게 끌렸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나리는 그의 마음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점점, 그의 말은 선을 넘기 시작했다.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비난이 담겨 있었다.
"네가 집을 나간 이후로, 나리는 매일 눈물로 매일을 지세우고 있어. 너 혼자 밖에 있고, 돈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는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너는?
나리가 폐렴으로 고열에 시달렸을 때, 단 한 번이라도 그녀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본 적 있어?
이마리, 너 진짜 너무하다."
"나리는 정말 착한 애야. 이번 일에서 잘못한 사람이 너라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널 걱정해. 네가 가출한 것까지 본인이 사과하겠대. 그렇지 않으면 평생 마음에 걸릴 거라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약속했어. 내가 너한테 부탁해서 꼭 용서를 받게 해주겠다고.
그 덕에 나리가 겨우 약을 먹고 병을 치료하기로 마음먹은 거야.
하지만 넌? 내가 그저, ‘미안하다’ 한마디만 해달라고 했을 뿐인데, 그것조차 못 하겠다는 거야?"
이마리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눈가에 더욱 짙은 냉기를 띠며 입을 열었다.
"이나리가 착하다고? 내가 집을 나갔기 때문에 이나리가 자기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고?"
"이나리에게 정말 그런 마음이 있기나 했을까?"
그녀는 이미 모든 걸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던 건지 사람을 더 깊이 상처 입히려 했다. 심지어 거짓으로 용서를 구하면서, 내가 입으로 축복의 말을 해야만 날 놓아주겠다고 했다.
이나리... 너 정말 악랄하구나.
강지석은 이 말을 듣고,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 표정엔 실망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마리, 넌 정말 구제불능이야."
"그래, 나 구제불능 맞아."
이런 말, 이마리는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마음은 이미 무뎌져 있었고, 지금은 그저 잔잔한 우물처럼 아무런 파동도 없었다.
강지석은 그녀가 여전히 이런 말에 상처받거나, 격한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했던 걸까?
하지만 한 번 상관없어진 마음은, 결국 모든 게 상관없게 된다.
이마리의 화려하면서도 차가운 얼굴엔 굽히지 않는 기품이 서려 있었다.
"그러니 강 사장님께서 시간 되실 때, 제 사직서 꼭 승인해 주세요. 절차를 최대한 빨리 진행하고 싶습니다."
말을 마친 이마리는 돌아서서 문을 열고 사무실을 나섰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전혀 흔들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강지석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 전신에서 느껴지는 냉정함과 단호함, 정말 아무것도 개의치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렇게 철저하게 무시당한 건 처음이었다.
그 순간, 강지석은 분노에 휩싸여 책상 위의 물건들을 모두 바닥으로 쓸어버렸다.
넥타이를 헝클어지듯 당기며, 분노가 극에 달한 눈빛이었다.
"지석아."
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엉망이 된 사무실을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럴 필요가 있니?"
그는 손건민, 강지석의 오랜 친구이자 이마리와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손건민은 조심스럽게 충고했다.
"너, 속으로는 분명히 이마리를 좋아하면서… 왜 말은 그렇게 거칠게 해? 마음과는 반대로 행동해서, 결국 스스로 그녀를 밀어내고 있잖아. 언젠가 진짜로 그녀가 떠나면… 그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강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외면했다. 그의 표정엔 음침한 기색까지 더해져 있었다.
"이 일에 넌 끼어들지 마."
손건민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냥 네가 나중에 후회할까 봐… 그래서 그래."
그러자 강지석은 낮은 목소리로, 무겁게 말했다.
"이마리는 나리에게 잘못했어. 그 일은 반드시 갚아야 해."
그 말을 들은 손건민은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잘못했다’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강지석은 언젠가 분명 후회할 것이라고 직감했다.
손건민은 조용히 한마디 덧붙였다.
"지석아, 잘 생각해 봐."
***
"대박 사건! 폭탄급 뉴스! 이마리가 방금 회사에 다녀갔는데, 사장님한테 사과하러 온 게 아니라, 사표 내러 왔대!"
사장실을 나온 이마리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지나는 직원들이 그녀를 보며 연달아 인사했고, 그들의 시선엔 묘한 긴장감과 호기심이 서려 있었다.
이마리는 인사를 받으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더 이상 이 회사에 남지 않겠지만, 그녀와 함께 밤낮없이 일했던 이들이니 예의를 다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구석에서는 몇몇 여직원들이 모여 속삭이고 있었다.
"이 부장님, 많이 변한 것 같지 않아?"
"맞아, 오늘 립스틱도 바르셨더라. 벽돌색인데, 소화하기 어려운 색이었는데 꽤 잘 어울리셨어."
"조금만 꾸며도 이렇게 예쁠 줄이야. 분위기도 너무 멋진데..."
"이나리는 청순한 첫사랑 같은 얼굴이라면, 이 부장님은 좀 달라. 완전 화려한 호랑이상 배우상이랄까? 이목구비가 약간 고전 미인처럼 입체적인 느낌이야."
"흥, 이마리가 어떻게 이나리랑 비교가 돼?"
"야, 너무 심하게 말하는 거 아냐?"
"그러니까, 이나리가 너한테 뭐 좋은 일이라도 해줬냐? 왜 여기서 누구를 높이고 누구를 깎고 그래?"
"이 부장님은 벌써 사장님한테 사직서 냈어. 이제 진짜 자기 길을 걷기로 한 거지!"
"나도 들었어. 오늘 아침에 사장님이 사무실에서 엄청 화냈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리가 사직했다는 소식은 회사 전체에 퍼졌다.
그 무렵—
여직원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던 그 가십은 마침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던 이나리와 이윤태 남매의 귀에도 고스란히 들어갔다.
이마리가 강지석에게 사표를 냈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무엇보다도, 이윤태가 이 말을 가장 믿기 어려워했다.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이마리가 이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강지석을 보고 반한 건 분명했다.
그 후로 그녀는 늘 그에게 말을 걸었고 그의 주변을 맴돌며 따랐다.
어리고 순수했던 소녀의 설렘, 그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감정이었다.
강지석은 잘생겼고, 특히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물론 그의 차갑고 거만한 성격은 처음엔 이마리에게도 무심했지만.
무엇보다 그는 이마리가 강지석과 함께 있기 위해, 그 시절 무보수로 일하며 그의 창업을 도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마리는 정말 많은 일을 해왔다.
그 모든 건 오직 강지석을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여직원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이마리가 사표를 냈다고?
장난 아니야? 설마 또, 강지석에게 화가 나서 그런 건가?
이나리의 연약한 얼굴에는 충격과 함께 묘한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오빠, 언니가… 정말 저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지석 오빠한테 사직서를 낸 걸까?"
이윤태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이나리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고, 그 눈매 아래로 살짝 악의적인 기색이 스쳤다.
입술을 살짝 깨문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언니가 아직도 나한테 화가 난 걸까?"
이윤태는 가볍게 그녀를 다독였다.
"나리야, 그건 네 잘못 아니야. 너까지 자책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심정이었다.
그 역시 이마리가 왜 사람들과 그렇게 불편하게 지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성격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 아니었으면 왜 늘 나리와 사이가 안 좋았겠는가.
그녀의 유일한 장점이라면 결국엔 항상 먼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왔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이나리는 다시금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
"언니가 집을 나간 지도 꽤 지났는데… 언제쯤 돌아올까?"
이윤태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마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그는 지난번 이마리에게 보냈던 협박 문자에 아직까지 아무런 답이 없다는 것이 은근히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계속해서 불안한 기분이 그를 따라다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