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이마리는 이씨 집안의 영원한 골칫덩이였다. 부모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오빠들은 대놓고 미워했으며, 소꿉친구였던 약혼자 강지석마저 그녀를 가차 없이 버렸다. 모든 게 무너진 뒤, 이마리는 마음을 닫고 가족과의 인연을 끊었다. 그리고선 망설임도 없이 맞선 자리에서 만난 남자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결혼을 해버렸다. 사람들은 "이마리가 결국 가난뱅이한테 시집갔대"라며 비웃었다. "잘됐다. 얼마나 비참해질지 두고 보자고." 모두가 그녀의 추락을 구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 못 했다. 그 '가난한 남자'가 알고 보니, 금수저도 울고 갈 정도로 고귀한 집안의 진짜 도련님이었다는 걸. "부인, 이제 불을 꺼야 할 시간이야." 남편 고연우는 겉으론 차갑고 금욕적인 남자인 척했지만, 밤만 되면 그녀에게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뒤늦게야 오빠들도 무릎 꿇고 후회했다. "미안해… 마리야 용서해줘…" 가슴이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빌었지만, 이마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나 이마리를 다시 붙잡아보겠다고? 어림없는 소리!
제1화 나는 당신이 필요없어
"이마리는 시골에서 자라서 이런 격식 있는 자리에 어울리지도 않아!"
"만약 병에 걸린 사람이 이나리가 아니라 이마리였다면?
상류 사회에 남은 쪽이 이마리였다면, 과연 그녀도 여동생처럼 눈부시게 빛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이마리를 곁눈질했다.
그 시선엔 안쓰러움도 있었고, 어디서부터인지 모를 반감도 섞여 있었다.
거실 한쪽에서 그 말을 들은 이마리는, 창백한 얼굴로 말없이 돌아서 계단을 올랐다.
속으로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늘 그랬듯이.
이마리는 시골에서 병을 앓으며 10년 넘게 치료만 받다, 16살이 되어서야 이씨 집안으로 돌아왔다.
뒤늦게 돌아온 집은 낯설고, 가족이라는 이름은 그저 껍데기 같았다.
그래도 노력했다. 부모님께 잘 보이려 했고, 오빠에게 인정받고 싶어 온갖 방법을 썼다.
하지만 돌아온 건 냉담한 벽뿐.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지만, 그녀의 진심은 단 한 번도 그들의 마음에 스며들지 못했다.
이씨 가문의 사람들은 그녀가 어디 하나 이나리만 못하다고 여겼다.
외모도, 태도도, 말투도, 존재감마저도.
이나리. 그녀의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
어릴 적부터 무용을 배우며, 누구보다 눈부신 재능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 사랑 속에서, 그녀는 특별히 길러졌고,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지금 이나리는 은화성에서 가장 높은 신분을 가진 남성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인생이었다.
한 시간 전, 이나리가 갑자기 물에 빠졌다.
가정의는 이나리가 폐렴 증세를 보이며, 체온이 40도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당시 수영장에는 이나리와 그녀, 단 두 사람뿐이었다.
게다가 평소 이나리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그녀가 이나리를 밀었다고 생각했고, 그녀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못했다.
결백을 증명할 CCTV 영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격분한 어머니에게 뺨을 한 대 맞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그들은 그녀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야. 맨날 똑같은 수법으로 집안 분위기를 망쳐놓고!"
"왜 또 난리야? 줄 수 있는 건 이미 다 줬잖아!"
짜증 섞인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자, 그녀는 더 이상 말할 힘도 잃었다.
그제야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이마리는 방 안에서 30분 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조용히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 문 밖에서 급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강지석의 차갑고 격앙된 목소리가 울렸다.
"이마리! 당장 나와!"
하지만 이마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더 바삐 움직이며 짐 싸는 속도만 빨라졌다.
강지석은 그녀가 자신을 무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듯했다.
방금 하인에게 물어보니, 분명 이마리는 그녀의 방으로 돌아간 게 맞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마리는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먼저 문을 열어줬을 것이다.
그 생각에 강지석의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무거워졌다.
그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강지석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마리, 너 정말 나리를 물에 빠뜨린 거야? 지금 밖에선 모두 네 해명을 기다리고 있어. 내가 네 말을 믿는다 해도, 네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해도, 나리한테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나리가 물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너도 알잖아."
이마리는 마침내 짐을 다 챙겼다.
그녀는 자신이 예전에 가져온 물건들만 남겼고, 이씨 가문에서 받은 것은 단 한 푼도 챙기지 않았다.
강지석이 당장이라도 문을 부술 듯 문고리를 잡자, 문이 조용히 열렸다.
"이마리, 또 무슨 짓이야?"
그는 그녀가 여행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눈빛이 얼어붙었다.
차가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우리 곧 결혼할 사람이잖아. 이런 타이밍에 또 가출극 벌이면 내가 널 붙잡기라도 할 줄 알아? 결혼하기 싫으면, 네 맘대로 해."
마지막 말은 협박이었다.
그는 이마리가 끝내 자신과 헤어지지 못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마리는 말없이 여행 가방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바퀴가 지나가며 그의 발등을 살짝 스쳤지만,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고 몸을 감싸는 냉기가 그의 뼛속까지 파고들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눈 없어? 내가 여행 가방 들고 이 집안 떠나려는 거 안 보여? 이 결혼, 하고 싶으면 해. 네가 이나리랑 결혼하고 싶겠지."
강지석은 짧은 냉소를 흘리며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우리 둘 문제에 나리를 끌어들이지 마. 그리고 나도 알아. 네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란 거. 그냥 나리가 물에 빠져서 감정이 예민해졌을 뿐이야.
나리한테 사과하고, 사람들 앞에서 머리 숙이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그는 이마리가 이나리를 질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이 은근한 우쭐함으로 이어졌다.
"꺼져."
이마리의 눈 밑에 서린 냉기가 날카롭게 번졌다.
"강지석, 잘 들어. 네가 누구를 믿든, 그건 네 마음이야. 하지만 오늘부터 난 너랑 아무 상관 없어. 넌 더 이상 내 약혼자가 아니야."
그 말만 남기고, 이마리는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다.
"야!"
강지석은 이마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방금 그녀가 한 말은 단순한 감정 섞인 화풀이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는 분명 그를 깊이 사랑했다.
"가! 가게 둬!"
그때, 이마리의 어머니인 소여진 여사가 달려와 그 장면을 목격하더니, 분노에 치밀어 가슴을 부여잡고는 저주처럼 쏘아부었다.
"신경 쓰지 마, 지석아. 쟤가 밖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두고 봐, 얼마 안 가 다시 돌아와선 집에 있게 해달라고 빌게 될 거야.
정말 속 썩이는 애야. 왜 나리처럼은 못하는 건지, 왜 저렇게 못 배웠을까!"
강지석은 그 말을 듣고 결국 그녀를 뒤쫓지 않았다.
그래, 이마리는 자신을 사랑하니까 이나리를 질투하는 거다.
분명 머지않아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마리는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이씨 가문에서 보낸 지난 10년 동안, 그녀는 그들 사이에서 가장 문제 많은 존재로 낙인찍혀 있었다.
몇 차례 사고가 있은 뒤, 이씨 가문은 이마리가 사랑을 얻기 위해 여동생을 괴롭히고, 모함하며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확신처럼 믿었다.
이나리로 인해 그녀는 부모님과 오빠에게 수없이 오해받고 조롱당했으며, 강지석 역시 변함없이 냉정했다.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의 마음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번에는, 그녀가 먼저 그들을 버렸다.
그리고 한 달 후, 이마리는 다시 은화성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마음을 굳혔다. 더 이상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로.
그녀는 결심했다. 빨리 결혼할 상대를 찾아야 했다.
소개는 믿을 만한 중매를 오래 해온 분이 해준 거라, 이마리는 어느 정도 신뢰가 갔다.
이마리는 할머니에게 간단히 인사만 남기고 맞선을 보러 나갔다.
"오늘 나랑 혼인신고 하자는 말, 진심입니까?"
카페에서 마주 앉은 남자의 눈빛은 깊고 단단했다.
"응, 진심이에요."
처음 만난 맞선 자리, 이마리의 마음은 약간 긴장되어 있었다.
고연우가 그녀에게 물었다.
"우리 처음 보는데, 왜 이렇게 급하게 혼인신고부터 하려고 하죠?"
"우리가 맞선을 본 건 결국 결혼을 전제로 만난 거잖아요. 제 조건은 중매해주시는 분이 이미 다 말했을 거예요.
저는 작은 회사에 다니고, 차도 집도 없어요. 시골에 할머니 한 분 계시고요. 당신도 은화성 출신은 아니고, 올해 막 이곳에서 일 시작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종합적으로 보면, 우리 조건은 꽤 잘 맞는 편이죠."
이마리는 숨 한 번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비록 한 번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전 그쪽에 대한 첫인상이 꽤 좋아요.
만약 그쪽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지금 바로 혼인신고하러 가죠.
이건 어쩌면 인연이 순리처럼 흐르는 거라고도 볼 수 있겠죠."
지금 눈 앞에 앉아 있는 남자, 고연우는 이마리가 맞선에서 만난 첫 번째 남자가 아니었다.
그동안 만났던 몇몇은 지나치게 인색하거나, 그녀를 이용하려 들었고, 심지어 어머니를 모시고 월급을 몽땅 내놓을 ‘무료 가정부’ 같은 존재를 찾는 사람도 있었다.
그에 비해 고연우는 겉으로는 차갑고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였지만, 직접 대화를 나눠보니 인품이 꽤 단단하고 괜찮았다.
이마리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잠시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고연우는 아무 대답 없이 조용히 있었다.
그 침묵 속에서, 이마리는 뭔가를 어렴풋이 느낀 듯 고개를 숙였다.
"고 선생님, 첫 만남에 결혼 얘기를 꺼내서 당황스러우셨을 수도 있겠네요. 불쾌하셨다면 죄송해요."
맞선 자리에서 첫 만남에 혼인신고를 제안하다니, 아무리 급한 상황이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이마리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모든 걸 내려놓고 던지는 심정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