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한국어
챕터
설정

제3화 내 곁에 있어줘

호화로운 유럽풍 침대 위, 하윤아의 피부 곳곳에는 붉고 푸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으윽...”

몸을 살짝 움직이는 순간, 마치 온몸이 부서진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기억이 한순간에 밀려들었고, 하윤아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실크 이불이 미끄러지듯 아래로 흘렀고, 그녀의 드러난 피부 위로 선명한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 꿈이 아니었어!

하지만 그 낯선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하윤아는 힘겹게 몸을 이끌며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차갑게 몸을 적셨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어젯밤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윤아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비록 하씨 집안의 장녀였지만, 어머니는 그녀가 어렸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어머니를 맞이했고, 새어머니는 남매 한 쌍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때는 자신은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부터 외도를 했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하윤아는 아버지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은 마음 깊숙이 그들을 증오하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들에게 해를 가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제는 그녀의 열여덟 번째 생일이었다.

성년식을 치른 후, 그녀는 관례에 따라 회사 지분의 20%를 받을 예정이었다.

아마도 그것이 두려웠던 새어머니가 그녀를 함정에 빠뜨려 명예를 짓밟고, 주식을 빼앗으려 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남민희와 성정수의 배신은 그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하윤아는 손바닥에 깊게 파인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순간 그녀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세상이 나를 배신했다면, 앞으로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거야!

오늘 나를 짓밟은 사람들,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오늘 내가 받은 고통을, 반드시 그대로 되갚아줄 거야!

방 안에는 이미 그녀를 위한 깨끗한 옷이 준비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속옷의 사이즈까지 정확히 딱 맞아떨어졌다.

이 남자, 내 정보를 대체 얼마나 알고 있는 거야?

하지만 하윤아는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말렸다. 그러다 우연히 거울을 마주하는 순간, 손이 멈췄다.

팔과 목에 선명하게 남은 흔적들을 보며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이 남자, 대체 개야 뭐야? 왜 이렇게 몸에 흔적을 남기고 그래!

방 안은 너무 낯설었다.

어젯밤 이후의 기억은 흐릿했고, 그 남자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왔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문을 열고 나서자, 곧바로 한 메이드가 공손히 그녀를 맞이했다.

“아가씨, 배고프시죠?”

하윤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거대한 저택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씨 가문의 저택과 비슷한 크기지만, 인테리어는 훨씬 현대적이고 고급스러웠다.

최근에 지어진 저택인 듯했다.

“아가씨,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내려오셔서 드시죠.”

“태블릿 하나 빌려줄 수 있을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가씨.”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이드는 태블릿을 가져와 하윤아에게 건넸다.

하윤아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급히 뉴스 사이트를 열었다.

만약 어젯밤의 처참한 모습이 기사로 떠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러나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화면에 뜬 것은 전혀 다른 장면이었다.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 속, 흐트러진 눈빛을 한 하예린이 여러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헤드라인에는 ‘재벌가 아가씨의 충격 스캔들! 방탕한 생활, 한계를 넘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남자는 단 하루 만에 상황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하윤아는 천천히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메이드가 다가와 휴대폰을 내밀었다.

“아가씨, 대표님 전화입니다.”

하윤아는 그녀는 아직도 그의 정체를 모른 채,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쉰 목소리 때문에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뉴스 봤어?”

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하윤아는 어젯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건 보통 대가가 아니야!

“내 곁에 남아 있어. 네가 빼앗긴 모든 걸 되찾아줄 테니.”

남자의 말은 마치 그녀의 내면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하윤아는 잠시 망설였다가, 결연한 눈빛으로 답했다.

“좋아요. 하지만 먼저 집에 다녀와야겠어요.”

“그래.”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기쁨이 묻어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하윤아는 하씨 저택으로 보내졌다.

밖은 이미 어둠에 잠겨 있었고, 그녀는 하루 종일 잠들어 있었음을 깨달았다.

차 안에서 하윤아는 결정을 내렸다.

그 남자는 확실히 그녀를 도와줬다. 하지만, 그는 그만큼의 대가도 가져갔다.

내 곁에 있으라니... 그게 무슨 뜻이야? 설마 애인의 신분으로 곁에 있으라는 거야?

하윤아는 피식하고 냉소를 지었다.

이 복수는 내가 직접 할 거야.

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새어머니는 이미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했고, 자기가 일부러 거리를 두었던 탓에 아버지는 더욱 자신을 외면했다.

자신을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새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었다.

하씨 집안의 모든 실권은 이미 새어머니의 손에 넘어간 지 오래였다.

이 싸움에서 자기가 이길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리고,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상대는 더 강력한 방식으로 자신을 짓밟으려 할 것이다.

아직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하윤아는 서재에서 아버지를 찾았다.

하점동은 이 딸에게 항상 무관심했다. 더군다나 하예린의 스캔들로 인해 그의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져 있었다.

하윤아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아버지, 저 해외로 유학을 가고 싶어요.”

그것이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 그녀는 성장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점동은 별다른 말 없이 동의했다. 그녀를 붙잡지도 않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 집에 하윤아가 더 머무르는 것은 모두에게 불편함만 남길 뿐이라는 것을.

하윤아는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서둘러 떠났다.

탑승 전에 그녀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성정수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들이 끝없이 쌓여 있었다.

그것을 본 하윤아는 그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유심칩을 뽑아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녀는 곧바로 탑승 게이트를 향해 걸어갔다.

다만 문득 뒤를 돌아봤을 때, 한 남자가 숨을 헐떡이며 그녀를 향해 뛰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면서,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Bye.”

그리고 단호하게 떠났다.

지금 앱을 다운로드하여 보상 수령하세요.
QR코드를 스캔하여 Hinovel 앱을 다운로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