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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가슴이 터질 듯 분노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죽으면 악귀가 되어 원수를 찾아간다고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내 몸에는 보이지 않는 막이 씌워진 듯했다.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밤마다, 숨이 막히는 심정으로 그려낸 그림들이 그녀의 이름 아래 걸려 있었다.

아무 노력도 없이, 그녀는 모든 찬사를 독차지했다.

그 그림들은 원래 누군가의 칭찬을 받기 위해 그려진 게 아니었다.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해 그린 것이었다.

지난 2년, 소정은 때문에 나는 극심한 우울에 시달렸다.

상담도 받았는데 의사는 이미 중증 우울증이라고 했다.

약은 증상을 눌러줄 뿐, 낫게 하지는 못한다고.

원인을 떠나거나,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원인은 소정은과 노영찬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집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스스로를 더 깊은 어둠으로 밀어 넣었다.

소씨 집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종종 지하 화실에 숨어 그림을 그렸다.

상처를 받고, 또 그리며 스스로를 봉합했다.

그런데 이제, 그마저도 빼앗겼다.

전시장 한쪽에서 누군가 외쳤다.

"여기 사인이 있어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설마 천재 화가 S가… 소정은 씨였어요?"

"그래서 1년에 한 점밖에 안 내놨구나. 돈이 필요 없는 재벌가 딸이니까."

"난 소혜나가 S인 줄 알았는데. 완전 사기였네."

"그 언니라는 사람, 어릴 때 동생 물에 빠뜨렸다면서? 인성부터 글렀지."

"그러니까 약혼자가 도망친 거겠지. 본색을 본 거야."

결혼식 날 도망쳤다는 기사는 며칠 전까지도 포털 1면이었다.

처음엔 나를 동정하는 목소리도 많았고, 노영찬을 비난하는 댓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흐름이 바뀌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불쌍한 신부'에서 '당해도 싼 여자'가 되어 있었다.

소정은은 내 그림으로 천재 화가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녀를 찬양했다.

나는 분노했다.

미칠 것 같았다.

막을 뚫고 나가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혀 힘없이 미끄러질 뿐이었다.

중학교 때였다.

나는 'S'라는 이름으로 디자인 공모전에 참가했고 단번에 주목받았다.

그때 나는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들이 내가 그림에 빠져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할까 봐, 시상식에도 나가지 못했다.

몰래 만든 SNS 계정에는 팔로워가 늘어갔고 매년 한 점씩 작품을 올렸다.

그 비밀은 노영찬조차 몰랐다.

그러다 2년 전, 계정을 잘못 선택해 신작을 내 본계정으로 올려버렸다.

하룻밤 사이에 실시간 트렌드 1위를 찍었다.

나는 명성에 관심이 없었기에 해명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갑론을박하다가 금세 잊었다.

그런데 지금, 소정은이 내가 공개하지 않았던 작품들까지 꺼내 전시했다.

나는 습관처럼 사인을 그림 속에 숨겨두었다.

오래된 팬들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들은 작품의 주인이 소정은이라고 믿었다.

2년 전 계정 사고가 다시 끌려 나왔다.

소정은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러분, 싸우지 마세요. 소혜나는 제 언니예요. 아마 제 그림이 좋아서 올렸던 것뿐일 거예요. 다른 의도는 없었을 거예요."

누군가 소리쳤다.

"너무 착하시다. 그때 글 스타일도 똑같았잖아요. S 이름 자기가 도용하려던 거 아니에요?"

"맞아요. 착하면 당한다니까요. 소정은 씨, 조심하세요. 그 언니라는 사람은 정말 뻔뻔해요."

"이렇게 선한 사람을 속이려 하다니."

소정은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언니랑 사이가 좋아요. 그런 말씀은 이제 그만해 주세요. 오늘 작품을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후 경매가 시작되는데, 수익금 전액은 재해 지역에 기부할 예정이에요. 많이 응원해 주세요."

그녀는 '천재 소녀 화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무대 뒤로 사라졌다.

뒤에는 찬사만 남았다.

"정말 얼굴도 마음도 예쁘다."

"저렇게 완벽한 사람이 왜 그런 언니를 둔 거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곧바로 사진과 영상을 온라인에 올렸다.

순식간에 여론은 나를 향해 쏟아졌다.

이 세상엔 재능 있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나처럼 아무 계산 없이 돕는 화가는 드물었다.

중학생이던 해, 나는 처음으로 '금펜문학상'을 받았다.

상장과 트로피, 그리고 상금 천만 원.

보통 가정이라면 큰돈이었겠지만, 나는 별 감흥이 없었다.

곧바로 익명으로 전액을 재해 지역에 기부했다.

뜻밖에도 그 일이 언론에 보도되었고, 많은 아이들이 도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그림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 후 매년 작품 한 점을 경매에 내놓고, 수익금을 기부했다.

그렇게 팬이 늘었고, 그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힘은 전부 소정은을 위해 쓰이고 있었다.

나를 깎아내리는 말이 많아질수록, 그녀를 치켜세우는 말은 더 커졌다.

노영찬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S가 나라는 걸 몰라도, 그는 내가 그리는 화풍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은아, 이 그림들… 정말 네가 그린 거야?"

소정은의 눈가에 금세 눈물이 맺혔다.

"오빠, 내가 아니면 누가 그려? 예전에도 나 잘 그린다고 칭찬했잖아."

"그냥… 예전이랑 느낌이 좀 달라서."

"사람이 어떻게 한 가지 스타일만 그려? 난 여러 가지 화풍으로 시도해. 오빠가 천천히 알아가면 되지."

말을 하며 그녀의 손가락이 노영찬의 가슴을 타고 아래로 미끄러졌다.

요즘 그녀는 점점 대담해지고 있었다.

노영찬은 주변 시선을 의식한 듯 그녀의 손을 거칠게 떼어냈다.

"경매 시작한다. 가자."

나는 그를 따라 경매장 안으로 끌려갔다.

오늘은 재벌가 인사들도 적지 않게 참석했다.

온라인 기사 때문에 일부러 찾아온 동종 업계 사람들과 팬들도 많았다.

경매장은 인파로 가득했다.

노영찬이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걸어가던 순간, 누군가와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연기에 그을린 듯 거칠고 쉰 음성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고개를 드는 순간, 핏발 선 음산한 눈이 내 시야를 찔렀다.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충격이 일었다.

그였다.

나를 죽인 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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