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결혼식 당일, 내 남편은 예식장 한복판에서 나를 버리고 떠나 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온 도시의 웃음거리가 됐다. 살인마의 습격을 받아 간신히 구조 요청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내가 죽어야 더는 자기 여동생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없어진다면서 나더러 빨리 죽으라고 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나는 도시를 뒤덮은 불꽃놀이를 보았다. 본래는 우리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터뜨린 폭죽이었지만, 결국 다른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도구가 되어 있었다. 그는 나라는 이 걸림돌만 사라지면, 그가 마침내 여동생과 당당하게 함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뼈로 만든 염주를 그가 밤낮으로 쥐고 만지작거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눈을 다시 떴을 때,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노씨 그룹 총수와 결혼해 있었다. 노영찬은 내 발치에 무릎을 꿇고, 눈을 붉힌 채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받쳐 들었다. "작은어머니, 차 드십시오."
제1화
나는 신혼 첫날 밤에 죽었다.
의식이 희미해지기 직전,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는 소란스러웠고, 곧 한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혜나, 이제 그만 좀 해. 성대한 결혼식까지 해줬잖아. 난 그저 정은이 좀 챙겨준 것뿐인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피가 빠르게 흘러나가고 있었다. 살인범은 내 등 뒤에 서서, 숨이 끊어져가는 나를 벌레 보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곧 죽는다는 걸,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못했다. 마지막 기대 하나에 매달려 입을 열었다.
강물에 젖은 새하얀 웨딩드레스, 흙이 잔뜩 묻은 치맛자락. 처참한 몰골로 남은 힘을 짜내 속삭였다.
"노영찬…… 나 좀 살려줘……"
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그만해. 그런 유치한 연기, 이제 질렸어."
"거짓말 아니야. 나, 누군가한테 당했어……"
"하."
차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소혜나, 전에 아픈 척하더니 이번엔 또 뭐야?"
"그렇게 애정이 고파? 정은이는 네 친동생이야. 넌 이미 내 아내잖아. 설마 정은이를 죽여야 속이 시원하겠어?"
살을 에는 바람보다 그의 비웃음이 더 아팠다. 몸 아래로 번져가는 피가 웨딩드레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제 정말 끝이라는 걸 알았다.
작별 인사는 끝내 삼켰다. 하늘을 올려다본 채 몸의 힘을 놓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멀쩡히 살아 있는 건 소정은이고…… 나는, 이제 곧 죽어."
"그럼 빨리 죽어. 죽으면 더는 정은이 화나게 할 일도 없잖아."
전화가 끊기기 직전, 달콤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불꽃놀이 곧 시작해."
노영찬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귀에는 거센 바람 소리만 맴돌았다. 피에 젖은 휴대폰이 손에서 미끄러져 물가에 떨어졌다.
튀어 오른 물방울이 눈에 들어와 뜨겁게 번졌다. 눈물은 천천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휘날리는 눈발 속, 칠흑 같은 하늘에 별빛이 피어올랐다. 수많은 드론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은하처럼 반짝였다. 이어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불꽃이 터져 올랐다.
이 장대한 불꽃놀이는, 우리 결혼을 축하하려고 반 년이나 준비했다던 바로 그 축제였다.
결국엔 다른 여자를 기쁘게 하려는 도구가 되었을 뿐이었다.
누군가 사진을 보내왔다. 눈부신 불꽃 아래, 내 남편의 품에는 다른 여자가 기대어 있었다. 늘 나를 향해 무표정하던 그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들의 행복 속에서 나는 영영 눈을 감고 말았다.
사람은 죽으면 지옥을 돌고 돈다고 했다.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노영찬만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다시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건 화려한 별빛 아래 입을 맞추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내 남편 노영찬과, 내 친여동생 소정은.
"노영찬, 이러면 안 돼!"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었지만, 손가락은 그대로 그들의 몸을 통과했다.
고개를 내려다보니, 거의 투명해진 내 몸이 보였다. 그리고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이미 죽었고, 영혼만 이곳에 남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눈앞에서 서로를 탐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알았다.
죽어도 마음은 아플 수 있다는 걸.
그와 함께 자라온 건 나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는 소정은과는 남매일 뿐이라며,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 맹세했었다.
또 하나의 불꽃이 하늘을 가르며 터졌다. 그 굉음에 노영찬이 번쩍 정신을 차린 듯 소정은을 밀어냈다.
"정은아, 우린 이러면 안 돼."
소정은의 얼굴엔 아직 붉은 기가 남아 있었다. 불꽃에 비친 작은 얼굴이 유난히도 고왔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
"오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나도 모르게…… 감정이 앞섰어."
노영찬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됐어. 너 탓 아니야. 나 전화 좀 할게."
그가 휴대폰을 꺼내 내 번호를 눌렀다.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이십여 년의 인연이 끝내 아무 가치도 없는 순간이었다.
나를 떠올리는 순간조차, 소정은과 다정한 시간을 보낸 뒤에야 비로소 죽은 나에게 전화를 거는 것이 전부라니.
뚜— 뚜— 뚜—
세 번이 지나도록 그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노영찬을 위해 나는 늘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가 나를 찾으면 세 번이 넘기 전에 반드시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노영찬, 나는 이미 죽었어. 죽은 사람이 어떻게 전화를 받을 수 있겠어.
그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정은아, 소혜나가 보낸 위치로 한번 가볼게."
그래, 이제야 나를 떠올린 건가.
나는 죽기 직전, 강가 위치를 그에게 보냈다.
지금이라도 온다면 내 시신은 거둘 수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오래전부터 나를 노렸던 그 살인자가 내 시체에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작은 손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소정은이 애처로운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오빠, 나 좀 더 같이 있어주면 안 돼?"
그의 눈에 잠시 망설임이 스쳤다.
"그래도 혜나는……"
소정은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언니는 원래 연기 좋아하잖아. 예전에 병원에서 수술한다고 거짓말했을 때 기억 안 나? 오빠가 수백억 계약 다 미루고 달려왔는데, 멀쩡하게 돌아다녔잖아. 누가 따라온다고 난리 치던 것도 결국 아무 일 없었고."
"어릴 때부터 가족들한테 떠받들려 자랐잖아. 언니는 원래 그런 장난 좋아해. 소씨 집안 장녀인데 누가 감히 해코지하겠어?"
그 말에 그의 망설임은 사라졌다.
그는 피곤한 듯 미간을 문질렀다.
"에휴... 혜나가 네 반만이라도 철들었으면 좋겠다."
소정은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예전엔 그가 말했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만 철들어야 하는 거야. 우리 혜나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살아."
결국 그는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대신 소정은을 데리고 우리의 신혼집으로 향했다.
나는 문 앞을 가로막았다.
지나가지 못하게 막고 싶었지만, 개미가 코끼리를 막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소정은은 웃으며 그대로 내 몸을 통과해 들어갔다.
살아 있어도, 죽어도, 나는 끝내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소정은이 욕실에서 나왔고, 내가 신혼 첫날 밤을 위해 준비해둔 잠옷을 입은 채였다.
얇은 실크 아래 드러난 몸선에 그의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눈빛도 짙어졌다.
그와 그렇게 오래 함께했는데, 그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둘 사이에 번지는 공기가 숨 막히게 달아올랐다.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치밀어 올랐다.
"정은아, 그거 소혜나 옷이야." 그가 낮게 말했다.
"알아." 소정은이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오빠, 사실 언니 안 좋아하는 거지? 좋아하는 사람은 나잖아. 그렇지?"
"소정은, 그만해."
그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소정은의 눈에서 눈물이 굵게 떨어졌다.
버려진 사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지나면 오빠는 내 형부잖아. 욕심 안 부릴게. 오늘 밤만, 딱 오늘 밤만 안 될까? 나 오빠의 여자가 되고 싶어."
"다 들어줄 수 있어도 그건 안 돼."
그가 그녀를 밀어내자 소정은이 발을 구르며 외쳤다.
"그럼 나 다른 남자한테 갈 거야. 문 앞 경비든, 청소부든, 다리 밑 노숙자든 상관없어!"
"그만해!"
"어차피 오빠도 나 안 원하잖아. 이 소원 하나도 안 들어줄 거면 난……"
그의 손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말을 막듯 입술이 겹쳐졌다.
나는 옆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쳤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십 년 넘게 사랑한 남자.
그는 우리의 신혼집에서, 내 동생과 하룻밤을 보냈다.
그 밤, 그는 오래 눌러왔던 감정을 모조리 쏟아냈다.
아침 햇살이 소정은의 몸 위로 쏟아졌다.
붉은 자국이 남은 피부를 감추듯 그녀가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정신을 차린 듯 표정이 굳었다.
"정은아, 어젯밤 우리는……"
나는 비웃었다.
할 건 다 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후회인가.
더러운 놈.
소정은이 조용히 말했다.
"걱정 마. 언니한테 절대 말 안 할게. 이제 오빠는 내 형부니까. 난 유학 갈 거야. 다시는 오빠 앞에 안 나타날게."
그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누가 떠나래? 너는……"
말을 잇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낮고 엄숙한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노영찬 씨 맞습니까. 오늘 아침 연강에서 고급 웨딩드레스 한 벌이 인양됐습니다. 확인 결과, 어제 부인 소혜나 씨가 착용한 드레스로 확인됐습니다. 경찰서로 나와 조사에 협조해 주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