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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노성현이 떠난 뒤, 노영찬은 싸늘한 강바람을 맞으며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화면이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메시지는 계속 들어왔지만, 내가 보낸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아마 그는 예전 일을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이미 그가 소정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가끔 화를 내기도 했지만 화를 낸 뒤엔 늘 스스로를 탓했다.

소정은은 그의 의붓여동생이었고, 동생을 조금 더 챙기는 게 뭐가 잘못이겠냐고.

나는 나 자신을 속이는 법을 배웠다.

이 정도 일로 두 집안 사이를 흔들어선 안 된다고, 괜히 예민하게 굴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은 뒤엔 늘 내가 먼저 화해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 이후, 벌써 스물네 시간이 지났다.

그 하루 동안, 나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퐁당."

노영찬이 돌을 집어 강물에 던졌다.

"계속 버텨 봐. 이번엔 며칠이나 갈지 보자."

나는 그의 곁에서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 가장 심하게 다퉜을 때도, 내가 집을 비운 건 사흘을 넘기지 않았다.

그는 내 성격을 다 안다고 믿었다.

결국 내가 먼저 돌아올 거라고 확신했다.

나는 그 분노가 어린 얼굴을 바라보았다.

열다섯 살, 수학여행 날 폭우로 산에 고립됐을 때가 떠올랐다.

산사태 위험을 무릅쓰고 되돌아와 나를 찾아낸 사람이 그였다.

나는 울면서 그의 품에 안겨 왜 그렇게 무모하냐고, 혹시라도 다치면 어쩌냐고 물었다.

진흙투성이가 된 채로도 그는 웃었다.

내가 혼자 무서울까 봐, 울까 봐, 상처받을까 봐, 날개라도 달고 날아오고 싶었다고.

그때 나는 사랑을 몰랐다.

그저 그 품이 따뜻하다고만 느꼈고, 그가 평생 나를 지켜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가 먼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미안함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떼를 쓰는 것처럼 여겼다.

마음이 떠난 사람에겐 숨 쉬는 것조차 잘못이 된다.

대부분의 고통은 떠나지 못한 대가였다.

운명적인 불행이란 없다. 놓지 못한 집착만 있을 뿐이다.

그때 내가 미련 없이 돌아섰다면, 오늘의 결말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죽은 지 나흘째 되던 날, 노영찬은 비로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카카오톡 대화창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건 그의 음성 메시지였다.

내 휴대폰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대표님, 커피 드세요."

비서가 조심스레 건넸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휴대폰을 들여다본 채 30분이나 멍하니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흘.

아무리 삐졌어도 이 정도면 돌아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코트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섰다.

"대표님, 곧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미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차를 몰고 시내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강민주의 학교였다.

"강 선생님, 손님 오셨어요."

강민주는 내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다.

부모의 강요로 전공을 포기하고 사범대에 진학해, 지금은 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노영찬에게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여긴 왜 왔어?"

노영찬이 다짜고짜 물었다.

"혜나 여기 있지? 그만 좀 하라고 전해. 더 버티면 서로 체면만 구겨."

강민주가 매섭게 쏘아붙였다.

"뭐? 결혼식장에서 나몰라라 하고 버리고 간 게 누군데? 혜나보고 뭘 더 하라는 거야? 그 많은 하객들한테 사과하러 다닌 게 누구인데, 지금 누가 더 창피한 건지 모르겠어?"

그 말은 정확히 심장을 찔렀다.

노영찬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설명할 필요는 없어. 당장 전화해서 집으로 돌아오라고 해."

강민주는 그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혜나… 집에 안 들어갔어?"

"무슨 소리야. 넌 걔 제일 친한 친구잖아. 우리 싸우면 늘 네가 피난처였잖아."

그의 말대로였다.

강민주는 내 유일한 도피처였다.

그래서 그는, 이 며칠 동안 내가 강민주와 함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강민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나 할머니 위독해서 결혼식 끝나자마자 시골 내려갔다가 오늘 복귀했어. 혜나가 왜? 또 네가 상처 준 거 아니야?"

노영찬은 강민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핏발 선 눈, 짙은 다크서클, 트고 갈라진 입술. 며칠 밤을 새운 사람의 얼굴이었다.

거짓말을 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 며칠 동안, 나는 정말 어디에도 없었다.

노영찬은 말없이 돌아섰다.

강민주의 목소리가 뒤에서 터져 나왔다.

"노영찬! 혜나한테 무슨 일 생기면 내가 너 가만 안 둬!"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려 했지만 손은 그대로 그녀의 얼굴을 통과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민주야, 미안해. 약속 못 지켰어. 넌 꼭 행복해야 해."

내 손은 더 이상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내 목소리도, 이제는 닿지 않았다.

몸이 다시 끌려가듯 노영찬을 따라 움직였다.

그는 전화를 받으며 차를 몰았다. 다시 멈춰 섰을 때,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

내 이름을 부르려던 순간이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사라진 지 나흘째. 그제야 내 행방을 알아보려는 걸까.

아마 내 시신은 이미 썩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차 문이 벌컥 열렸다.

"오빠!"

소정은이 달려들듯 안겼다.

"요 며칠 왜 나 피했어?"

입술을 삐죽이며 억울한 표정을 짓자 노영찬은 급히 비서와의 통화를 끊었다.

그들의 관계가 드러나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미간에 피로가 짙게 드리워졌다.

소정은을 감당할 기운조차 없어 보였다.

"정은아, 나 곧 회의야. 급한 일 아니면 회사로 가야 해."

"오늘 내 전시회 오픈이야. 오빠 안 오면 나 서운해."

그는 그제야 떠올린 듯 멈칫했다.

며칠간 일에 파묻혀 지내느라, 내 실종도, 소정은이 1년 넘게 준비해온 전시회도 잊고 있었다.

"내가 실수했네. 가자."

나는 버려진 휴대폰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십수 년의 세월이 이렇게 가벼웠던가.

소정은의 전시회는 해안 야자수 산책로에서 열렸다.

그곳은, 언젠가 내가 전시를 열고 싶어 했던 장소였다.

어릴 적부터 나와 소정은은 그림을 좋아했고, 아버지는 미대 교수를 불러 우리를 지도하게 했다.

나는 세 살 더 많았고 선생은 늘 내가 더 재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씨 집안에서 그림은 취미일 뿐이었고, 부모는 우리가 금융을 배우길 원했다.

집안을 맡거나, 훗날 남편의 사업을 돕는 아내가 되길 바랐다.

그림만 그리는 장식품이 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몰래 그렸고, 언젠가 시간이 허락하면, 나만의 화랑을 열겠다고 꿈꿨다.

그 꿈은 결국 이루지 못했지만, 대신 소정은이 이루었다.

그녀는 언제나 나와 달랐다.

오랜 세월 찾지 못하다 되찾은 딸이었으니, 가족은 그녀를 하늘의 별처럼 떠받들었다.

별을 따오라면 따다 줄 사람들이었다.

그녀에게 책임을 지우는 일은 없었다.

나는 두 사람을 따라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속이 저릿했다.

너무 갑작스레 죽었으니 아직 하지 못한 일이 너무 많았다.

사람들의 감탄이 들렸다.

"소정은 씨, 정말 재능 있네요."

"타고난 화가예요. 이 '수련'은 정말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에요."

수련?

고개를 들었다.

그 그림은 내가 그린 작품이었다.

눈을 돌리자, 지하 작업실에 보관해두었던 내 그림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소정은이 내 작품을 전부 가져와 자신의 전시회에 걸어둔 것이다.

이렇게 대놓고?

그녀가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내가 이미 돌아오지 못할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확신이 들었다.

내 죽음은 우연이 아니다.

소정은.

그녀가 나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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