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4년 전과 똑같이
강은채는 불안감에 마음이 세차게 뛰고 있었고,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그녀는 윤재욱을 따라 그 침실로 들어갔는데, 여전히 온통 어둠뿐이었다. 바로 이 어둠 속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고, 그로 인해 그녀의 운명은 바뀌었다.
"왜 불을 켜지 않는 거예요?"
은채는 일부러 질문을 던지며, 더 많은 증거를 찾고자 했다.
"불을 켜고 싶지 않아. 누구의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아."
재욱이 침실 문을 닫자, 방은 완전히 어둠 속에 잠겼다.
재욱은 어둠 속에서 정확하게 은채의 손을 잡고 침대로 끌었다.
"피곤해. 오늘 밤은 여기서 나랑 자."
재욱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이 특수한 환경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그 남자의 것과 겹쳐 들렸다.
똑같이 냉정하고, 똑같이 무정했다.
은채의 마음이 다시 죄어들었다.
그녀는 너무 긴장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윤재욱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하지만 재욱은 이미 인내심을 잃었고, 그녀를 바로 안아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자신도 옆에 눕고는 자연스럽게 은채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
"긴장하지 마, 그냥 푹 자고 싶을 뿐이니까. 널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야."
재욱은 강은채의 몸이 경직되어 있단 걸 알아챘다. 하지만 그는 그 느낌을 좋아했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가 이곳에 은채를 데려온 것은 바로 이 느낌 때문일 것이다.
"저…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안 돼요. 돌아가야 해요."
은채는 이 어두운 방에서 재욱의 품이 그 남자의 품과 똑같이 느껴져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이 진실을 파헤치는 게 두려워졌다.
"권 비서가 가서 아이를 돌볼 거야. 넌 가지 마."
재욱은 피곤한 듯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
은채는 도망칠 핑곗거리가 없어져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이제야 그녀는 왜 그들의 뒷모습이 그렇게 비슷했는지, 왜 그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닮았는지, 그리고 왜 그들의 체취가 그렇게 똑같은지 깨달았다.
만약 윤재욱에게 형제가 없다면, 윤재욱이 바로 그 남자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더 확인할 것이 남아있었다.
은채는 깊은 생각에 잠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욱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잠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은채는 자신의 허리에 두른 재욱의 팔을 조심스럽게 치우고, 천천히 일어났다.
휴대폰의 얕은 빛에 의지해 그녀는 먼저 창가로 갔다.
창가의 커튼은 4년 전과 같이 여러 겹으로 촘촘하게 닫혀 있었다. 예전의 그녀는 이곳에 서서 커튼의 작은 틈 사이로 그의 단단한 뒷모습을 몰래 보곤 했다.
커튼을 닫고, 은채는 다시 침대 머리맡 서랍장 앞으로 갔다. 소리 내지 않고 조심스레 서랍을 열었더니, 4년 전 자신이 여기에 두었던 휴대폰이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휴대폰을 보자 그녀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것은 한때 그녀의 희망이자 과거의 수치였다.
휴대폰 아래에는 서류봉투가 있었는데 은채에게는 매우 익숙한 봉투였다.
떨리는 손으로 서류를 꺼내어 확인하자, 그녀는 힘이 빠져 그대로 침대 옆에 주저앉았다.
성별: 남자
성명: 원이
출생일: XX년 1월 23일
특징: 왼쪽 팔뚝에 동그란 모양의 점.
……
은채는 눈물이 고여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재욱이 깨어났을 때 은채는 이미 떠나고 없었고, 핸드폰에는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아이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먼저 갑니다. 차고에 차가 있길래 제가 그냥 갖고 갔는데 내일 회사로 돌려드릴게요."
재욱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날 밤은 비록 술에 취했지만 매우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정시에 사무실에 도착한 재욱이 막 일을 시작하려는 순간 배원영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윤 대표님, 사모님께서 오셨습니다."
송세희가 배원영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손에 종이백을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재욱의 여벌 옷이 들어 있었다.
송세희가 재욱의 아내가 된 후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여보."
세희의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가 울렸고, 동시에 배원영은 나가며 문을 닫았다.
"옷은 두고 가. 난 바빠서 일이 많으니까 당신 먼저 돌아가 있어."
재욱은 차갑게 말했다. 말 한마디로 송세희를 돌려보내 버린 것이다.
세희의 마음은 극도로 싸늘해졌다. 지난 4년 동안 그녀는 재욱의 마음에 다가가려고 노력했지만, 조금의 진전도 없었다.
재욱은 4년 전과 똑같이 여전히 그녀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여보..."
송세희는 포기하지 않고 재욱에게 조금 더 신경 쓰고 싶어 했다. 바로 그때 배원영이 다시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윤 대표님, 강 부장님께서 오셨습니다."
강 부장이라는 말을 듣자, 송세희는 가장 먼저 강은채를 떠올렸다.
재욱이 자신을 급히 내보낸 이유가 강은채 때문이었구나.
"들어오라고 해."
재욱은 명령조로 답했고, 이어서 그의 차가운 눈빛이 세희를 향했다.
"일 얘기를 해야 해서."
송세희는 어쩔 수 없었다.
"여보, 그럼 난 먼저 갈게요.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이 말은 은채가 들으라고 세희가 일부러 말한 것이었다.
세희가 돌아서자 마침 강은채가 들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은채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고, 세희의 눈에서는 분노가 치솟았다.
은채는 인사를 하지 않았고, 송세희는 재욱의 경고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 스쳐 지나갔다.
사무실 문은 다시 배원영에 의해 닫혔다.
재욱은 음울하고 분노에 찬 눈으로 은채를 응시했다.
"윤 대표님, 저는 일 얘기를 하러 왔습니다. 일적으로 저한테 화나실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은채가 침묵을 깨며 말했다.
"어젯밤 언제 떠난 거야? 나랑 같이 자자고 했는데 감히 먼저 도망쳤던데."
재욱의 눈빛에 냉기가 서렸고, 그는 은채에게 따져 물었다.
"윤 대표님, 저한테 그런 심한 말은 하지 마시죠. 보통 도망친다는 건 사람들은 속인 후 떠나는 걸 도망친다고 하는 거예요. 어젯밤 저는 그냥 아이가 걱정돼서 먼저 돌아갔을 뿐이고요. 그리고 당신의 그 산꼭대기에 있는 저택 침실은 너무 음산하고 어두워서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은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마음이 폭풍처럼 요동치고 있어 좀처럼 평정심을 찾을 수 없었다.
은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재욱의 눈빛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그는 마치 은채가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화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강은채, 어젯밤 너를 거기에 데려간 건 실수였어. 너는 거기에 갈 자격이 없었는데."
재욱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저도 거기 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엔 술에 취해 저한테 부탁하셔도 두 번 다신 가지 않을 겁니다."
은채는 고집스럽게 대답했다. 재욱은 후회한다고 했지만, 그녀에게는 후회할 일이 아니었다.
강은채는 계속 말했다.
"윤 대표님, 차는 이미 지하 주차장에 세워놨습니다. 이건 차 키예요."
은채는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서 나무 계단을 올라가 차 키를 재욱의 책상 위에 놓았다.
"두 아이는 제가 유치원에 데려다줬습니다. 지유는 새로운 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당신이 정해준 유치원으로 다시 보냈어요. 그러니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이에게는 영향이 안 갔으면 합니다. 유치원 비용은 제가 부담할 테니, 지유를 내쫓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은채는 재욱에게 간청했다. 지난번 지유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나온 것은 그녀가 자발적으로 한 일이었지만, 은채는 윤재욱이 지유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단지 그녀가 먼저 아이를 데리고 나왔기에, 재욱의 계획이 무산되었을 뿐이었다.
"지유를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없어. 지난번에 데리고 나온 건 네가 먼저였잖아. 내가 네 일에 대해 통제하는 이유는 네가 더 잘 알 텐데."
재욱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강은채가 자신한테 감히 이런 식으로 말하다니. 날 얼마나 비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지유를 대신해 윤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대표님께서 말하시는 일이 무슨 이유 때문인진 굳이 알고 싶지 않네요. 때로는 인생에서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죠. 대표님께서 마련해 주신 집엔 일단 지내고 있을게요. 현재 진행 중인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은채는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무심하게 말했다.
일자리는 모든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고, 특히 재욱의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는 건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명예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강은채의 태도는 그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듯 보였다. 어떻게 나를 이렇게 무시할 수 있지?
재욱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강은채, 평생 나한테 찍혀서 감시당하고 싶지 않으면 내 말에 따르도록 해.”
“무슨…”
은채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눈을 크게 뜨고 재욱을 노려봤다. 그녀는 이 사람은 자신이 뱉은 말은 반드시 실행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평생 그의 감시를 받는다면 자신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윤 대표님, 대표님의 깊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먼저 일을 하러 가볼게요. 이제 MT에서 사람이 오면 잘 인수인계하도록 하죠.”
은채는 여전히 기가 죽지 않고 윤재욱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당당하게 돌아서서 사무실을 떠났다.
은채는 사장실을 나오자마자 깊은 숨을 내쉬었다. 문득 원영을 바라보니, 원영은 분노에 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분노뿐만 아니라 왠지 모를 질투와 시기도 섞여 있었다.
뭐야?
은채는 그녀를 비웃듯 콧방귀를 뀌며 자리를 떠났다.
강은채가 자신의 사무실 문을 여니 송세희가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고고한 자세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은채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전혀 놀라지 않았다.
세희의 모습은 전혀 우아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재욱이 그녀에게 준 최고의 위치를 헛되이 깎아내리는 것 같았다.
은채는 서두르지 않고 사무실 문을 닫은 후, 물 한 잔을 따라 천천히 마셨다.
“말해봐, 또 어떤 경고를 하러 온 거야? 네 남편과 네 아들이 어젯밤 내 집에서 밤을 보냈는데, 뭐 또다시 뺨이라도 때리려는 거야? 아, 정정할게. 네 남편은 아니지. 너희는 그냥 동거하는 사이일 뿐이잖아. 아들은 뭐…”
은채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이번에는 세희가 질문하기도 전에 강은채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하지만 세희의 표정을 보니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강은채, 내가 너를 너무 얕봤네. 네가 이렇게 대놓고 인정할 줄이야. 하지만 말해둘게,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명실상부한 윤씨 집안 사모님이야. 난 이미 아들도 있어. 나의 전부이자 내 지위의 상징이지. 아무도 그걸 흔들 수 없어. 그러니 눈치가 있으면 당장 떠나. 다치고 나서 후회해 봤자 늦어. 그땐 너를 도와줄 사람도 없을 거야.“
송세희는 차가운 경고를 날렸다. 그녀는 윤지민을, 강은채를 막을 무기로 삼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지민의 존재 자체가 은채의 분노 버튼이었다.
은채는 지금은 참고 있지만, 나중에 지민이의 출생에 대한 의학적 증거가 밝혀지면, 송세희와 결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송세희, 그런 쓸데없는 말 하지 마. 그를 잘 붙잡아두고 나에게 접근하지 않게 하는 게 네가 해야 할 일이야. 난 일하러 가야 해.”
은채는 세희를 내쫓으며, 그녀가 일어서자마자 혐오스럽게 바라봤다.
“강은채, 내 경고를 잘 생각해 봐. 내가 윤씨 집안 사모님이란 지위가 없더라도, 내 친정집의 힘으로도 널 쉽게 무너뜨릴 수 있어.”
세희는 기세가 꺾이지 않고 다시 경고했다. 강은채가 계속해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 그녀는 더 이상 봐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재욱은 그녀가 4년 동안 온갖 노력을 다해 손에 넣은 남자였다. 누군가 그를 빼앗으려 한다면 그건 곧 자멸의 길을 걷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