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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아명(兒名) 원이

강은채는 무표정한 얼굴로 지유에게 다가가 그를 안아 올렸다. 하지만 몸을 돌리는 순간 윤재욱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지유는 오빠랑 어린이 방에 가서 놀래? 거기에 장난감도 많은데. 아저씨는 엄마랑 할 얘기가 있어서.”

윤재욱은 이번에 윤지민의 말을 명심하고 지유와 말할 때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지유와 지민이 떠나기도 전에 윤재욱은 서둘러 강은채를 끌고 침실로 들어갔다.

침실 문이 닫히자, 강은채는 문짝에 찰싹 붙어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윤재욱의 당돌한 접근에 강은채는 순간 당황했다.

모든 일이 끝나면, 다시는 이 남자와 엮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이 상황은 또 뭐지?

정신없이 날뛰고 있는 이 심장은 또 뭐냐고?

“내가 한 말에 좀 반박하지 않으면 안 돼?”

윤재욱은 엄하게 경고하려 했지만, 강은채 몸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를 맡으니 내뱉은

말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대표님은 제 일이랑 상관없잖아요.”

강은채는 겉으로 침착참을 유지하려 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상관없다고? 우리 뜨거운 밤까지 보냈는데?”

말하는 윤재욱의 목소리가 갈라지더니 눈동자에는 욕망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의 키스가 떨어졌다.

윤재욱의 키스는 열정적이고 분방했다. 마지막으로 키스한 지 한 세기라도 넘은 듯, 그는 자신의 감정을 여태 억누르고 있었다. 이 교활한 여자 앞에서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던 차분함은 온 데 간 데 보이지 않았다.

강은채는 피하려 했지만, 윤재욱은 전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틈을 타 그녀의 혀를 공격했다.

강은채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그의 품에서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렸다.

이 시각 요란하게 뛰고 있는 심장은 윤재욱이 그녀의 입을 막지 않았으면 곧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한참이 지나서 호흡이 필요한 두 사람은 그제야 키스를 멈추었다.

밀착된 몸과 가까이 붙은 얼굴은 강은채로 하여금 윤재욱의 거친 숨소리를 완전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붉어졌다.

윤재욱은 강은채 몸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를 선명하게 맡을 수 있었다. 이 향기는 그의 호르몬을 자극하여 호흡마저 뜨겁게 달구었다.

그는 강은채의 붉은 입술을 응시하며 고개를 숙였다.

“나랑 한 번 더 하자.”

남자의 낮은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욕망이 드러나 있었다. 그는 말하면서 손을 뻗어 방문을 잠갔다.

윤재욱의 말에 강은채의 머리가 순간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나랑 한 번 더 하자...”

한결같은 목소리와 말투였다. 이 남자 정말...

강은채가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의 뜨거운 입술이 다시 한번 공격해 왔다.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사람은 이미 침대 눕혀진 채 남자의 몸 아래에 깔려 있었다.

강은채는 자신도 모르게 더 이상 그를 거절하지 않았고, 그의 애원에 열렬하게 응했다.

* *

격정이 끝난 뒤에 실내의 열기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강은채는 윤재욱의 품에 안겨 격정 뒤의 여운을 만끽했다. 침묵의 분위기는 공기의 흐름소리마저 똑똑히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

강은채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녀는 지금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 나오기도 전에 윤재욱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넌 내 여자야.”

하도 단호한 그의 말에 강은채는 반박할 여지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 한마디에 강은채는 마치 몸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온몸이 시려왔다. 그의 여자라면 무슨 존재를 말하는 걸까? 여자 친구 아니면 잠자리 파트너?

그에게는 아내가 있는데 어떻게? 기껏해야 외로움을 달래는 도구겠지. 마치 4년 전에 아이를 낳으라고 할 때처럼.

“대표님, 고맙긴 한데, 저는 거절할래요.”

말을 마치자 은채는 분명 재욱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일단 화내지 마시고요.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왜 저를 선택한 거죠?”

강은채는 낮은 소리로 말하며 윤재욱에게 화를 낼 틈도 주지 않았다.

“...”

“솔직히 말해주세요.”

강은채가 덧붙였다.

“네가 한 여자랑 많이 닮았어. 목소리도 그렇고, 몸에서 나는 향기도 매우 비슷해. 심지어 잠자리에서도.”

윤재욱은 사실대로 말했다. 강은채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싶은 이유는 ‘그녀’와 많은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능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굳이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의 말은 원래 상처투성이였던 그녀의 마음에 모래를 뿌리는 느낌이었다. 아픈 나머지 눈시울까지 붉어졌다.

“그러니까 대표님 여자는 안 돼요. 저는 평범한 사람이라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에요. 대표님은 너무 훌륭하셔서 저랑 어울리지 않아요.”

“제 전 남편 연락이 왔어요. 우리 아마 재결합할 거예요. 그러니 여기서 이만 끝내죠.”

강은채는 핑계를 둘러대며 재욱이 그녀에게 완전히 흥미를 잃기를 바랐다.

과연 은채의 말에 재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더니 그녀를 노려보는 것이다.

마침 이때, 재욱의 핸드폰이 울리자 강은채는 휴대폰을 들어 재욱에게 건넸다.

“일단 전화부터 받아요.”

윤재욱이 휴대폰을 흘끗 보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전화기를 들고 재빨리 옷을 입고 떠났다.

문 앞까지 걸어간 그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더니 입을 열었다.

“네 짐은 혁수가 나중에 가져올 거야. 내가 여기 있으라면 그냥 있어.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너를 침대에 묶어둘 줄 알아.”

윤재욱은 매섭게 경고를 던지고 서둘러 떠났다.

은채는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윤재욱의 그 ‘나랑 한 번 하자’ 라는 말이 그때 그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윤재욱과 윤지민을 만나면서부터 비슷한 일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았다. 윤지민의 모반, 생일 그리고 윤재욱과 그 남자의 비슷한 점에 그녀는 늘 의문스러웠다.

이 모든 것이 정말 우연이란 말인가?

강은채는 옷을 입고 침대를 정돈한 뒤 방을 나섰다.

방금 어린이 방에 가서 두 아이를 데리고 나가려고 하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권혁수였다. 강은채는 바로 문을 열었다.

막 그에게 짐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려던 참에 문밖에 반듯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위엄이 넘치고 기세가 당당한 것이 한눈에 봐도 윤재욱이 보낸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권혁수는 짐을 내려놓고 떠날 때 특별히 당부까지 했다.

“강 부장님을 잘 모셔. 실수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강은채는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더니 조용히 문을 닫았다.

떠날 수 없다면 조용히 남을 수밖에.

그녀는 어린이 방에 가서 두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졸려?”

“아니요. 더 놀고 싶어요.”

두 아이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래. 좀만 더 놀다가 10시가 되면 자야 한다.”

강은채는 신나게 놀고 있는 두 아이를 보며 강요하지 않았다.

“지민아, 요즘 잘 지내는 거지?”

강은채가 걱정스레 물었다.

“네. 요즘 아빠도 집에 계셔서 엄마도 저한테 잘해줘요.”

지민은 놀면서 강은채의 물음에 답했다.

“그럼, 다행이네.”

강은채가 잠시 망설이다 계속해서 물었다.

“엄마하고 아빠 사이 좋아?”

“몰라요. 다른 엄마 아빠랑 다른 것 같아요. 각방을 쓰거든요.”

윤지민은 여전히 대수롭지 않게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강은채랑 비밀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각방을 쓴다고?

강은채의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 찼다.

“지민아, 아빠가 요 며칠 어때?”

“아빠는 너무 엄격해요.”

이번에 윤지민은 손의 장난감을 내려놓고 강은채의 옆에 다가가 말을 계속했다.

“아줌마, 사실 아빠는 저한테 항상 잘해주셨어요. 조금만 더 다정했으면 좋았을걸요. 저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되묻는 윤지민의 얼굴에 미소가 띠었다

“뭔데?”

“YB가 뭔지 아세요?”

지민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뜸을 들였다.

“YB? 네 아빠 회사에서 새로 개발한 휴드폰 브랜드잖아.”

은채는 아무 생각 없이 바로 대답했다.

“아니에요. 제 어렸을 때 이름을 이니셜로 지은 거예요. 이제야 아빠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죠?”

윤지민은 무척 자랑스럽다는 듯이 얘기했다. 그에게 있어서 아빠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이니.

“YB가?”

강은채는 약간 어리둥절했다.

“맞아요. 증조할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제가 금방 태어났을 때, 이름을 미처 짓지 못했대요. 마침 제 팔의 모반이 원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이름을 짓기 전까지 저를 원이라고 부른 거고요.”

이 일들은 모두 증조할아버지한테서 들었지만, 증조할아버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윤지민은 강은채를 아주 신뢰했던 것이다.

솔직한 지민의 말에 은채는 머릿속이 완전히 하얘졌다.

그 순간 4년 전 가슴 아픈 이별의 날로 돌아간 듯했다.

윤지민을 바라보던 강은채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그런 게 아니면 왜 자꾸 비슷한 이야깃거리를 듣게 되는 거지?

충격에서 깨어난 그녀는 당황해서 어쩔 바를 몰랐다. 여태 일어난 일들을 몇 번이고 돌이켜 보아도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세상에 이리 똑같은 일이 없을 텐데, 어떻게 확인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줄곧 이 문제에 시달리던 은채는 침대에 누워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밤 11시가 되었을 때, 권혁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강 부장님께서 와서 좀 말려주세요. 대표님께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는데, 제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어요.”

걱정이 담긴 권혁수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얼마나 마셨길래? 어딘데요?”

강은채는 순간 걱정이 들었다.

“위치를 보내드릴게요.”

전화기를 내려놓은 은채는 급히 옷을 걸치고 부랴부랴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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