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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나를 은채라고 불러줘요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여론이 어떻든 강은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모두가 송세희가 윤씨 집안의 며느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법의 보호를 받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저 송세희를 열받게 만들기 위해 던진 말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혼인신고도 안 했고, 결혼식도 안 했어요.”

“당신……”

윤재욱의 부정하지 않는 대답은 송세희를 완전히 경악하게 만들었다. 송세희는 여전히 분노하고 있었고 눈빛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은채는 계속해서 송세희를 무시한 채 윤재욱을 바라보았다.

“당신들의 결혼이 법적으로 인정받지 않는다면, 좋아요. 내가 당신의 여자가 되는 걸 받아들일게요.”

강은채는 흔쾌히 대답했다. 그 목적은 송세희의 오만한 태도를 꺾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재욱이 절대 그들의 관계를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되면 윤재욱에게도 결코 불리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재욱은 이 일이 알려지면 위험해질 것임을 알면서도 강은채를 생각해 모험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들이 정말로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강은채는 놀라움을 감출 수밖에 없었다. 도발하기 위해 염치없이 한마디를 던졌지만, 오기로라도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강은채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다시 발걸음을 돌려 떠나려 했다.

“강은채……”

윤재욱이 그녀를 불러 세웠지만, 강은채는 그의 말을 끊었다.

“당신이 무엇을 묻고 싶은지 알아요. 당신 아내, 아니, 송세희에게 물어보세요. 그녀가 당신에게 다 말해줬는데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그때 나한테 물어보세요.”

강은채는 걸음을 옮기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재욱 씨, 이제 나를 강은채라고 부르지 마세요. 송세희는 전에 나를 은채라고 불렀으니, 당신도 그렇게 부르세요.”

강은채의 말은 일종의 경고이자 도발이었다. 무엇을 알고 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송세희가 직접 윤재욱에게 말하게 할 생각이었다.

강은채는 이번에는 정말로 홀가분하게 떠났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쌓였던 원한이 드디어 풀렸기 때문이다.

윤재욱은 퇴근 후, 윤지민을 강은채에게 맡긴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했을 때, 거실에서는 송세희의 흔적을 볼 수 없었다. 그는 곧장 2층에 있는 송세희의 침실로 향했다.

윤재욱은 분노에 차서 송세희의 방문을 발로 차 열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송세희는 깜짝 놀라 바로 일어났다. 윤재욱의 싸늘한 얼굴을 본 순간, 송세희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여…… 아니, 재욱 씨, 왔네요.”

남편이라고 부를 용기조차 없었던 송세희는 허둥지둥 재욱의 이름을 불렀다.

“말해, 무슨 일이야? 너랑 강은채, 도대체 무슨 관계야?”

윤재욱의 목소리는 싸늘했고, 눈에는 여전히 분노가 가득했다.

“무슨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미 다 지난 일이니, 우리 이 일에 대해 더는 얘기하지 말아요.”

“말해.”

윤재욱의 분노로 가득 찬 외침에 송세희는 온몸이 움찔거렸다.

“저랑 은채는 같은 반 친구였어요. 그 친구를 헐뜯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재욱 씨 이제 그만……”

“내가 말하라고 했지. 너, 강은채, 그리고 이시훈.”

윤재욱은 오늘 반드시 진상을 밝혀내겠다고 결심했다. 강은채가 얼마나 파렴치한지, 또 그녀가 과거에 무슨 짓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저는……”

송세희는 어쩔 수 없이 사건의 경위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재욱 씨, 강은채가 이시훈을 속였어요. 저는 그저 참다못해 도와준 것뿐이에요. 강은채가 한 말들은 전부 자기 자신이 저를 헐뜯고 있다는 걸 감추기 위한 거예요. 저는 정말 억울해요.”

“네가 스스로 이시훈과 같이 있었다고 말해놓고, 이제 와서 또 억울하다고 하는군.”

윤재욱은 송세희의 말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은 이시훈이 강은채를 비난했던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통된 주장은 강은채가 사기꾼이라는 것이었다.

“그건 다 홧김에 한 말이에요. 누가 화가 났을 때 감정을 억누를 수 있겠어요? 재욱 씨, 저도 인제서 깨달았어요. 그때 도와주지 말아야 했다는 걸. 4년이에요. 강은채는 여러 계획을 세워 4년 동안 마음속에 칼을 숨겼다가, 이제 와서 저에게 복수하려는 거예요.”

송세희는 이간질에 능숙했다. 말할수록 억울한 듯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재욱 씨, 강은채는 정말 사기꾼이에요. 그녀의 외모에 속지 마세요. 그녀가 당신에게 접근하는 건 우리 관계를 깨뜨리려는 거라고요.”

송세희는 점점 더 슬프게 울었고, 재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미간은 점점 찌푸려졌다.

“재욱 씨, 이제 과거는 그만 얘기해요. 은채에게도 수치스러운 일이잖아요. 당신이 그녀를 믿지 않으면 돼요.”

송세희는 눈물을 닦으며 윤재욱의 반응을 살폈다.

“재욱 씨, 아무리 그래도 우리 결혼 상황은 절대 얘기하지 말아야 해요.”

송세희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윤재욱을 보니, 그는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송세희는 급히 해명했다.

“재욱 씨, 저는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강은채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이걸로 당신을 협박하거나 돈을 요구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 만약 그녀가 비밀을 발설한다면, 당신 둘째 숙부가 그 기회를 잡고, 할아버님도 당신에게 실망하실 거예요.”

송세희는 교묘하게 윤재욱에게 걱정하는 척하며 말꼬리를 돌렸다.

“내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내가 뭘 하든, 이미 계획이 다 있으니까. 송세희, 내가 경고하는데 우리 사이의 계약을 잊지 마. 너는 내 사생활에 참견할 자격이 없어. 내가 강은채와 무슨 관계이든 너는 끼어들지 마. 명심해, 너는 내 아내가 아니고, 강은채에게 물어볼 자격도 없어.”

윤재욱은 싸늘하게 경고했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송세희에 대한 의심이 남아 있었다.

“재욱 씨……”

송세희는 계속 해명하려 했지만, 재욱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입 다물어. 듣기 싫으니까. 너랑 상관없는 일에 참견하지 말고, 네 할 일이나 잘해. 그렇지 않으면 계약 해지야.”

윤재욱은 독설을 남기고 돌아섰고, 남겨진 건 송세희뿐이었다.

송세희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윤재욱이 더 이상 추궁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다행이었다.

그러나……

송세희의 얼굴에는 서서히 독기가 서렸다. 그녀는 절대 강은채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고, 윤재욱 역시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한편, 강은채는 퇴근 후 곧바로 유치원에 가서 두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차 타이어에 문제가 생겼다.

강은채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타이어를 살폈다.

오른쪽 앞 타이어가 찌그러져 있었고, 강은채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타이어를 발로 찼다.

오늘 하루도 이미 충분히 일진이 안 좋았는데, 이제는 타이어까지 그녀를 짜증 나게 하고 있었다.

차에는 스페어타이어가 있었지만, 강은채는 교체할 줄 몰랐다. 결국 핸드폰을 꺼내 구조 전화를 걸 준비했다.

바로 그때, 이시훈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은채야, 무슨 일이야?”

이시훈은 밝은 미소와 함께 다가왔고, 그의 목소리에는 과거의 원한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시훈아…… 내 차 타이어가 고장 났어.”

이시훈의 등장에 강은채는 놀랐지만, 그 순간에 누군가 나타나 준 것만으로도 큰 안도감을 느꼈다.

시훈은 차 앞부분을 둘러보며 앞바퀴를 살폈고, 두 아이도 차에서 내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차가 이 상태로는 못 가겠다. 은채야, 네가 내 차를 운전해서 가.”

이시훈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차 키를 강은채에게 건넸다.

“아니야, 괜찮아. 내가 렉카에 전화를 할게.”

은채는 시훈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를 더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시훈은 강은채가 전화를 거는 것을 막지 않았고, 그녀가 전화를 마친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은채야, 지금 차가 많이 막힐 시간이라서 구조대가 오려면 한참 걸릴 거야. 그러니까 너는 내 차 타고 가. 내가 여기서 견인차를 기다릴게.”

“너한테 신세를 질 순 없어……”

강은채는 여전히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두 아이가 기다리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엄마, 우리 삼촌 차 타고 집에 가요. 저랑 형이랑 배에서 꼬르륵 소리 나요.”

지유는 장난스럽게 지민의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윤지민도 고개를 끄덕이며 지유에게 맞장구쳤다.

아이들이 한마디 하자, 이시훈은 비로소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남자아이는 윤재욱의 아들이고, 여자아이는 확실히 강은채의 딸이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아이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지금 보니 여자아이는 엄마와 판박이였다. 웃을 때 보조개의 위치마저도 같았다. 이시훈은 자신도 모르게 온화한 눈빛으로 강지유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말에 강은채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은채야, 애들 데리고 먼저 들어가. 내가 차 다 고치면 다시 가서 바꿔 탈게.”

이시훈은 차 열쇠를 강은채에게 건넸고, 이번에는 강은채가 거절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삼촌!”

“감사합니다, 삼촌!”

두 아이가 함께 고맙다고 인사하였고, 강지유의 웃는 모습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강은채는 두 아이를 데리고 이시훈의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이시훈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생각하며 강은채는 혼란스러웠고,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강은채는 무심코 옆을 보았고, 그의 차 안에 있는 장식들이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시훈 씨, 이거 선물이야.”

강은채는 신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나한테 선물을 주는 거야? 내가 줘야 맞는 거 아닌가?”

그때의 이시훈은 온화하고 예의가 바르며 멋있었다. 그의 하얀 얼굴과 또렷한 이목구비는 마치 동화 속 백마 탄 왕자 같았다.

“누가 누구에게 주든 똑같은 거지.”

강은채는 말을 마친 후, 정교한 선물 상자를 꺼냈다.

“열어봐.”

이시훈이 놀라며 열자, 안에는 붉은색 끈을 땋아 만든 팔찌가 놓여 있었다.

이시훈은 조심스레 팔찌를 들어 올리며 한없이 감상에 젖었다.

“산 거야?”

“아니, 내가 만든 거야.”

강은채는 말하며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장난스럽게 흔들었다.

“너도 있네!”

“응, 두 개 만들었어. 내 팔찌는 가늘고 시훈 씨 건 더 두꺼워. 내가 채워줄게.”

“기억해, 우리가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면 절대 이 붉은 실을 풀지 마. 이 팔찌의 모든 매듭은 시훈 씨에 대한 나의 사랑이니까.”

강은채는 팔찌를 채워주며 당부했다.

“걱정 마, 나 평생 안 풀 거야.”

이시훈은 절대 벗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비참하게 헤어졌다.

이시훈이 아직도 이 팔찌를 가지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것은 이미 과거가 되었고, 사랑도, 미움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만약 이시훈과 송세희가 강은채의 세계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녀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4년 전의 일은 영원히 잊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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